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한스경제=이호영 기자] '파기환송'

'솔로몬'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 더더군다나 '직무유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대법원의 판결은 법리에 충실했지만 불충분했다. 

법리에 천착했다는 것이 대법관이라는 직업엔 면피가 되겠지만 이 사회와 시장에 대해선 책임 회피다. 적어도 가습기살균제 참사 관련 업무상과실치사·상 사건에 관한한 그렇다. 

세계 최초로 개발 출시한 기업이나 PHMG, PGH든 CMIT·MIT든 유사 제품을 내놓은 기업 모두 스스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은 제품을 '안전하다'고 거짓말하면서 소비자들이 직접 흡입하도록 놔뒀다. 카페트 용도 살균제를 인체 흡입 용도로 변경, 출시하면서 인체 시험 결과를 묵과했다. 

인체 유해성 인과 관계는 기업들이 입증하고 확인했어야 했지만 피해자가 된 소비자들이 입증해야 하는 식으로 떠넘겨지고 있다. 인과 관계 입증이 힘들거나 불확실했다면 출시해선 안 됐던 것이다. 가습기살균제는 세상에 나와선 안 되는 제품이었다. 

대법원은 이를 건드리지 않았다. 서울고법의 판결대로 피고인들을 '공동정범'으로 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 보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경우 과실범의 공동정범이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며 그 이유로 "'의사의 연락이나 주의의무위반에 대한 공동의 인식이 없었다면 '공동해' 죄를 범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변은 성명을 통해 "성수대교 붕괴와 관련된 형사 사건 등 판례 법리를 보면 과실범 상호 간 의사 연락이 없더라도 인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법원은 '용도가 같아도'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제품이라면 출시를 예상할 수 없다고 했지만 간과한 것은 시장에서 지니는 '용도가 같다'는 것의 무게다. 

이는 시장 상황과 현실에 대해 무지한 소리다. 기업들은 시장 조사라는 형태로 경쟁사 동향을 항상 주시하고 살핀다. 시장 내 '용도가 같은' 카테고리에서 잘 팔릴 것 같다 싶은 상품은 제품의 '주요 요소' 차이 등을 불문하고 마구 쏟아질 것이 예상 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1994년 전 세계 최초라고 떠들어대며 당시 유공이 사상 초유의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개발, 제조해 내놓으면서 결과적으로 한 짓은 시장 내 '가습기살균제'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든 것이다. 

'가습기살균제'라는 새 시장의 물꼬를 터준 것인데 사업성이 있는 제품군이라면 국내외 불문, 제품 요소 불문 기업들은 속속 진입했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 알다시피 유공 뒤로 가습기살균제 주요 요소 차이를 불문(CMIT·MIT, PHMG, PGH)하고 국내외 기업 가리지 않고 유사 제품 출시가 잇따랐다. 

대법원은 이런 식으로라면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 범위가 무한정 확장 된다고도 했지만 사실 인터넷망 등을 통해 재생산된 '위해 상품군'으로 인해 사고가 터졌다면 책임자가 무한정한 상황이라도 책임을 물어야 하고 시장 확산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해 상품군'은 사전에 철저히 관리 감독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책임 소지의 무한정 가능성이 가해기업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핵심은 대법원은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서울고법의 '공동정범' 논리를 받아들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기환송 시켰는가다. 피해자가 된 소비자보다 기업 당사자를 중시한 결과다. 

대법원은 '공동정범'이라는 법리 문제만 지적하고 다시 심리하라고 되돌려보냈을 뿐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에 대한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았다. 결코 가해기업이 '무죄'라고는 하지 않았다. 

모든 것엔 맥락과 행간이 있다. 우리 모두는 문자 그대로를 읽지 않는다. 시장이나 사회적인 파장도 문자 그대로, 사안의 액면 그대로로 인해 나타나는 게 아니다. 

고법에 되돌려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장과 소비자는 그렇게 알아들었다. 

대법원은 이 판결이 가져올 파장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판결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몰랐든 알았든 책임 회피고 책임 방기다. 

'유무죄'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무죄'라는 판결보다도 명확히 가해기업의 편을 들어줬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아직 CMIT·MIT 단독 사용자들의 공소시효는 만료되지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  

대법원이 '공동정범' 법리 적용 문제를 지적한 내용도 시장 논리에서 본다면 부족하다. 시장과 소비자도 대법원 판결을 대법원으로 되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