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의 진실2] 나는 악마와 거래한 '청부 과학자'입니다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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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08:41
나는 악마와 거래한 '청부 과학자'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진실 ②] 옥시 사태를 통해 드러난 '청부 과학'의 현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로 옥시 쪽이 서울대학교와 호서대학교에 거액의 청부 연구를 발주한 것과 연구자와 옥시-김앤장이 짬짜미를 해 살균제 유해성 관련 연구 결과를 조작 내지는 왜곡한 정황이 드러난 것을 보고 오래 전에 읽은 책 한 권이 떠올랐다. 2009년 국내 번역 출간된 <청부 과학(Doubt is their product)>이다.
지은이 데이비드 마이클스는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공중보건 및 보건서비스 학부의 환경·산업보건학 교수이면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클린턴 행정부의 에너지부에서 환경·안전·보건 분야 차관보를 지냈다. 특히 국가 핵 시설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건강과 안전, 주변 환경을 보호하는 책임자로서 활동했으며 이때 핵폭탄을 만들거나 시험하다가 질병을 얻은 핵무기 공장 노동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역사적인 '에너지산업노동자직업병보상법'을 입안하기도 했다. 또 미국과학진흥회가 주는 '과학적 자유와 책임상', 미국공중보건협회상, 미국에너지부공로상 등을 수상하였다고 하니 정말 신뢰할 만한 인물이다.
그가 쓴 책은 담배, 석면, 수은, 벤젠 등 인체 유해 물질을 생산하는 대기업이 자사의 이익을 위협하는 이들 물질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주요 과학적 증거와 연구 결과를 어떻게 무시하고 은폐하고 조작하는지, 청부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조작하는 방법 등을 제시함으로써 흔히 객관적이라고 믿는 과학이 자본과 결탁하게 되면 얼마나 일그러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기업은 조작과 은폐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대로 유해성에 대응할 연구 결과를 만들어줄 두뇌 집단이나 전문가, 연구자를 찾는다. 또 이런 은폐·조작 연구를 언론에 교묘한 논리로 알리고 자사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는 언론을 잘 요리하며 호응을 하는 언론에 당근을 줄 인물을 고용해 홍보 선전에 활용한다.
옥시도 사건이 확대되자 한국쓰리엠 출신의 이 아무개 씨를 전무라는 직책의 고위 간부로 영입했다. 옥시는 피해자 가족이 최근 런던 레킷벤키저 주총이 열린 영국 런던에 항의 방문을 가자 때맞춰 그를 현장에 파견하는 등 본격 대응을 한 바 있다.
청부 과학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 그 뿌리가 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담배 회사다. 사람들이 담배가 몸에 해로울 수 있다고 의심을 했을 때부터 담배 회사는 '진실 은폐' 공작을 벌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위험 사실을 숨겼다. 담배 회사는 1950~60년대에 이미 흡연이 암과 심장병 등을 유발하고, 니코틴이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1994년 담배 회사 '브라운 앤 윌리엄슨(B&W)'의 비밀 내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드러났다. 담배 회사는 최소 50년 이상 담배의 유해성을 감춰 왔던 것이다.
돈에 눈먼 청부 과학자들이 판치는 요지경 세상
청부 과학자들은 담배나 살충제, 탄산음료, 패스트푸드 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와 같은 이슈와 관련해서도 활약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카멜'이란 담배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로 잘 알려진 '레이놀즈(R. J. Reynolds)'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프레더릭 사이츠(Frederick Seitz)와 '필립모리스'한테서 거액의 연구비를 받은 프레드릭 싱어(Frederick Singer)와 같은 과학자들이다. 이들은 지구 온난화의 위험조차 별 것 아니라며 이를 물 타기하는 데 자신들의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최근 서울대학교 조 아무개 교수 구속으로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연구 보고서 조작 스캔들은 한국판 청부 과학의 대표적 사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05년 세계적 과학 사기 추문으로 번진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이후 10년 남짓 만에 우리 학계는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황우석 사건은 청부가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의 결과였다면 이번 옥시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보고서 조작 내지는 왜곡은 옥시와 김앤장의 청부에 의해 빚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짙다. 다시 말해 주범은 옥시와 김앤장이며 서울대 조 아무개 교수는 종범일 가능성이 크다. 호서대 유 아무개 교수는 아직 용의선상에 머물러 있다(유 교수 부분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정확하게 서로 어떤 짬짜미가 있었는지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조 교수는 구속된 뒤 변호인의 입을 통해 매우 중요한 국책 연구 과제 7~8개를 한꺼번에 진행 중이어서 옥시 쪽에 보낸 보고서가 재판에 어떻게 활용됐는지, 어떤 내용으로 재판부에 제출됐는지 관심을 가질 경황이 없었다고 변명했다. 정부와 정부 기관이 한 전문가에게 어떻게 이렇게 많은 국책 연구 과제를 연구하게끔 허용하는지, 또 서울대는 왜 이를 허용하는지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묻고 따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 교수 밑에서 살균제 독성 연구에 참여한 한 연구원의 말을 빌리면 독성이 나타난 부분(임신한 쥐 15마리 중 13마리에서 몸속 새끼가 숨진 것 등)은 빼고 보고서를 만들라고 하는 지시를 조 교수한테서 받았다고 털어놓은 점으로 미뤄 조 교수는 사전에 옥시 김앤장과 짬짜미를 한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연구비 2억5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돈에 눈이 멀어 학자의 양심을 팔아버린 셈이다.
