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 소방당국이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 물류센터에서 이틀째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지난 19일 오전 소방당국이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 물류센터에서 이틀째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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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 건강영향 특성화 미세먼지 연구·관리센터 센터장, 고려대 교수

 지난 18일 인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물류시설 화재를 단순한 소방·안전사고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넓은 건물 내부에 생활용품과 포장재 등 많은 가연물이 적재돼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고, 검은 연기가 주변 지역으로 확산됐다. 근로자 121명이 대피했으며 진화 과정에서 소방관의 연기 흡입 피해도 발생했다.


대형 물류센터에는 플라스틱, 합성섬유, 고무, 세정제, 전자제품 등 다양한 물질이 보관된다. 이들이 불완전연소하면 미세먼지와 일산화탄소뿐 아니라 벤젠, 포름알데히드,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등 여러 유해물질이 발생할 수 있다. 일부 물질은 눈과 호흡기의 자극, 두통, 천식 악화와 같은 급성 영향을 일으키며, 벤젠과 일부 다환방향족탄화수소는 발암성이 확인되거나 의심되는 물질이다. 무엇이 얼마나 배출되는지는 적재물의 종류, 연소 온도, 화재 지속 시간과 기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주민의 장기 건강피해를 단정해서도 안 되지만, 측정 없이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려서도 안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화재 대응은 인명 구조와 진압, 건물 안전, 교통 통제에 집중돼 있다. 물론 가장 긴급한 조치다. 그러나 주거 지역과 가까운 물류 창고나 공장, 폐기물 시설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주변 주민도 잠재적 노출 집단이 된다. 이때 환경 측정과 주민 건강 조사는 불길이 잡힌 뒤 검토할 부수적 업무가 아니라, 진압과 동시에 시작돼야 할 재난 대응의 한 축이다.

이번 사고에서 인천시는 화재 현장 근처에서 대기질과 유해물질을 감시하는 동시에 학교 마스크 지원 등의 조치를 시행한 점은 과거보다 진전된 대응이며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개된 보도만으로는 ‘평균 농도 16㎍/㎥, 유해물질 특이사항 없음’이라는 결론이 어떤 물질 대상, 측정 위치와 시간 간격, 분석 방법 및 검출 한계에 근거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미국 독성물질질병등록청(ASTDR)은 화재 때 실시간 감시와 함께 필터와 흡착관 등을 이용한 시료 채취를 통해 연기의 정확한 성분과 농도를 확인해야 할 것을 제안하면서 표준화된 ‘화학물질 노출 평가’ 도구를 제공한다. ‘현재 수치가 낮다’는 사실과 ‘주민에게 의미 있는 노출이 전혀 없었다’는 판단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이제 우리도 광역시와 기초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대형 화재 환경 보건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매뉴얼에는 우선 환경 보건 대응을 개시하는 화재 규모와 시설 유형을 명시해야 한다. 물류 창고, 화학 공장, 폐기물 처리 시설, 배터리 저장 시설 등처럼 유해물질 배출 가능성이 큰 시설은 별도의 대응 등급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시설의 적재물과 화학물질 목록을 평시에 확보하고 화재 유형별 필수 측정 물질을 미리 정해야 한다. 사고 직후에는 풍향을 고려해 화재 현장의 바람이 불어오는 쪽과 불어가는 쪽, 그리고 인근 아파트, 학교, 어린이집, 요양시설 등에 측정 장비를 배치해야 한다. 실시간 미세먼지와 일산화탄소 측정에 그치지 않고, 벤젠 등 개별 휘발성유기화합물, 다환방향족탄화수소, 금속 성분 등을 분석할 수 있는 시간 통합 시료도 확보해야 한다. 

필요하면 대기뿐 아니라 침적 먼지, 토양, 실내 먼지와 진화수 등도 조사해야 한다.셋째, 측정 결과를 단순히 ‘이상 없음’이라고 발표해서는 안 된다. 측정 물질, 위치와 시간, 분석 방법, 검출 한계와 건강 보호 판단 기준을 함께 공개해야 한다. 측정하지 않은 물질과 측정했으나 검출되지 않은 물질도 명확히 구분해야 주민의 불신을 줄일 수 있다.

넷째, 주민 노출 등록과 초기 건강 조사를 시행해야 한다. 사고 당시 위치, 실내외 체류 시간, 대피 여부, 연기와 냄새 경험, 호흡기·신경계 증상과 의료 이용을 표준화해 기록하고, 필요한 경우 지역 의료기관의 진료 자료와 연계해야 한다. 생체 시료는 유효한 생체 지표가 존재하고 채취 시기가 적절한 경우에 선별적으로 확보하되, 환경 시료와 조사 자료는 장기 보관해야 한다.

암을 비롯한 일부 질환은 노출 후 수년 또는 수십년이 지나 발생한다. 그때 가서 지역의 질병 증가가 화재와 관련됐는지 규명하려 해도 사고 당시의 오염 농도와 주민별 노출 자료가 없으면 인과관계를 판단하기 어렵다.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 때 건강 등록 체계가 재난 당시의 위치와 경험을 기록하고 7만명이 넘는 등록자를 장기 추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앙정부가 모든 화재 현장에 즉시 전문 인력을 파견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광역시가 보건환경연구원, 소방본부, 보건소, 지역 대학과 의료기관을 묶은 상설 환경 보건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초 지자체는 주민 안내와 노출 등록을 담당하고, 시설 운영자는 적재물 정보 제공과 측정·조사 비용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현장 지휘체계에도 소방과 시설 안전뿐 아니라 환경 보건 책임자를 포함해야 한다.

화재 진압의 종료가 주민 건강 보호의 종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은 꺼져도 노출의 흔적과 주민의 불안은 오래 남는다. 사고 초기에 확보한 환경과 건강 자료는 피해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밝히는 증거가 되고, 피해가 없었을 때에는 주민을 안심시키는 근거가 된다. 지자체의 환경 보건 대응 매뉴얼은 불안을 키우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줄이고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공공 인프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