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12월5일, 우리 모두 하회탈을 쓰자 / 김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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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12월5일, 우리 모두 하회탈을 쓰자 / 김봉면

최예용 0 5278
한겨레신문 2015년 12월3일자
 
어이쿠, 내 말 좀 들어 보소. 대관절, 우리 각하 역사책 국정화하고 노동법 손보실 때, 이걸 반대하다 생긴 충돌 두고 과잉진압이니 과격시위니 말 많더니, 급기야 여의도 고관들의 도움을 받아 복면금지법을 추진한다 하실 새, 온 세계에 그 민망함 참을 길 없어 이렇게 사설 늘어놓소. 조선시대면 봉산탈춤도 집시법 위반이었겠구려. 아무튼, 곧 그 법 제정될 것 같다 하니, 전통문화 없어지기 전 신명난 탈춤판 한번 벌여보오!

 

통재라. 백남기님이 물대포 맞아 사경 헤맬 때 고관 하는 말이, 시위대 폭력 때문이라더라. 아이고야, 그 사람 경찰 손끝 하나 안 건드렸구먼. 또, 그날 보니 차벽 없었을 땐 집회와 행진 모두 평화로웠다오. 차벽은 헌재도 불법이라 했다는데, 그것 없었으면 충돌도 없지 않았겠소? 하긴 지금 ‘국정화’도 교육과정 고시 위반이라는디, 불법 행한 자가 그 불법 막으려는 사람들을 불법으로 가두니, 방귀 뀐 사람 성낸다는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더라. 차벽 안 쳤는데 차를 밀치는 사람이 있다면 기물파손죄로 내가 잡아 족을 치리다! 아니, 차벽이 없으면 차를 밀칠 일도 없지.

 

보소. 가습기 살균제로 사람이 죽었으면, 주먹 하나 안 내질러도 그것이 폭력인기라. 그 기업 사과는 고사하고 대책 마련은 하셨소? 세월호가 나리들 말마따나 ‘교통사고’면, 직후 당연히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죽게 만든 것도 폭력이오. 폭력은 먼저 부리고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만을 폭력적이라 하면 민초들은 우째 살꼬. 그러면 역사적으로다가 3·1운동, 4·19, 5·18, 프랑스 대혁명 다 폭력적이었을 텐데 왜 그것을 ‘폭력’이라는 말 대신 의로운 일이라고들 허는지 고관들도 알고 계실 것이오. 안중근을 살인자라고 말하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수없이 많은 조선인들이 죽거나 다치게 되는 것을 막고자 한 사회적 정당방위로 후세가 기억하는 것도 같은 이치 아니겠소? 약자들 마지막 몸부림 보호해주고 그 목소리 들으려 못할망정 테러리스트도 복면을 쓰지 않았느냐며 이제는 시민을 테러리스트와 동일시하려 하오? 저녁 준비하는 아낙네가, 식칼 들고 있다고 살인범은 아니잖소.

 

오해하지 말구려. 일부 심각한 폭력을 사용한 사람들은 처벌하소. 하지만, 백남기님과 대다수 10만여 시민들을 향해 불법시위 운운하는 것과, 소수의 폭력을 침소봉대하여 정부의 본질적 잘못을 덮는 것은 더 큰 저항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것을 나랏님과 고관들은 깊게 생각하소.

 

또, 이번 12월5일, 그 총궐긴가 뭔가 준비하는 양반들 부탁하오. 광화문 걸으나 시청에 앉아 있으나 같은 하늘 아래요. 우리가 이승만 각하 하야시킬 때처럼 경무대 향하는 것도 아닌데 광화문까지 못 가면 좀 어떻소. 요번 일은 초등생도 다 알고 있는 얘기니께 목 아프게 구호 외칠 것도 없이 그냥 줄창 앉았다가 왔으면 쓰것구먼. 사람 많이 모이면 더 흥 나겄제.

 

헌디, 어떤 기자 양반은 집회 때 온갖 종류의 탈과 가면을 쓰자고 하셨소. 허허, 모를 소리! 각하께서 다양성이 문제라고 하셨거늘 무슨 소리 하는 거요. 역사책도 누가 쓰는지 모르게 집필하고 있는 마당에, 다양성은 개뿔! 단 하나의 탈을 써야 하오. 우리의 전통 하회탈.

 

종이 하회탈을 준비해 주소. 세월호도 국정원도 ‘국정화’도 이렇게 지나왔으나, 결국 복면금지법까지 제정돼 기껏 그 하회탈조차 집회 때 벗어야만 하는 그날이 오면, 우리도 하회탈에 품은 민주주의에다가 제사 지내고는, 결국 그 민주주의를 없앤 각하를 그 파란 지붕 아래가 아닌 평범한 사람 사는 동네로 모셔 와야 할지도 모르오.

 

그러니 그날은 구호도, 횃불도, 행진도 준비하지 말고 간디처럼 하회탈만 쓰고 앉아서 하루를 살아보오. 그런데도 경찰이 나서서 차벽을 또 설치한다면? 미래의 집회를 미리 불법이라며 민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민초들로서는 이 역사의 불의 앞에 나서지 않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시국이겄소. 선장의 부당한 지시에 가만히 있다가 목숨을 잃은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 저 하늘에서 더 이상 어른들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 <왜냐면>은 필자 이름의 실명 표기가 원칙이나, 풍자 성격을 나타내고자 하는 필자의 요청에 따라 가명으로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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