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배임’으로 처벌할 수는 없을까
얼마 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엔디시)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산업계와의 논의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놀라운 발언이다. 엔디시는 산업계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다배출자들에게 합리적으로 책임을 부과하고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직접 배출량은 전체의 약 35%(2018년 기준)에 이른다.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이익을 얻어온 그들에게 감축량을 스스로 정하게 한다는 말인가?
윤석열 후보는 엔디시가 “산업계에 엄청난 부담이 된다”고 했지만, 사실 산업 부문에서는 10년간 14.5%의 온실가스만 감축하면 된다. 전환·수송·농축산 등 평균 30~40%씩 감축해야 하는 다른 부문에 비하면 외려 ‘부담’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엔디시를 의결한 대통령 직속 2050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에 이미 철강협회, 시멘트협회 등은 물론 현대자동차나 에스케이 이엔에스(SK E&S) 등 대기업 인사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다, 심의 과정에서 다시 산업계와 협의를 여러차례 거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는 탄중위의 ‘산업계 편향적 운영’에 항의하기도 했다.
결국 이렇게 나온 정부의 엔디시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높아져선 안 된다는 국제사회 공동의 목표를 지킬 수 없는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이렇듯 정부가 ‘항복’에 가깝게 산업계에 양보했음에도 윤 후보에겐 기후위기 대응에 대단히 소극적인 전경련 등의 시대착오적 목소리만 들린 것인가. 이 촌극을 보면 윤 후보나 탄중위 일부 인사와 같은 이들을 ‘기후범죄자’로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구체적 죄목은 ‘배임’이 좋겠다.
우리 형법에서는 배임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거나 (중략)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각종 재난을 몰고오는 기후위기는 모든 시민의 위기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이나 탄중위원은 바로 이 위기 극복이라는 중대한 ‘타인의 사무’를 위임받은 사람들이다. 아울러 그들이 기후위기 대책으론 크게 부족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의결하거나, 다배출자인 기업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감축 책임을 덜어주는 것은 명백히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다. 이는 국가와 다수 시민에게는 중장기적 손해를 일으킨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시민이 맞닥뜨린 기후·환경의 위기가 점점 심각해지는 것은 정치권과 자본이 탄소중립 구호를 외치면서도 실제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탓이 크다. 예컨대 지난달 글래스고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세계가 ‘석탄 감축’에 합의했지만, 강릉과 삼척에선 삼성과 포스코가 앞장선 신규 석탄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 이 대형 석탄발전소들이 향후 20~30년간 배출할 온실가스는 한국의 기후위기 극복에 가장 큰 리스크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가 이를 수수방관한다면 이 또한 심각한 기후 배임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시민들에게 기후 재앙을 안기는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 또한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정치권에 책임을 물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