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제조 판매 SK케미컬 전 대표 보석 석방
2019.09.01 경향
흡입 독성 원료로 만든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이사가 풀려났다. SK케미칼 측은 독성 원료의 유해성을 부인하며 관련 증거 채택을 모두 반대해 재판이 지연되고 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지난 달 30일 홍 전 대표의 보석청구를 인용했다. 홍 전 대표 측은 심문기일에서 “15년째 암투병” 중이고 SK케미칼 측 증인신문을 모두 마친 만큼 구속에 따른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 측은 SK케미칼이 가습기살균제 관련 객관적 자료를 모두 없애 박철 부사장 등이 증거인멸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점 등을 내세워 “그 회사 대표였던 피고인을 석방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또 홍씨 건강에도 이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홍 전 대표의 보석 청구를 인용했다.
SK케미칼 측은 가습기메이트의 유해성을 부인하는 전략으로 재판에 임하고 있다. 지난 달 5월부터 8월 말까지 7회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각종 논문이나 정부 역학조사 자료 등에 대한 증거 채택을 모두 거부했다. 심지어 검찰 측에서 조사한 피해자 수십명에 대한 자료에 대해서도 증거 동의·부동의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검찰 측은 “논문 저자나 연구인들을 모두 법정에 불러 신문을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재판 장기화를 우려하고 있다.
환경부는 2018년 가습기메이트의 흡입 독성 원료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이용자의 폐손상 피해를 공식 인정했다. 정부의 공식 의견이 있고 학계와 역학조사 등에서 CMIT·MIT 원료의 유해성이 인정됐음에도 SK케미칼이 유해성 자체를 반박하는 것은 사실상 내놓을 카드가 없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홍 전 대표가 받는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다. 업무상과실치사상은 제조 판매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지키지 않아 인명 피해를 낸 경우를 말한다. 이영순 전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는 지난 달 열린 가습기살균제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1994년 10월 SK케미칼로부터 독성평가 연구 의뢰를 받았는데, 시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인 연구 의뢰 한 달 만에 제품 판매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증언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이 가습기살균제 관련 협의체를 구성해 검찰과 환경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 온 정황도 드러났다. 이들 협의체는 2017년 10월18일 여의도에서 열린 1차회의 ‘형사 관련 모니터링’과 관련, “새로 부임한 형사2부 부장검사는 검찰 동향 모니터링 중이기는 하나 공정위로부터 자료 등을 받은 것이 없고 당장 조치 취할 계획은 없다고 함”, “살인죄 등 명백히 죄가 성립되지 않는 죄책은 무혐의로 종결하고, 나머지 부분은 환경부 실험 결과 나올 때까지는 시한부기소중지로 처리할 예정”이라는 의견을 나눈 것으로 밝혀졌다.
SK케미칼과 애경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의 피해자는 사망자 12명과 부상자 87명으로 집계됐다. 옥시레킷벤키저 제품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