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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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

최예용 0 8309


[삶과 문화/10월 3일] '전기는 피눈물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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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13년 10월3일자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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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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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최근호에 실린 밀양 송전탑건설 관련 좌담에서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이 공장에서 쓰는 전기가 "블러드 일렉트리시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빗대어 한 말이지만, 지금 밀양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각할 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대도시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기가 시골 농민들의 피눈물 속에 유지된다는 사실을 밀양 송전탑 싸움은 말해준다.

'나눔문화' 젊은이들이 만든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소책자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70% 가량은 산업용과 상업용으로 쓰인다. 한전은 민자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1kW 당 평균 183원에 사서 생산원가보다도 싼 평균 93원에 기업에 공급한다. 산업용 전기가 가정용 전기보다 가격이 싼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싸도 너무 싸다. 일본과 독일에 비교하면 1/3 가격이다. 게다가 상위 30대 기업은 연간 약 1조원의 전기세 할인혜택을 받아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5년 간 상위 30개 기업의 전력사용량은 50% 증가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전기용광로까지 사용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하동절기 전력수요급증은 밀양 노인들을 몰아세울 때 단골로 내세우는 이유다. 그러나 2013년 현재 우리나라 전력 설비용량은 약 8,000만kW이고 평균전력수요는 약 6,000만kW이다. 전력수요가 적은 새벽에는 매일 40% 가까운 전기가 버려진다. 전기는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전 국토에 흘러 넘친다. 그런데도 한전은 전력 사용량이 최대로 늘어나는 피크타임에 대비해야 한다며 더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피크타임은 1년 8,760시간 중 500시간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제한송전, 수요분산 등 지금의 예비시스템으로 조절가능하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전은 밀양 5개면에 평균 100m 높이의 송전탑 69기를 세워 세계 최대 규모인 76만5,000 V 초고압 송전선을 이으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신고리 원전 3,4호기의 전력을 수송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전 스스로 작년 국정감사와 국회 공청회에서 인정했듯이, 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기존 345kV 송전선의 용량증대로 가능하다. 그런데도 밀어붙이는 것은 현재 고리에 있는 4개 노후원전을 계속해서 수명연장하고 신고리에 5-8호기까지 추가건설하기 위한 것이라고 환경단체들은 파악하고 있다. 핵마피아들의 의도대로 고리원전을 전부 수명연장하고 또 새로 더 지어 총 12개까지 늘어나면 이 지역은 세계최대의 원전 밀집단지가 된다. 노후한 고리 원전 30km 반경 안에 320만 명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핵발전 중심의 대규모 원거리 수송방식 전력정책을 소규모 지역중심 전력정책으로 전환해야 하는 분기점에 밀양의 싸움이 자리하고 있다.

밀양 송전선로를 건설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넘쳐나고 대안도 있다. 그럼에도 이 사업을 밀어붙이는 데는, 4대강사업에서도 그랬듯이, 어두운 속셈이 분명 있을 것이다. 경남경찰청장은 반대주민들의 폭력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 했다. 3,000명의 경찰병력에 맞서 할머니들이 사용할 폭력이란 어떤 것일까? 할머니들이 경찰의 팔을 깨물었다니 그게 폭력일까? 국가폭력을 동원하는 자들과 들어가 죽을 구덩이를 파고 목을 맬 목줄을 나무에 걸어놓은 할머니들 중 누가 정말 폭력집단일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도덕감정을 짓밟는 것이 국가인가? 우리는 어쩌다 타인의 고통과 불공평에 공감하는 능력을 이토록 잃어버렸을까? 이렇게 된 데는 국가권력과 그것을 조종하는 기업권력, 관료세력, 그들의 종이 되어버린 지식인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참으로 기이하게도 지금 우리는 타인을 희생시켜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행동을 수치스럽게도, 미안하게도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욕망이 삶의 조건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오류이고, 우리는 그 결과를 눈앞에 보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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