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위험성 놓고 정부-제조사 법정 공방 시작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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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2 12:47
'가습기 살균제' 위험성 놓고 정부-제조사 법정 공방 시작
정부 "제조사 설계·표시상 결함" vs. 제조사 "당시 결함 발견 어려웠다"
(서울=뉴스1) 성도현 기자 | 2015.04.08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관계자들이 '국가 의무를 외면한 가습기 살균제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뉴스1 © News1 정회성 기자 |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부장판사 전현정) 심리로 8일 오후 열린 첫 변론준비기일에서 환경부 산하 준정부기관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하 기술원)은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13곳을 상대로 22억여원의 구상금을 청구했다.
환경부로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지원사업 업무 위탁을 받아 피해자들에게 이미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한 기술원은 이 비용을 제조사들로부터 돌려받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법원은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직접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가습기 제조사) 관리·주의 의무를 판단했지만 제조사의 책임 여부는 가리지 않았다.
당시 법원은 "국가가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았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가습기 제조사를) 관리해야 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부 제조사와 피해자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기도 해 제조사 책임이 중요하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 재판의 결과에 따라 제조사의 책임 여부가 명확하게 가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술원 측 변호인은 이날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들의 폐손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내세웠다.
기술원 측은 제조물책임법상 제조사들이 가습기 살균제 및 광고에 '폐손상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적지 않은 점을 들어 "설계 또는 표시상의 결함이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제조사들 측 변호인들은 "가습기 살균제는 개발 당시 인체에 해가 없다고 알려져 있었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도 승인 받았다"며 "당시 과학기술 수준에 비춰 (폐손상에 대한) 결함을 발견하기 어려워 책임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옥시레킷벤키저 측 변호인은 "보건당국이 발표한 자료만으로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며 "비특이성 질환인 폐질환에서는 제3의 위험인자를 배제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기술원 측은 질병관리본부에서 곧 펴낼 가습기 사건 관련 백서가 내용상 큰 의미가 있다고 보고 책 출간 때까지 준비기일을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다음 준비기일을 오는 6월3일 오후 2시에 열기로 했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사망한 피해자 유가족 6명은 지난 2012년 법원에 제조사들과 정부를 상대로 처음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이 중 유가족들과 옥시레킷벤키저, 한빛화학 등 2곳 사이에는 지난해 8월 조정이 성립됐다. 또 세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는 같은해 9월 화해권고결정이 내려졌다. 그러자 강모씨 등 2명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도 역시 취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