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신문]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의사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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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의사의 책무

최예용 0 7154

아래 글은 대한의사협회가 발생하는 의협신문 2016년 4월 16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하여 의사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취지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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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교훈

 

질문1, 선생님께서는 가습기를 사용할 때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질문2, 그럼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할 대나 그 이후에 호흡기 질환 등 건강상 피해를 경험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께 위와 같은 질문이 주어지면 100명중 22명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할 것이고, 22명의 20.9% 그러니까 6-7명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 건강상의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고 답할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2015 1218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서울대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과 공동으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에 의뢰하여 전국 만 19세 이상 휴대전화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추출 자동응답(RDD ARS) 방식으로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표본수는 1,000명이었고 2015 11월말 현재 국가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비례할당 후 진행한 설문조사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였고, 응답률은 8.9%였다.

 

이 여론조사결과 응답자의 22%가 질문1에 대해 사용경험있다고 답했고 78%사용경험없었다고 답했다. , 사용했다는 응답자에게 물은 질문2에 대해서 20,9%건강피해경험있다고 답했고 79.1%건강피해경험없다고 답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서 50대의 나이라면 가습기살균제 사용경험과 피해경험에 대한 응답률이 평균보다 더 높을 수 있다. 이 여론조사결과 50대의 사용경험 응답이 31.7%였고, 피해경험 응답이 26.1%이기 때문이다. 

 

제가 결혼해 신혼집 꾸리고 아이 낳고 그럴 때는 집집마다 가습기를 사용했고 그 옆에 가습기살균제를 놓아두는 게 아주 흔했어요. 가습기는 누구나 사용하는 가전제품이었고 살균제는 필수품처럼 여겨졌죠대전에서 사회활동하는 40대 초반의 여성이 한 말이다.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대기업 유공(현재의 SK케미칼)에 의해 세계최초로 개발되어 TV광고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할인마트들이 앞다투어 자체 PB상품으로 가습기살균제를 내놓았고 아파트 거주문화의 확산과 맞물려 가습기살균제는 생활필수품처럼 여겨졌다.

 

2011년 말 정부가 역학조사에 이어 동물실험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을 확인한 후 판매금지조치를 내릴 때까지 17년간 제품 판매가 증가추세에 있었고 20여개의 제품이 매년 60만개 팔렸다고 한다.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았고 피해자도 가장 많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제품의 경우 12년간 453만개가 팔렸다.

 

이 글을 쓰는 2016 44일 현재까지 조사되고 접수된 피해자 신고는 모두 1,528명이다. 이중 사망자는 239명이다. 피해신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 중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몇 명이고 피해자는 얼마나 되는 걸까? 앞의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당시의 전체 인구규모에 적용하면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는 1,087만명이고 피해경험자는 227만명이 된다. 믿기 어려운 숫자다. 여론조사방식이 100% 랜덤하게 진행되었다고 보기 힘든 측면도 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은 가습기살균제 사용인구를 800만명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사용자 1천만명이 과장된 수치가 아닌 것이다.  

 

독성학자들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세계최초의 바이오사이드 사건’, ‘한국판 탈리도마이드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바이오사이드(biocide)란 말은 좀 생소한데 해충을 죽이는 살충제 농약을 뜻하는 페스트사이드(pesticide)를 빗대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를 죽이는 살균화학물질이 포함된 생활용품에 의한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문제를 말한다. 농업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균과 해충 등을 제거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생활용품이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를 뜻한다. 

 

탈리도마이드는 1957년부터 1961년 사이에 독일의 산모들이 입덧완화제로 복용한 진통제 콘테르간에 의해 발생한 기형아 출산 사건이다. 페니실린으로 유명한 독일의 제약회사 그루넨탈이 판매한 이 약의 성분이 탈리도마이드다. 독일에서만 5천여명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절반이 사망했고 생존자는 팔다리가 짧거나 다른 장기가 없거나 기형인 상태다. 독일 이외에서도 1천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임신초기 태아의 주요 장기가 형성되는 시기에는 어떤 약도 먹지 말아야 하고 주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가습기살균제는 가정용품이고 탈리도마이드는 약품이라는 점에서 다르지만 피해규모, 영유아와 산모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다는 점, 정부와 기업이 전혀 문제를 인지 하지 못했다는 점 등에서 유사한 점도 많다.   

