“코로나 걸리면 살수 있을까?” 살균제로 폐 상한 딸이 물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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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7 14:09
중앙일보 2020년 3월 27일자
김경영(44)씨의 딸 A양(12)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진자가 급증한 뒤로 문밖을 나서지 못한다. 김씨도 딸과 자신을 위한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에도 가지 못한다. 두 사람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다. 2011년 한 시민단체가 “원인 미상의 폐렴으로 사망한 영·유아 수백 명 가운데 상당수가 가습기 살균제를 썼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불거진 사건이다.
김씨는 임신 전부터 ‘옥시싹싹뉴가습기 당번’ 등을 썼다. 임신 중에 중증 천식이 발현했다. 김씨의 딸인 A양도 태어나자마자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피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A양은 천식으로 고생 중이다. A양의 폐 기능은 60% 정도로 떨어졌다. 김씨는 연기된 초등학교 개학이 두렵다. “지금이야 밖을 안 나가면 되지만, 오히려 일상생활이 재개됐을 때가 더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살얼음 걷는 상황”···정신적 두려움 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들이 코로나19 확산에 “살얼음을 걷고 있다”며 호소하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폐 질환과 천식 등을 앓고 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서영철(62)씨는 폐 기능이 20%로 떨어져 휴대용 산소통을 등에 메고 콧줄을 연결해 호흡한다. 서씨 외에도 피해자들은 치료를 위해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든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상황에는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또 다른 피해자 조순미(51) 씨는 “폐 손상이 입었기 때문에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위험성이 일반인들보다 높아 더 조심하고 있다”며 “폐의 섬유화 진행으로 빠르게 하늘로 떠난 분들이 많다는 걸 알다 보니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도 많다”고 했다.
임종한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폐 질환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을 뿐 아니라 우울증이나 울화 등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더 복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19에 노출되면 상태가 더 악화할 가능성이 보통 사람보다 높은 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어려움 속에도 마음 나누는 피해자도 있어
피해자들은 마스크 구입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김씨는 “약국 앞에 줄을 서서 마스크를 구매하는 건 엄두도 못 낸다”며 “이상 증상이 나와도 무서워서 병원에 못 가는데, 하물며 약국 앞에 줄 서는 것은 더 무섭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고통을 나누는 피해자도 있다. 조순미씨는 지난 16일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가 대구4.16연대에 마스크를 기부할 때 자비로 마련한 120개의 마스크를 기부했다.
조씨는 “서로가 고통을 나눈 입장이라는 마음으로 보탰다”며 “나눔을 통해 나 자신도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다만 “보내놓고 나서야 우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도 마스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놨다.
김씨도 “몇몇 분들의 도움을 조금씩 받아 딸아이와 쓸 수 있는 최소한의 마스크는 구했다”면서 “여유분이 있으면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김씨와 딸의 사정을 아는 치과의사가 마스크 100개를 건네줬다고 한다.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한편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은 지난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피해 인정 범위가 제한적이었던 그 전과 달리 개정법은 피해의 범위를 생명 또는 건강상 피해(후유증 포함)로 넓게 적용시켰다.
다만 주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실제적으로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개정의 실효성이 있도록 시행령이 조속하게 마련되길 바
란다”고 밝혔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