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두 가습기살균제 썼지만 아들만 피해자가 아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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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두 가습기살균제 썼지만 아들만 피해자가 아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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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모두 가습기살균제 썼지만 아들만 피해자가 아니래요”


쿠키뉴스, 2021.8.31 

[가습기살균제10주기] ③ “피해자 납득 어려운 환경부 피해 질병 인정”
“가족이 함께 쓰는 가습기살균제 특성 반영돼야”

3696679571_wYVm8IjN_04f325d36d10d39dc44004bfbab17d9ff4f5794e.jpg23일 자택에서 만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민수연씨가 본인이 겪고 있는 질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사진=박민규 기자
[편집자주] 2011년 2월,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산모가 병원에 입원했다. 호흡이 어려운 상태였다. 각종 약물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원인 미상 폐렴. 이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같은해 8월31일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역학조사결과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지목했다. 사망자 1687명을 기록해 일명 참사라고 불리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세간에 드러나 진상규명을 시작한 지 올해 10주기를 맞지만 2021년은 참사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는 때이기도 하다. 법원이 ‘가습기메이트’를 판매한 SK케미칼, 애경산업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사건을 매듭짓기엔 갈 길이 멀었다며 여전히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온 가족이. 가습기살균제를. 같이 썼어요. 그런데 첫째 아들만. 천식을. 피해 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했죠.”

한 문장을 채 끝내기도 어렵다. 지난 23일 만난 민수연씨(53·여)는 1994년부터 2011년까지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당번(옥시 판매/PHMG 성분), 가습기메이트(SK케미칼 제조·애경산업 판매/CMIT·MIT 성분)를 사용한 피해자다. 직장에서 유능한 능력으로 승승장구했지만, 가습기살균제를 쓰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그는 털어놨다. 민씨는 그의 가족을 무너뜨린 가습기살균제가 여전히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토로했다.

1994년이 시작이었다. 깔끔한 성격인 친언니가 집안 가습기에 넣어주는 살균제는 동생을 향한 애정과 사랑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광고에서 보여주는 행복하고 따뜻한 가족의 모습, 우리 가족의 모습이었다고 민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문제는 2000년대에 들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기침은 멈추지 않았고, 쇳소리가 날 때까지 쏟아내서야 가라앉았다. 결혼 후 낳은 아이들까지도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낫기 위해 대학병원, 한약, 민간의학 등을 쫓아다녔지만 원인을 알 순 없었고 처방 받은 약들은 배만 불렸다.

2011년 8월31일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가습기 속 물때가 두려워 넣었던 ‘가습기살균제’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뉴스를 봤을 때 내 이야기일 거란 생각도 못 했어요.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있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컸죠. 한참 뉴스를 보다보니 나도 피해자일 수 있겠다라는 의심이 서서히 들었어요. 그후 피해 인증 받으려고 그동안 아파서 다닌 병원 진료 기록, 가습기살균제 구매 영수증 등을 찾느라 병원, 마트를 드나들었죠.”

구매한 지 10년이 지난 가습기살균제 영수증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진료 기록지를 받을 수 있냐는 요구엔 병원 측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일쑤였다. 어렵사리 모은 서류를 가지고 환경부에 피해 인정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넣었고, 7년 뒤에야 둘째 아들 현준씨가 피해자로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온 가족이 한집에서 쓰는 가습기에 쓴 살균제지만 환경부는 달리 봤다. 

“저는 작년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았어요. 첫째 아들도 그 뒤에야 피해자로 인정 받을 수 있었죠. 집에서 가습기살균제 혼자 코앞에 틀어놓고 쓰는 집이 있나요? 온 가족이 쓰는 가습기 안에 넣어 사용하는 살균제인데,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판단 결과를 발표하는 환경부에 속 터질 때가 많았죠.”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 뛰어다녔던 날은 악몽에 가까웠다고 그는 기억을 되짚었다.

