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건강해야19]100명 넘게 죽었는데 사과 한마디 없는 기업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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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9 16:32
100명 넘게 죽었는데, 사과 한 마디 없는 기업들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19-가습기살균제①] 가습기살균제 피해 3년-
오마이뉴스 2014.08.29 최예용(acc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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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대표적인 환경보건 운동 엔지오인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환경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다'란 타이틀로 우리 사회에서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방사능 안전, 미세먼지, 석면, 유해 식품, 시멘트 먼지 공해, 전자기파 공해, 환경호르몬, 중금속 중독 등의 문제를 공동기획해 매주 한 차례 연재합니다. 이 글에 대한 원고료는 환경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한 활동에 쓰일 예정입니다. 독자들의 성원을 바랍니다. [편집자말] |
곰 인형, 아이 장화, 여성용 구두와 남성용 운동화가 놓였다. 액자 속에는 아기를 밴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웃고 있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한켠에는 성모상도 보인다. 모두 주인 잃은 물건들이다. 변신로봇을 갖고 놀던 남자아이, 노란 장화를 신고 뛰놀던 여자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 2014년 8월 28일 낮 12시경 서울역 광장. 가습기살균제 피해 가족들이 모였다. | |
ⓒ 환경보건시민센터 |
이들 물품들 사이 사이에 놓인 것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세퓨 가습기살균제, 애경 가습기메이트, 롯데마트 PB상품 와이즐렉과 이마트 PB상품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다. 파란 하늘이 높고 청명했던 이날 전국에서 모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유품 100여점이 서울역광장 계단에 전시됐다.
대구에서 소포로 보내온 유품박스에는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낸 엄마의 안타까움과 슬픔이 담긴 글이 담겨 있었다. 소개한다.
저의 품을 떠나 다른 분들께 '봐주세요'라며 내놓기에도 아깝고 아련한 저의 아가 유품입니다. 엄마 배 속에서도 아팠고 아프게 태어났고 아프다가 하늘로 갔지요...
정확한 인체구조와 체내 생리적 활동에 대해 언급할 만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어미지만 (가습기살균제의) 치명적인 화학 독성분이 어떤 형태로든 인체로 유입되면 몸의 방어체계가 무리하게 가동되리라 생각합니다.
약했던 곳은 터졌을 것이고 생겨나려 하던 곳은 기형으로 그 모습을 달리했겠지요. 폐 부분의 일정 부분을 보고 살균제 독성의 부작용을 모두 논하기엔 무리 있는 주장이라 봅니다.
저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아기 두 명(2005년에 31주 태아사망, 2007년에 출산 124일 만에 영아 동영이 사망)을 잃었지만 이번 판정에서 4단계를 받았어요. 3단계 4단계를 받은 환자와 그 가족들의 억울한 고통에 고개 돌리지 마시고 다시 한번 심도 있고 고민있는 재심을 부탁드립니다.
이 엄마가 잃은 아이의 피해사례는 질병관리본부의 조사위원회 판정에서 '(가습제살균제 관련) 가능성 거의 없음'을 뜻하는 4단계를 받았다. 뱃속 태아사망문제는 아예 판정 대상에 포함되지도 못했다. 엄마는 낙심했고 필자와 전화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느라 대화를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고민 끝에 환경부가 주관하는 재심사를 신청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3년, 적반하장인 기업들
▲ 아기야 미안해... 왜 엄마만 미안해하고 있을까. | |
ⓒ 환경보건시민센터 |
20여개 가습기살균제 제품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며 피해자 가족모임과 시민단체에 신고·접수된 인원은 약 500명 가량이다. 그러나 올해 초 질병관리본부가 주관했던 1차 조사위원회 판정대상은 361명, 그리고 현재 신규로 92명이 추가로 접수되어 있다.
이 가운데 정부가 (1등급에서 4등급으로 나눠) 피해의 관련성을 판정된 사망사례는 1차 조사대상 104명이고 2차 조사에서 판정을 기다리는 26명의 사망사례 등 모두 130명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2011년~2013년 말까지 집계한 신고 사망자는 모두 144명이다. 이중 1차 정부조사에서 40명의 사례가 참여하지 않았다.
'정부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 '이제 와서 조사한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느냐', '보상금 몇 푼 받겠다고 아픈 기억을 들추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태아 사망의 경우는, 관련성을 판단하기 힘들어 1차 판정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가족 모임과 시민단체 등은 1, 2등급뿐만 아니라 3, 4등급 분들도 다 피해자라고 여기고 있다.
▲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 죽은 아이들의 유품들. | |
ⓒ 환경보건시민센터 |
그밖에 아예 신고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피해도 상당수 일 것으로 보인다. 1994년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개발되어 시판된 이후 사건이 알려져 정부에 의해 판매금지된 2011년 11월까지 이 생활용품을 사용하다 원인미상의 폐질환, 호흡기질환 등으로 사망했거나 아파했을 수많은 시민들이 그들이다. 영유아 시기에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 병원신세를 졌던 아이들이 지금 10대와 20대로 자랐는데 여전히 폐가 좋지 않다며 걱정하는 사례도 계속 보고되고 있다.
2014년 8월 31일은 한국초유의 환경피해사건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알려진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옥시싹싹을 만들어 판 가습기살균제 최대기업 옥시레킷벤키저와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 판 롯데마트, 이마트 등 대형할인마트사들 그리고 거의 모든 제품에 원료를 공급한 SK케미칼과 같은 기업들은 지금까지 피해자와 가족들 앞에서 공식적인 사과는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마지못해 유감 표명을 했던 게 전부다). 그런데도 이들 기업들은 적반하장식으로 정부의 조사가 잘못되었다며 김앤장과 같은 대형로펌을 앞세워 법적소송에 몰두하고 있는 게, 가습기살균제 피해 3년을 맞는 오늘의 모습이다.
▲ 로봇을 가지고 놀던 아이는 이제 더이상 없다. | |
ⓒ 환경보건시민센터 |
덧붙이는 글 | 최예용 기자는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이자
보건학박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