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고통(24)] 위험관리시스템 구멍, 이대로 보고 있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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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고통(24)] 위험관리시스템 구멍, 이대로 보고 있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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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관리 시스템 구멍, 이대로 보고 있을 건가?

[끝나지 않은 고통, 가습기 살균제 비극<24>]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대로 끝나나

프레시안 2014 4 24

김선경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 
2011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는 원인 미상의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발표를 하였다. 발표 후 가습기 살균제는 우리 주위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건강 지킴이로 필수품처럼 여겨왔던 가습기는 요즘 병원, 어린이집, 산후조리원, 학원, 가정에서 눈에 띄게 줄었다. 2012년부터는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간질성 폐렴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1차 조사도 완료되었고, 정부 차원의 피해자 지원 대책도 마련되었다.

그동안 추진해 왔던 정부의 피해 대응 방식이나, 현재 추진하고 있는 피해 지원금 지급과 추가 피해자 조사 계획 추진 과정 등을 보면 정부가 얼마나 소극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단일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가정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제한된 인식으로 인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발생에는 정부, 기업들, 언론, 의료진을 포함한 전문가 등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복잡한 사건을 단순화시켜 쉽게 사건을 종결시키려는 정부의 바람이 반영된 것이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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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_1389879034.jpg▲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이 지난 2011년 11월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분석틀

우리는 사고의 틀을 통해 문제를 들여다본다. 문제의 인식, 원인 도출과 해결책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모형이다. 그 모형은 크게 합리주의적 접근, 구조주의적 접근, 문화주의적 접근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어떤 모형을 사용하여 분석하는가에 따라 사건의 원인은 크게 달라진다. 합리주의적 관점은 사건을 하나의 실체로 바라보고 분석을 하는 방식이다. 가장 핵심적인 원인을 도출해내는 장점을 가진 반면, 결과에만 집중하여 발생 과정에 기여한 다양한 요인들을 배제시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집단들의 행위, 시스템, 제도 등을 분석 대상으로 하는 구조주의적 모형을 통해 문제의 발생 과정의 구조적 특성과 제도의 문제를 파악하여야 한다. 그리고 보다 심층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사건과 관련된 집단들에 속한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행동 원칙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밝혀내는 문화주의적 모형을 사용하여 사건을 들여다봐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발생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전형적인 답변은 '가습기에 살균제를 첨가하여 사용하였고, 그로 인해 폐 손상 등의 신체적 이상이 발생하였다'일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술한다면 ‘가습기의 초음파 기능으로 인해 살균제가 미세한 입자로 공기 중으로 분출되었고, 그 미세입자들이 호흡기로 침투하여 폐 세포를 손상시켰다’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문장은 합리주의적 관점에 기반을 둔 원인 추론 방식에 의해 도출되는 것이고,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다루어지게 된다.

이와 같이 합리주의적 관점을 통해서 도출되는 대책은 가습기 사용 자제와 가습기 살균제 사용 금지와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합리주의적 접근으로는 원인을 파악하는데 10년 이상의 긴 세월이 걸린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사건 발생에 누가 어떤 방식으로 개입되었는지를 밝혀낼 수 없고, 다양한 변수들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위험성 파악에 실패한 원인 밝혀야

이런 합리주의적 모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다음 단계로 구조주의적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지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원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혹은 판매한 기업들과 관련된 문제이다. 가습기나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한 기업은 해당 제품이 어떤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소비자에게 알려야 하고 사용 시 주의사항을 정확하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유통시킨 많은 기업들이 자신의 상품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이유를 밝혀야 한다. 가습기나 가습기 살균제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파악하는 데 실패한 원인도 밝혀야 한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봐야 할 다른 요소는 국가의 질병 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현재 국가의 질병 관리 시스템은 세균성 혹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치우쳐 있고 환경성 질환인 폐손상과 가습기 살균제의 인과 관계를 밝히는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한국의 의료 시스템 역시 비슷한 문제가 있다는 것도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한 원인으로 봐야한다.

즉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 생산 및 판매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찾아낼 수 있다. 또한 의료 체제를 포함한 국가의 질병 관리 시스템에 증대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준다. 그래서 기업이 생산 공급하는 상품에 대한 리스크 관리 방안 수립과 환경성 질환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질병관리 시스템의 보완 등의 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준다.

세 번째로는 문화주의적 접근을 통해 사건을 보다 심층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 단계에서 파악해야 할 것은 가습기와 살균제를 사용하게 된 이유와 보편화된 배경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이다.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보편화 된 배경과 그에 기여한 것들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보편화된 데에는 언론 매체의 역할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의료진을 포함한 전문가 집단이 가지고 있는 적정 습도에 대한 잘못된 개념, 세균에 대한 공포, 잘못된 위생 개념 등이 가습기와 가습기 살균제를 확산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지닌 위험 관리 시스템의 치명적 결함 사건

또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기업들은 그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한 이유와 소독용으로 사용해야 할 살균제를 첨가제로 판매하게 된 이유도 밝혀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밝혀진 지 3년이 지나도록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법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기업들의 태도 역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발생의 원인 중 하나로 인식해야 것이다.

이와 같이 문화주의적 관점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원인은 도덕성, 기업의 윤리와 의무 등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또 생명 존중보다는 경제적 이득에 우선하는 가치관에 만연되어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드러낼 수 있게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매우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한 것이며,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위험 관리 시스템의 치명적 결함으로 인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서 한국인들에게 만연되어 있는 가치관과 도덕성의 문제가 깊게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사건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이고,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부분에 의한 요인만을 파악한 수준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선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악(惡)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에만 치중하는 것만으로는 그러한 악은 소멸되지 않는다.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악(惡)은 다른 모습으로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며 그 마성을 드러낼 것이다. 이렇게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종결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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