우리 학계에서도 청부 연구-과학은 곳곳에서 똬리 틀어
우리 학계에서는 돈에 눈이 멀어, 심하게 말하면 환장해 발주자의 입맛에 맞는 연구를 해주는 청부 과학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식품이나 건강 기능 식품, 유해성 연구, 안전성 연구 등 많은 부문에서 청부 과학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은 삼성 쪽이 인정하긴 했지만 몇 년 전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발생 등 산업재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은 청부 연구로 이름난 국제 연구 용역 컨설팅 회사 '인바이런'에게 거액의 용역비를 주고 삼성 반도체와 백혈병은 상관이 없다는 식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고선 "글로벌 최고 수준의 연구 결과로서 이번 조사는 객관성과 투명성이 보장됐다"고 밝혀 피해자와 그 가족들한테서 거센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삼성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연구하는 기관이라고 강조한 그 '인바이런'은 '필립모리스'와 폐암 환자의 소송에서 담배 회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의 고엽제 문제가 미국에서 불거졌을 때는 참전 군인들의 건강 문제가 고엽제와는 무관하다는 결과를 낸 바 있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기관으로 양심 있는 학자 사이에서는 자리매김했다.
서울지방검찰청 가습기 살균제 특별 수사 팀은 최근 국내 산업 보건, 독성학, 역학 전문가 20명가량을 한데 불러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과 살균제와 중증 폐질환과의 인과관계 연구가 적절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자리에서 단 한 명도 토를 달지 않고 만장일치로 연구 내용과 역학 결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이 죄다 비양심적인가? 아니면 조 교수와 유 교수가 양심적인가?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직업병 환자 판정 2년 뒤 논문 낸 의사들
1988년 원진레이온 노동자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참사 사건 때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1987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팀이 우리나라 최초로 원진레이온 노동자 4명에게서 이황화탄소 중독증 사례를 확진해 직업병으로 판정했다. 하지만 이를 학계나 외부에 알리지 않고 쉬쉬한 일이 있었다.
내가 1년 가까이 지난 뒤인 1988년 7월 그 실상을 <한겨레>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리면서 그 대학 교수들을 비판하는 보도를 하자 의대 교수는 곧바로 이런 전화를 해왔다. "우리도 조만간 이를 학계에 보고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고대 의대 교수들은 자신들이 이황화탄소 중독증 환자를 진단, 확정한 지 2년이 지난, 그러니까 내가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집단 발생 사실을 신문에서 알린 1988년보다 1년이 더 지난 1989년이 되어서야 대한산업의학회지에 '인견사 제조업 근로자에서 발생한 이황화탄소 중독증 판례 분석'이란 제목의 논문을 실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왜 학자들이 원진레이온 직업병 감추기에 급급했는지를 알 수 있는 정보를 접했다. 원진레이온 총무부 여직원이 전화를 내게 걸어왔다.
"작업장 이황화탄소 농도 측정 등과 노동자 특수 검진이 있고 난 얼마 뒤 회사 쪽이 대학에 거액의 연구 장비 구매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그 제보는 가능성이 높아 보여 보도하려 했으나 제보 당사자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묻히고 말았다. 그 뒤 지금까지 20여 년째 가까운 지인들과 나누는 일화로만 이야기되고 있다.
기업, 변호인 등이 '악마의 얼굴'을 하고 '악마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대학의 교수나 전문가마저 그것에 침묵한다면 국민은 정말 기댈 곳이 없다. 정부와 정치권도 악마가 쳐놓은 거미줄 속에 있다고 믿는 시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악마들이 포식하는 세상, 악마들이 돈을 긁어모아 그 돈으로 다시 하수인을 곳곳에 만드는 세상이 과연 사라질까? 이번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악마들의 내부가 낱낱이 드러나 사람 살만한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 가능할까? 그래도 희망을 걸어본다.
