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용 가습기 살균제 신고 전화만 기다려선 현황 파악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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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용 가습기 살균제 신고 전화만 기다려선 현황 파악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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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경향

지난 1일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예용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 규모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정부 접수 피해자 6272명 예측 규모의 0.15% 불과 그중 798명만 공식 인정 

​참사 피해 사례들 알리려 전국 순회 전시·설문 돌입 “기업이 피해를 입증해야”

 

지난달 15일, 또 한 명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다. 숨진 조모씨(55)는 둘째 아이를 출산한 1997년부터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2009년 특발성 폐섬유화증 진단을 받아 9년 가까이 투병 생활을 하고 폐 이식까지 받았지만, 정부는 그의 질환이 가습기 살균제와 연관성이 없다며 피해를 인정하지 않아왔다. 조씨는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 개정으로 지난해 12월에야 뒤늦게 ‘특별구제계정’ 대상자가 됐지만, 한 달 만에 숨을 거뒀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세상에 알려진 지 8년, 피해자들에게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가 추정한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만 400만명입니다. 8년이 흐르도록 아직도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몰라요. 이런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영구미제 사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예용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정부가 책상머리에서 피해 신고 전화만 기다리는 것으로는 참사의 빙산의 일각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특조위는 지난달 28일부터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전국 순회 전시회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피해자 찾기’ 사업에 돌입했다. 서울 도봉구와 마포구를 시작으로 ‘피해 신고가 진상규명의 시작입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제품 사진과 피해 사례를 소개하는 전시회를 열고, 지역 환경단체·생협과 협의해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및 피해자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순회 전시회에 나선 까닭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정확한 피해 규모를 정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4~2011년 총 43종의 가습기 살균제 998만여개가 전국에서 판매됐다. 정부가 2017년 한국환경독성보건학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이 기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이들은 최대 400만명에 육박하고, 이 중 건강 이상을 경험해 병원 치료를 받은 피해자는 50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정부에 신고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6272명(1월25일 기준)으로, 정부가 예측한 전체 피해자의 0.15%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1379명은 사망했다.  

최 부위원장은 “기업에 의한 일종의 ‘집단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정부가 피해 실체조차 파악하지 않는 것은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조위가 지난해 말부터 서울 도봉구 방학동과 마포구 성산동에서 피해 조사를 벌인 결과,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의 11.4%가 건강 이상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천식·폐렴 등 정부 구제급여 및 특별구제계정 지원이 가능한 건강 피해도 여럿 확인됐지만 이 가운데 피해 신고를 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피해를 신고한 이들도 엄격한 판정 기준 탓에 정부로부터 인정받기 쉽지 않다. 정부는 당초 폐 손상에 한정했던 가습기 살균제 인정 질환을 2017년 태아 피해, 천식 등으로 확대했지만 피해 신고자 6272명 가운데 798명(12.7%)만이 정부로부터 피해를 인정받았다.  

최 부위원장은 “짧게는 7년, 길게는 20여년 전에 사용한 제품으로 인한 건강 피해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인과관계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며 “거꾸로 가해 기업이 피해에 대한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 자사 제품으로 절대 저런 피해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기업이 스스로 입증하지 못한다면 피해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면서 ‘확실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바이오사이드(biocide·살생물제) 재난 이후에도 정부의 대처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최 부위원장은 “지난해 10만명 이상이 발암물질에 고스란히 노출된 ‘라돈 침대’ 사태가 터졌을 때도 정부는 피해자 추적이나 역학조사 없이 회수 방안만 논의했다”며 “가습기 살균제는 더 이상 판매하지 않지만, 유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처를 보면 정부의 ‘재발 방지’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최 부위원장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전국적인 규모의 역학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이 사건은 이미 끝난 것 아니냐고, 운이 나쁜 몇몇의 비극이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 있지만 집 안의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는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피해자 찾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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