정부와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피해 질병 인정 때문이다. 기저질환 없이 건강했던 그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뒤 알레르기 천식이 생겼고 다발성 근염, 근육통 만성피로 등을 겪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다섯 차례 유산을 경험하기도 했다. 첫째 아들은 비염, 천식, 부비동염, 강직성 척추염, 만성피로증후군을 앓고 있다. 둘째 아들은 폐렴, 간질성 폐렴, 비염, 중이염, 부비동염, 천식 등의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민씨와 둘째 아들이 앓고 있는 천식에 대해 환경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질병으로 인정했다. 다만 첫째 아들은 제외됐다. 민씨는 “첫째 아들이 어릴 적 유학 간 적이 있다. 가습기살균제를 쓰고 떠난터라 유학가서도 기침과 호흡곤란 등으로 일상이 어려울 정도였는데 멀리 떨어져 있어 엄마로서 잘 챙겨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아직도 크다”며 “첫째 아들의 유학기간을 가습기살균제 노출 시기에서 제외해 이같은 환경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 때문에 첫째 아들의 진료비는 모두 사비로 지출한다. 증세 정도에 따라 최고 치료비 지출은 한 달에 500만원. 정부 지원 없이 계속 나가는 치료비에 가난으로 몰리는 상황이라며 피해 질환 인정이 시급하다고 민씨는 말했다.

3696679571_zJZGm2eW_100db38b9d0dbc19e19070688ec208063a3362ed.jpg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민수연씨가 가족들의 피해 증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사진=박민규 기자

모든 치료비가 천식 치료에만 쓰이는 건 아니다. 첫째 아들은 가족 중 가장 심한 면역계 질환을 앓고 있다. 10년 동안 가습기살균제 피해 연구를 진행한 임종한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적 ‘내 몸이 증거다’에서 민씨와 두 아들의 말초혈액 단핵세포에서는 미토콘드리아 외막, 내막 손상 소견이 보인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PHMG 성분은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를 유발한다고 임 교수는 보고 있다. 그는 “간, 신장, 골수, 신경 및 근육, 골수 손상은 면역세포의 비정상적인 면역 조절에 의해 특발성 폐섬유증과 연관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장성해 취업 전선에 뛰어든 첫째 아들에게는 직업 선택도 쉽지 않다. 평소 근육이 강직하는 증상으로 2~3시간에 한 번씩 스트레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직장에 양해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씨는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질병도 없는데 2~3시간마다 스트레칭하는 신입직원을 이해하는 곳이 있을까 걱정했다”며 “다행히도 최근 한 직장에 들어가 잘 다니고 있다. 하지만 직장 생활에서 눈치를 보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아들도 걱정하는 눈치”라고 마음을 졸였다.

민씨는 폐 질환 외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폭 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며 “증거가 어디 있느냐라고 다른 사람들은 물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야기하겠다. 아픈 피해자들이 증거다”라고 힘줘 말했다.

올해 민씨는 특히 더 아픈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본인의 삶을 불행으로 밀어 넣은 SK케미칼·애경산업이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CMIT·MIT 성분이 폐 질환에 미친 영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 소식에 억장이 무너졌다”며 입을 틀어막고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간 아픈 세월을 모두 부정당한 기분이었어요. 공정하다는 사법부의 한계인 건가. 국가와 기업에게 속아 가습기살균제를 사서 사용한 국민들은 어디에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 민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정부도 믿을 수 없다는 민씨는 불안감에 화학제품 공포감만 늘어간다. 그는 “곰팡이가 가득한 화장실을 청소할 때에도 락스 한 번을 못 쓴다. 손가락 감각이 무뎌질 때까지 솔로 타일을 문대다 보면 물집 잡히기 일쑤”라며 “언제라도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터질 수 있을 것 같다. 화학제품이라면 근처에만 가도 소름이 끼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공황장애까지 얻었다. 간혹 땅이 흔들리는 지진을 느낀다는 민씨는 처음 당황해 주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지금 땅 흔들리죠?”라고 물었다가 비정상적인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는 “나만 느끼는 걸 알고 난 뒤 정신병원에 찾아가니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며 “치료 받으면서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이들에게 숨을 쉰다는 게 가장 쉬운 일이지만 우리 가족은 숨 쉬는 것이 가장 힘들고 걱정돼요. 두렵고 공포로 몸서리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기침하면서 토하는 첫째 아들, 기침 중 발작으로 벤토린을 사용하고도 응급실로 실려가는 둘째 아들.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제는 건강한 삶으로의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요. 기업의 병든 자본주의에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고 용서할 수 없어요. 다시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재할 수 있는 안전망이 생기길 바란다.”

죄지은 기업에게 유죄를, 아픈 피해자들에게 지원을 바란다는 민씨. 10년째 가해기업 처벌과 피해 구제 지원을 바라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마지막 표정은 웃음기 없이 쓰디 썼다.
3696679571_ZcRuTOw0_b0cb273ddd9cd69b5f95072d81b9ab3bea5989d7.jpg민수연씨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약을 먹어야 한다며 가습기살균제 이용 후 먹게 된 약을 꺼내 보였다. / 사진=신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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