지난 5년 동안 대다수 언론과 소비자, 시민 단체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피눈물 흘리며 불의와 싸워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 그리고 환경 보건 시민 단체 사람들의 가슴에 불가능하다는 말로 대못질을 할 수는 없기에.
지은이 데이비드 마이클스는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공중보건 및 보건서비스 학부의 환경·산업보건학 교수이면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클린턴 행정부의 에너지부에서 환경·안전·보건 분야 차관보를 지냈다. 특히 국가 핵 시설 노동자와 지역 주민의 건강과 안전, 주변 환경을 보호하는 책임자로서 활동했으며 이때 핵폭탄을 만들거나 시험하다가 질병을 얻은 핵무기 공장 노동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역사적인 '에너지산업노동자직업병보상법'을 입안하기도 했다. 또 미국과학진흥회가 주는 '과학적 자유와 책임상', 미국공중보건협회상, 미국에너지부공로상 등을 수상하였다고 하니 정말 신뢰할 만한 인물이다.
그가 쓴 책은 담배, 석면, 수은, 벤젠 등 인체 유해 물질을 생산하는 대기업이 자사의 이익을 위협하는 이들 물질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주요 과학적 증거와 연구 결과를 어떻게 무시하고 은폐하고 조작하는지, 청부 과학자들이 데이터를 조작하는 방법 등을 제시함으로써 흔히 객관적이라고 믿는 과학이 자본과 결탁하게 되면 얼마나 일그러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기업은 조작과 은폐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대로 유해성에 대응할 연구 결과를 만들어줄 두뇌 집단이나 전문가, 연구자를 찾는다. 또 이런 은폐·조작 연구를 언론에 교묘한 논리로 알리고 자사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는 언론을 잘 요리하며 호응을 하는 언론에 당근을 줄 인물을 고용해 홍보 선전에 활용한다.
옥시도 사건이 확대되자 한국쓰리엠 출신의 이 아무개 씨를 전무라는 직책의 고위 간부로 영입했다. 옥시는 피해자 가족이 최근 런던 레킷벤키저 주총이 열린 영국 런던에 항의 방문을 가자 때맞춰 그를 현장에 파견하는 등 본격 대응을 한 바 있다.
청부 과학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 그 뿌리가 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담배 회사다. 사람들이 담배가 몸에 해로울 수 있다고 의심을 했을 때부터 담배 회사는 '진실 은폐' 공작을 벌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위험 사실을 숨겼다. 담배 회사는 1950~60년대에 이미 흡연이 암과 심장병 등을 유발하고, 니코틴이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1994년 담배 회사 '브라운 앤 윌리엄슨(B&W)'의 비밀 내부 문서가 공개되면서 드러났다. 담배 회사는 최소 50년 이상 담배의 유해성을 감춰 왔던 것이다.
돈에 눈먼 청부 과학자들이 판치는 요지경 세상
청부 과학자들은 담배나 살충제, 탄산음료, 패스트푸드 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와 같은 이슈와 관련해서도 활약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카멜'이란 담배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로 잘 알려진 '레이놀즈(R. J. Reynolds)'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프레더릭 사이츠(Frederick Seitz)와 '필립모리스'한테서 거액의 연구비를 받은 프레드릭 싱어(Frederick Singer)와 같은 과학자들이다. 이들은 지구 온난화의 위험조차 별 것 아니라며 이를 물 타기하는 데 자신들의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최근 서울대학교 조 아무개 교수 구속으로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연구 보고서 조작 스캔들은 한국판 청부 과학의 대표적 사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05년 세계적 과학 사기 추문으로 번진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이후 10년 남짓 만에 우리 학계는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황우석 사건은 청부가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의 결과였다면 이번 옥시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보고서 조작 내지는 왜곡은 옥시와 김앤장의 청부에 의해 빚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짙다. 다시 말해 주범은 옥시와 김앤장이며 서울대 조 아무개 교수는 종범일 가능성이 크다. 호서대 유 아무개 교수는 아직 용의선상에 머물러 있다(유 교수 부분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정확하게 서로 어떤 짬짜미가 있었는지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조 교수는 구속된 뒤 변호인의 입을 통해 매우 중요한 국책 연구 과제 7~8개를 한꺼번에 진행 중이어서 옥시 쪽에 보낸 보고서가 재판에 어떻게 활용됐는지, 어떤 내용으로 재판부에 제출됐는지 관심을 가질 경황이 없었다고 변명했다. 정부와 정부 기관이 한 전문가에게 어떻게 이렇게 많은 국책 연구 과제를 연구하게끔 허용하는지, 또 서울대는 왜 이를 허용하는지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묻고 따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 교수 밑에서 살균제 독성 연구에 참여한 한 연구원의 말을 빌리면 독성이 나타난 부분(임신한 쥐 15마리 중 13마리에서 몸속 새끼가 숨진 것 등)은 빼고 보고서를 만들라고 하는 지시를 조 교수한테서 받았다고 털어놓은 점으로 미뤄 조 교수는 사전에 옥시 김앤장과 짬짜미를 한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연구비 2억5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돈에 눈이 멀어 학자의 양심을 팔아버린 셈이다.
