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안전하다는 말만 믿었는데"... 병원 간호조무사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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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안전하다는 말만 믿었는데"... 병원 간호조무사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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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피해자 조인재씨가 직접 작성한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
가습기살균제피해자 조인재씨가 직접 작성한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 ⓒ 변상철 관련사진보기

"병원에서 일하면 건강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폐가 망가졌습니다."

올해 60세를 맞은 조인재씨는 10여 년 전부터 지속된 건강 악화와 함께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병원 근무 당시 공기 질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했던 가습기살균제는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광고 문구로 포장되어 있었고, 그것이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지난 2011년, 사회적 공론화 이후 밝혀진 대한민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환경·사회 재난이다. 수천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다수는 피해를 입증하지 못한 채 "해당 사항 없음" 판정을 받고 고통의 일상을 이어간다. 조씨 역시 그중 한 사람이다.

"폐암이라니요? 저는 건강한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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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재씨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자각한 건 2016년 1월이었다. 직장을 구직해 명지성모병원에 입사한 그는 3차 면접까지 통과한 끝에 간호조무사로 채용됐다. 그러나 입사 후 받은 채용 신체검사에서 우측 폐에 3cm 크기의 결절이 발견되었고, 호흡기 내과의사는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며 즉각 정밀검사를 권유했다.

"믿기 어려웠어요. 평소 운동도 꾸준히 하고, 몸 관리를 열심히 해왔는데 폐암이라뇨. 가족력도 없었습니다."

그는 며칠 밤을 고민하다가,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할 당시(2007~2009년 겨울) 사용했던 가습기살균제를 떠올렸다. 난방기와 함께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 설치된 가습기에 당시 SK유공, 애경, 롯데 등의 제품을 사용했고, 심지어 마트 직원이 권한 옥시 제품까지 구입해 사용했다.

"병원 안이니, 제품도 검증됐겠지 싶었죠. 청결과 살균이라는 문구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은 곧 신체의 고통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결국 직장을 포기하고 정밀검사를 받았고, '폐암'이라는 확정 진단과 함께 수술, 절제, 장기적 치료의 길에 들어서야 했다.

"기다리라는 말뿐… 피해자도 사람입니다"

조인재 씨가 현재 매일 복용하는 약과 호흡기구.
조인재 씨가 현재 매일 복용하는 약과 호흡기구. ⓒ 변상철 관련사진보기

조씨는 환경부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신청을 했다. 그러나 이후 몇 년간 그의 신청은 답보 상태였다. 담당부서의 피드백은 "기다려 달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2024년 3월 26일 '구제급여 지급대상이 아님'이라는 최종 통보를 받았다.

"환경부는 간담회도 하고 있다지만, 정작 피해자의 삶은 모릅니다. 저희는 매일 숨 쉬는 것도 힘든데요."

올해 서울성모병원 가습기살균제 보건센터에서 받은 검진결과에 따르면, 조씨는 "경도의 제한성 폐기능 장애가 의심"되고, "염증 수치가 상승"된 상태였다. 과거 폐암으로 인해 폐 일부가 절제되면서 횡격막이 위로 당겨졌고, 심장이 커지며 호흡 곤란 증세가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조씨는 흡입기 사용은 물론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의 양도 많아졌다. 실제 사진 자료에는 흡입기, 약 봉투, 그리고 폐 절제 이후의 엑스레이 사진까지 첨부되어 있다.

왜 등급을 나누나요? 고통은 다 똑같습니다

조씨는 그동안 지방의 공기 맑은 곳으로 두 차례나 이사했다. 서울의 탁한 공기 속에서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 비용과 생활비, 의료비는 만만치 않다. 일상적인 분노와 우울감, 불안감은 그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고, 가족 역시 경제적·심리적으로 지쳐가고 있다. 그는 호소한다.

"왜 피해자를 1, 2, 3, 4등급으로 나누나요? 피해는 단일한 고통입니다. 숨이 차고, 통증이 오고, 병원에서 산다는 사실이 등급으로 나눠질 수 있나요?"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는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보상금 요구가 아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치료비 지원'과 '정당한 인정'이다. 그는 "안전성 검사도 없이 시판된 제품을 믿고 사용한 죄밖에 없다"며, 정부가 판매를 허가한 사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가습기살균제는 조씨에게 '공기 중 살인자'였다. 병원이라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도 이 살균제는 치명적인 독성으로 피해자를 만들었다. 조씨는 지금도 매일 약을 먹으며 삶을 버티고 있다.

"살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보상금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숨을 쉴 수 있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을 뿐입니다."

그의 말처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참사'라는 단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삶의 균열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조씨의 사례는 단지 한 사람의 피해를 넘어, 이 나라의 안전과 책임, 그리고 회복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중 의료업에 종사하던 분들의 피해 통계에 대한 직접적인 수치나 비율을 담은 언론 보도는 현재까지 명확하게 확인되 않고 있다. 하지만 앞서 발표된 언론보도와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비추어 보면 의료기관에서의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광범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의료진이나 입원 중인 환자에게 피해를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8월 12일 환경보건시민센터("병원에서의 가습기살균제 노출은 가정에서보다 훨씬 치명적이다")는 이훈 국회의원 자료실을 토대로 전국 337개 종합병원 중 8곳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가습기 실균제를 구매하여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 8개 병원이 총 1223개의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했다고 자진보고한 것이다.

또한 2019년 한국환경보건학회지("병원에서의 가습기살균제 노출 사례연구")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와 폐질환 인과관계 규명 조사의 피해 신청인 4393명 중 301명의 피해 신청인이 병원, 요양원 등 의료기관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것으로 응답했다고 한다. 이 301명 중 생존자는 139명, 사망자는 162명으로 다른 곳에 비해 사망률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의료기관 내 사용 환경을 고려할 때 의료진(의사, 간호사 등) 또한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이러한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다만 이들이 '의료 종사자로'로서 피해를 인정받았는지에 대한 별도 통계는 찾을 수 없다. 따라서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중 의료업 종사자 비율'에 대한 적접적인 통계는 찾기 어렵지만, 의료기관 내 사용으로 인해 의료진이 피해를 입었을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하며, 이는 추가적인 조사와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조인재씨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피해자의 시간'이 얼마나 더디고 외로운지를 다시 확인했다. 피해 입증의 책임을 오롯이 개인에게 지우는 구조 속에서, 국가와 기업은 과연 얼마나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왔는가. 조씨의 삶은 단지 한 사람의 기록이 아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전체의 현실을 상징한다. 더 늦기 전에, 국가가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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