 

최근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강도높은 수사를 하면서 제조사들을 최소한 과실치사로 형사처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제조사들의 증거조작 문제가 불거지는 등 새로운 양상으로 사건이 전개되면서 연일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45일과 6일 양일간에는 주요한 4개의 신문들이 사설로 이 문제를 다뤘다. 어떤 사설은 이 사건을 화학물질의 세월호 사건이라고도 표현했다. 사망자 숫자와 사람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피해사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적지 않은 피해신고자들이 가습기살균제를 병원에서 사용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병원 측에서 가습기살균제를 구비해 놓고 사용했다고도 하고 어떤 경우는 환자의 보호자들이 이 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군데의 병의원도 자신들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고 밝히며 환자들에 대한 피해여부를 조사해달라는 신고는 없다. 제조사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가습기살균제의 문제를 알지 못했으므로 당연히 병원에는 잘못이 없다. 피해자들의 고발과 검찰의 수사 대상도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한 제조사와 원료공급사 그리고 자신들의 이름을 붙인 PB상품을 만든 대형마트들이지 이들 제품을 판매한 도소매점들이 아닌 것과 같다.

 

하지만 여러가지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가습기살균제를 넣은 가습기를 사용했다면 당연히 치명적인 영향을 입었을 것이고 이러한 점들에 대한 병원차원의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초기에 감기증세를 보여 가습기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살균제도 더 열심히 넣었다는 사용환경을 생각하면 가습기살균제 사용이 환자의 증세를 악화시키고 조기사망에 이르게 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2012 10월 중순 독일남부 슈투트가르트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가량 걸리는 알멘딩엔를 찾아 탈리도마이드 피해자전국협회의 대표인 마깃 훈데마이어를 만났다. 그녀는 다리는 멀쩡했지만 팔이 짧아서 손이 어깨에 붙어 있었다. 그녀가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제 어머니가 저를 임신했을 때 콘테르간 딱 한 알을 먹었다고 해요.’ 단 한 알의 알약이 엄청난 비극을 낳은 것이다.

 

세계적인 일본의 미나마타 공해병 문제와 평생을 싸웠던 고 하라다 마사즈미 선생은 수은에 오염된 생선을 먹은 엄마가 낳은 기형 아이가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임을 밝혀낸 신경과 의사다. 2005년 환경보건 초청강의 자리에서 그가 환경문제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된다라고 말했을 때 감전되는 듯한 전율을 느꼈었다.  

 

가습기살균제로 어린아이를 잃은 피해자들 중에는 겨울 한 철 동안 단 2-3통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루 종일 방에 누워지내는 영유아와 그 옆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산모들이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다. 피해 유족들은 자신이 사다 직접 넣어준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가족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내 손으로 내 아이를, 부인을 죽게 했다는 자책감을 이겨내기 힘들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숙제와 교훈을 주고 있다. 크게는 화학물질의 남용이라는 측면, 사회안전의 취약점, 생활용품의 제조판매과정에서의 안전장치의 문제, 피해발생 후 피해대책과 원인자에 대한 책임을 제도화 하는 문제가 있다.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는 환기를 잘 하지 않게 되는 아파트 주거문화도 고민되어야 하고 영유아와 산모를 보호하는 생활환경을 어떻게 만들지도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모든 피부노출이나 음용시 안전하더라도 호흡노출시 전혀 다른 건강영향을 일으킨다는 것이 이 사건의 직접적인 교훈이므로 화학물질 사용시 용도가 달라지면 처음부터 안전점검을 해야 하고, 스프레이형 생활용품에 대해 호흡독성 안전시험을 의무화해야 하는 제도적인 측면은 빠른 시간내에 반드시 보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료계와 의료인 한사람 한사람이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도의적인 책임과 함께 환자를 케어하는 의료인에서 지역사회의 건강을 돌보는 보건의료계로서의 자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환경보건학 박사)

choiyy@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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