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무죄 판결' 둘러싼 과학적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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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6 16:08
[프리미엄 리포트] 가습기 살균제 '무죄 판결' 둘러싼 과학적 쟁점들
동아사이언스 입력2021.03.06. 오후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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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① CMIT·MIT는 위해성이 없다?
법원 CMIT/MIT가 호흡기 하부 질환인 폐 손상이나 천식을 일으켰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과학자 CMIT/MIT가 호흡기 상부에 질병을 일으킨 증거는 많고, 일부 동물실험에서는 하기도 손상 증거도 발견됐다. 무엇보다 CMIT/MIT 제품을 쓴 피해자의 폐 손상이 PHMG 피해자의 폐 손상과 유사하다.
과학자 CMIT/MIT가 호흡기 상부에 질병을 일으킨 증거는 많고, 일부 동물실험에서는 하기도 손상 증거도 발견됐다. 무엇보다 CMIT/MIT 제품을 쓴 피해자의 폐 손상이 PHMG 피해자의 폐 손상과 유사하다.
1월 12일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이마트 등의 전임 임직원들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의 성분이 인체에 유해한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로 사용하고,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발단은 2011년 상반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전국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이후 환경부에 신고된 사망자 수만 지난해 7월 기준 1553명에 달합니다(피해 신고자는 6817명).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10여 개 회사에서 제조 또는 판매됐습니다. 그중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성분을 사용해 제품을 만든 옥시의 전 대표는 2018년 징역 6년의 유죄판결을 받았죠.
하지만 PHMG와 달리 CMIT/MIT(CMIT와 MIT를 3:1로 섞은 혼합물로 제품을 만듦)의 위해성은 꾸준히 논란이 됐습니다. 피해 신고 이후 수행된 각종 위해성 평가, 노출재연시험, 동물 흡입독성 시험 등에서 PHMG는 명백히 위해하다는 판단이 나온 반면, CMIT/MIT는 폐에서 이상소견을 일으킨다는 결과가 관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법원은 판결문에 “CMIT와 MIT는 저분자 화학물질로 높은 물용해도를 갖고 있어 호흡기 내로 흡입되면 비강 및 상기도 부위에서 상당 부분 흡수된다”고 적었습니다. 폐가 위치한 하기도 부위까지 도달해 영향을 줄 가능성이 낮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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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에서는 CMIT/MIT처럼 위해성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물질은 역학조사 결과에 무게를 두고 독성을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2012년 당시 한국환경보건학회 학회장을 역임하며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를 조사했던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현재 법원이 검토하는 내용, 즉 CMIT/MIT의 독성이 확인됐는가, 흡입을 통해 표적 장기(폐)에 도달하는가, 폐질환을 일으킬 정도의 충분한 양인가는 전형적인 위해도 평가”라며 “CMIT/MIT 성분을 단독으로 사용한 사람들의 폐확산능(폐의 산소교환능력) 저하나 노출이 증가할수록 질병 위험이 증가하는 용량-반응 상관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CMIT/MIT가 폐손상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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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② 동물실험이 의도적이었다?
법원 CMIT/MIT 성분과 상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가설에 부합하지 않는 결론이 나오면 (노출) 농도를 비현실적인 수준까지 높이며 시험을 진행했다
과학자 동물실험은 충분한 반응을 확보해야 하기에 아주 높은 농도부터 낮은 농도까지 수행한다. 대신 인간에 적용되는 기준치는 종간 차이, 종내 차이, 노출 방법 등을 고려해 100분의 1에서 1000분의 1 수준으로 정한다
과학자 동물실험은 충분한 반응을 확보해야 하기에 아주 높은 농도부터 낮은 농도까지 수행한다. 대신 인간에 적용되는 기준치는 종간 차이, 종내 차이, 노출 방법 등을 고려해 100분의 1에서 1000분의 1 수준으로 정한다
강한 독성이 있다고 알려진 물질을 인간에게 실험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대안으로 활용되는 것이 동물실험이죠. 가습기 살균제 사안에서도 흡입독성 시험, 기관 내 투여 시험 등 다양한 동물실험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그 방식과 해석에 재판부는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 설명자료를 통해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 동물실험이 지나치게 가혹한 노출 조건(권장사용량 최대 833배의 고농도)으로 이뤄지고, 노출 방식도 흡입에서 좀 더 직접적인 노출 방식인 기도 내 투여 방식으로 바뀐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도 PHMG와 마찬가지로 사망이나 상해의 결과가 발생했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실험이 이뤄졌다”며 “(이 같은 동물실험은) 본질적으로 가정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와야 실험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엄격한 조건하에 중립적인 결과를 도출하고자 하는 실험과는 달리 연구자의 편향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동물실험 책임연구자인 이 단장은 “과학자의 역할은 자연 현상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것”이라며 “가설을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다면 해당 가설이 틀렸다고 결론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물실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도 의견강한 독성이 있다고 알려진 물질을 인간에게 실험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대안으로 활용되는 것이 동물실험이죠. 