우리 학계에서도 청부 연구-과학은 곳곳에서 똬리 틀어
우리 학계에서는 돈에 눈이 멀어, 심하게 말하면 환장해 발주자의 입맛에 맞는 연구를 해주는 청부 과학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식품이나 건강 기능 식품, 유해성 연구, 안전성 연구 등 많은 부문에서 청부 과학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은 삼성 쪽이 인정하긴 했지만 몇 년 전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발생 등 산업재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은 청부 연구로 이름난 국제 연구 용역 컨설팅 회사 '인바이런'에게 거액의 용역비를 주고 삼성 반도체와 백혈병은 상관이 없다는 식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고선 "글로벌 최고 수준의 연구 결과로서 이번 조사는 객관성과 투명성이 보장됐다"고 밝혀 피해자와 그 가족들한테서 거센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삼성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연구하는 기관이라고 강조한 그 '인바이런'은 '필립모리스'와 폐암 환자의 소송에서 담배 회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으며,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의 고엽제 문제가 미국에서 불거졌을 때는 참전 군인들의 건강 문제가 고엽제와는 무관하다는 결과를 낸 바 있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기관으로 양심 있는 학자 사이에서는 자리매김했다.
서울지방검찰청 가습기 살균제 특별 수사 팀은 최근 국내 산업 보건, 독성학, 역학 전문가 20명가량을 한데 불러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과 살균제와 중증 폐질환과의 인과관계 연구가 적절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자리에서 단 한 명도 토를 달지 않고 만장일치로 연구 내용과 역학 결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이 죄다 비양심적인가? 아니면 조 교수와 유 교수가 양심적인가?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직업병 환자 판정 2년 뒤 논문 낸 의사들
1988년 원진레이온 노동자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참사 사건 때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1987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팀이 우리나라 최초로 원진레이온 노동자 4명에게서 이황화탄소 중독증 사례를 확진해 직업병으로 판정했다. 하지만 이를 학계나 외부에 알리지 않고 쉬쉬한 일이 있었다.
내가 1년 가까이 지난 뒤인 1988년 7월 그 실상을 <한겨레>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리면서 그 대학 교수들을 비판하는 보도를 하자 의대 교수는 곧바로 이런 전화를 해왔다. "우리도 조만간 이를 학계에 보고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라고.
고대 의대 교수들은 자신들이 이황화탄소 중독증 환자를 진단, 확정한 지 2년이 지난, 그러니까 내가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집단 발생 사실을 신문에서 알린 1988년보다 1년이 더 지난 1989년이 되어서야 대한산업의학회지에 '인견사 제조업 근로자에서 발생한 이황화탄소 중독증 판례 분석'이란 제목의 논문을 실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왜 학자들이 원진레이온 직업병 감추기에 급급했는지를 알 수 있는 정보를 접했다. 원진레이온 총무부 여직원이 전화를 내게 걸어왔다.
"작업장 이황화탄소 농도 측정 등과 노동자 특수 검진이 있고 난 얼마 뒤 회사 쪽이 대학에 거액의 연구 장비 구매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그 제보는 가능성이 높아 보여 보도하려 했으나 제보 당사자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묻히고 말았다. 그 뒤 지금까지 20여 년째 가까운 지인들과 나누는 일화로만 이야기되고 있다.
기업, 변호인 등이 '악마의 얼굴'을 하고 '악마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대학의 교수나 전문가마저 그것에 침묵한다면 국민은 정말 기댈 곳이 없다. 정부와 정치권도 악마가 쳐놓은 거미줄 속에 있다고 믿는 시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악마들이 포식하는 세상, 악마들이 돈을 긁어모아 그 돈으로 다시 하수인을 곳곳에 만드는 세상이 과연 사라질까? 이번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악마들의 내부가 낱낱이 드러나 사람 살만한 세상으로 바뀌는 것이 가능할까? 그래도 희망을 걸어본다.
지난 5년 동안 대다수 언론과 소비자, 시민 단체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피눈물 흘리며 불의와 싸워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 그리고 환경 보건 시민 단체 사람들의 가슴에 불가능하다는 말로 대못질을 할 수는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