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참사 10년] ③ 안전관리에 손 놓았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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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10년] ③ 안전관리에 손 놓았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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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 10년] ③ 안전관리에 손 놓았던 정부

연합뉴스 2021,8,29

흡입 독성실험 생략한 채 유통…정부 감시·감독 '사각지대'

부처 간 '칸막이 행정'에 조사·피해 구제도 늑장

가습기살균제
가습기살균제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원인미상 폐손상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 가습기살균제가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

2011년 8월31일,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가 원인을 알 수 없었던 폐질환 환자 8명을 역학조사한 결과를 이같이 발표했다.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순간이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전후 과정을 들여다본 전문가들은 제품 개발과 유통 과정에서 정부·기업의 안전관리가 실패했고, 문제가 확인된 직후 초기 대응과 피해 구제도 미흡했다고 지적한다.

◇ 90년대부터 소리없이 시작된 '사회적 참사'

가습기살균제는 청소가 어려운 가습기 내부 물통을 손쉽게 살균할 수 있다는 편리함을 내세워 1994년부터 시중에 유통됐다.

'가습기 메이트'를 출시한 유공(SK케미칼의 전신)을 비롯해 옥시와 애경산업 등 생활용품 기업들이 잇달아 제품을 내놨고, 대형 할인마트들도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만들어 경쟁에 뛰어들었다.

29일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는 43개 종류 998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정부 감시·감독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가습기살균제 구성 성분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CMIT(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는 카펫 세정제와 고무·목재 향균제, 공업용 농약 등에 쓰이는 화학물질이다.

환경부는 CMIT·MIT가 1991년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행 이전 국내에 유통됐던 기존 화학물질이어서 유해성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고, PHMG와 PGH는 각각 1997년과 2003년 유독물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런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살균제는 정부 감시를 벗어난 채 소비자들에게 팔려나갔던 것이다. 

유해성 심사를 통과한 물질이라도 인체에 유입될 수 있는 '분무' 형태로 사용되려면 흡입독성 평가를 받아야 했으나 당시 국내에는 용도·노출 경로 변경에 따른 유해성 재심사제가 없었다. 이에 기업들은 흡입독성 실험을 생략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산품인 가습기살균제 관리 의무가 있는 부처였지만, 구성물질이 유독물질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전관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일부 제품에는 국가 인증인 KC마크를 부여하기도 했다.

질본 역시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비슷한 질환이 발생한 사실을 2006년부터 인지했으나 조사 요청이 없었다는 이유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 "피해자들 일찍 찾아낼 수 있었는데"…사후 대응도 늦어

2011년에야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수면 위로 떠 올랐지만 피해 조사와 구제가 즉시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고질적인 관계부처들의 '칸막이 행정'이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 피해자 단체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질본이 2011년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듬해 말 폐손상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내부적으로 '이게 우리 소관 업무가 맞느냐'는 태도가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특정 부처 책임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보건복지부와 환경부 간 '핑퐁'이 계속됐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정부의 첫 공식 피해 판정은 3년 가까이 지난 2014년 3월에야 나왔다. 본격적인 피해 구제가 이뤄진 것도 같은 시기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한 이후다.

피해사실 확인 후 피해자를 찾아내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특위는 "가습기살균제 사용 빈도가 높은 병원·유치원·어린이집·요양원·산후조리원 등을 전수조사했다면 상당수 피해자를 조기에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환경부와 복지부 등 관련 부처는 이 같은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폐손상'으로만 좁게 정의한 탓에 폐 이외 질환에 대한 피해 구제가 사태 초기에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폐손상을 중심으로 '거의 확실'·'가능성 높음'·'가능성 낮음'·'가능성 거의 없음' 등 4단계 등급이 매겨졌고, 정부 인정 피해(1·2단계)와 불인정 피해(3·4단계)로 나뉘어 일부 피해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까지 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6년에 이르러서야 정부는 피해 인정 범위를 폐 이외 질환까지 확대하기로 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최근 학계에는 폐 질환뿐 아니라 독성 간염, 암, 면역체계 손상,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운동장애, 만성피로 증후군, 우울증 등도 가습기살균제 피해 범주에 들어간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는 "최근 호흡기 쪽은 인정 범위가 넓어졌으나 폐 이외 병변은 피해 인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보상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문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nor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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