가습기 살균제 사안에서도 흡입독성 시험, 기관 내 투여 시험 등 다양한 동물실험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그 방식과 해석에 재판부는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 설명자료를 통해 검사가 증거로 제출한 동물실험이 지나치게 가혹한 노출 조건(권장사용량 최대 833배의 고농도)으로 이뤄지고, 노출 방식도 흡입에서 좀 더 직접적인 노출 방식인 기도 내 투여 방식으로 바뀐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도 PHMG와 마찬가지로 사망이나 상해의 결과가 발생했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실험이 이뤄졌다”며 “(이 같은 동물실험은) 본질적으로 가정에 부합하는 결과가 나와야 실험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엄격한 조건하에 중립적인 결과를 도출하고자 하는 실험과는 달리 연구자의 편향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이에 대해 동물실험 책임연구자인 이 단장은 “과학자의 역할은 자연 현상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것”이라며 “가설을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다면 해당 가설이 틀렸다고 결론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물실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과학계는 동물실험에서 CMIT/MIT와 폐질환 사이의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한테도 CMIT/MIT가 상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950~1960년대 임신부의 입덧방지제로 쓰였던 탈리도마이드가 동물실험에서는 아무런 부작용도 보이지 않다가 시판된 후 1만 명의 기형아를 출생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 재판부는 그와 같은 결론은 형사소송이라는 엄격한 인과관계 증명 과정에 차용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취임한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1월 20일 후보자 자격으로 참석한 인사청문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1심 판결 결과에 대해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실험도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영장류나 개, 돼지 등을 이용한 추가 실험이 새로운 결론을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환경노출 분야 조사를 맡아온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추가로 동물실험을 진행하더라도 역시나 불확실성의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며 “화학물질과 관련된 법적 쟁송에서 기업과 재판부는 항상 더 많은 자료와 연구로 증명할 것을 요구해왔다”고 덧붙였습니다.
동물실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과학계는 동물실험에서 CMIT/MIT와 폐질환 사이의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한테도 CMIT/MIT가 상해를 입히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1950~1960년대 임신부의 입덧방지제로 쓰였던 탈리도마이드가 동물실험에서는 아무런 부작용도 보이지 않다가 시판된 후 1만 명의 기형아를 출생시킨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 재판부는 그와 같은 결론은 형사소송이라는 엄격한 인과관계 증명 과정에 차용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취임한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1월 20일 후보자 자격으로 참석한 인사청문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1심 판결 결과에 대해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실험도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영장류나 개, 돼지 등을 이용한 추가 실험이 새로운 결론을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환경노출 분야 조사를 맡아온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추가로 동물실험을 진행하더라도 역시나 불확실성의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며 “화학물질과 관련된 법적 쟁송에서 기업과 재판부는 항상 더 많은 자료와 연구로 증명할 것을 요구해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쟁점 ③ 증거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법원 재판에서 증언한 전문가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실험 결과로 CMIT/MIT 성분과 폐질환에 따른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지 못했다
과학자 CMIT/MIT와 피해질환과의 인과성은 여러 분야의 실험 결과들을 종합해야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실험 결과 하나로 분명한 인과성을 주장할 수 있는지 심문하는 것은 과학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과학자 CMIT/MIT와 피해질환과의 인과성은 여러 분야의 실험 결과들을 종합해야 설명할 수 있다. 특정 실험 결과 하나로 분명한 인과성을 주장할 수 있는지 심문하는 것은 과학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
이번 1심 판결은 과학계와 재판부가 증거에 접근하는 방식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웠습니다. 임상, 역학, 노출, 독성 등 다양한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한 가습기 살균제 사안에서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보고 가중치를 둬서 결과를 추론하거나 인과관계를 판단했습니다. 반면 법원에서는 개별 증거별 접근 방식을 취했습니다. 예를 들어 증거가 10가지라면 과학계에서는 10가지 증거를 종합해 판단을 내린 반면, 법원에서는 일대일로 인과관계를 평가한 뒤 부족한 증거는 처음부터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심에서는 과학자들의 증거 해석 방식도 존중받아야 함을 주장해볼 수 있다”며 “이 같은 방식으로 전문가들의 진술을 다시 본다면 법원의 평가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는 또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활용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전문심리위원 제도는 소송에서 전문가를 위촉해 의견이나 설명을 듣는 제도입니다. 지난해 1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에서도 삼성이 제출한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재판부가 전문심리위원 3명을 지정한 바 있습니다. 박 교수는 “과학자들로 구성된 전문심리위원단이 과학자들의 증언과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법원에 제출하면 설득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단장은 “가습기 살균제 논쟁이 재판 이후로도 수십 년 간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실제로 1956년 미나마타병이 집단 발병한 일본에서는 현재도 중금속 중독 질환과 오염된 토양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은 가습기 살균제와 폐손상과의 인과관계에 주목하지만 폐는 인체의 중요한 면역기관이기도 하다”며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흡입 노출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질환을 연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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