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익의 수명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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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익의 수명이야기(2)

최예용 0 6118
얼마 전 지하철 차량 속에서 목격한 일이다. 70대로 보이는 두 여성이 말을 나눈다. “댁은 몇이우? 난 일흔하나” “나는 일흔다섯” “나보다 아래인 줄 알았더니. 그럼 아이는 몇이우?” “둘” “그럼 그렇지. 나는 애가 여섯이라우. 내가 바보였지.

  현대국가에서는 예외 없이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길다. 그러면 과거에는 어땠을까? 지금과 달리 자료가 풍부하지 못하고 연구도 덜 되어 있지만 대체로 여성의 수명은 남성보다 짧았다. 남녀 모두 요즈음보다 수명이 크게 짧았지만, 여성이 더 일찍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했던 까닭은?

  의식주 생활이 궁핍했던 과거에, 여성들은 남성보다 영양상태가 더 나빴고 누울 자리, 입을 거리도 더 초라했던 것이 중요한 이유로 생각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출산과 육아의 부담이었다. 산전 산후 관리가 부실해서 분만하면서 죽는 일이 허다했고 출산 후유증도 요절을 재촉했다. 무엇보다 아기를 많이 낳고 많이 기르는 것 자체가 여성들에게 커다란 짐이었다. 요컨대 모성 사망률이 지금보다 엄청나게 높았다.

여성의 수명이 더 길어지게 된 원인…출산율 감소도 한몫

  서유럽의 경우, 19세기 들어 출산율이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했고, 의식주(중요한 순서대로 언급하자면 식주의) 생활도 개선되었으며,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그리고 여성들 스스로 산전 산후 관리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의학적인 의미에서도 “근대 여성(혹은 현대 여성)”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수명이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1.3이었다. 1960년의 6.2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여러 연구에서 입증되었듯이 합계출산율과 평균수명은 반비례 관계이다. 합계출산율이 감소함에 따라 평균수명이 증가해 왔다. (물론 합계출산율이 유일한 요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한국이 지난 60여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수명 증가를 보인 데에는 가장 급격한 출산율 감소도 한몫했다. 자녀수의 감소는 여성의 부담만 줄이는 게 아니라 그 자녀들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그렇다고 앞에서 언급한 70대 여성이 바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2011년 현재 우리나라의 남녀 수명의 차이는 6.7세이다. 열 살 가까이 차이 났던 1980~90년대에 비해서는 줄어든 셈이지만 아직도 차이가 큰 편이다. 관련 연구들에 의하면 남녀평등의 정도와 남녀 수명의 차이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일수록 남녀의 수명 차이도 적다, 즉 수명도 평등하다는 연구결과이다. 남성들을 위해서도 남녀가 더욱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통할 것 같다.

노동조건과 인간 수명은 비례했다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이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이다.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영국의 산업혁명은 생산력의 엄청난 증대를 가져왔지만, 그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폐해도 가져왔다. 인간의 건강과 수명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당시 영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생활조건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아무런 안전장치, 위생시설이 없는 공장에서 하루 12시간 노동은 흔해빠진 일이었다. 어린이 노동이 일상화되어 심지어 서너 살짜리가 공장이나 탄광에서 일하는 일조차 있었다.

  산업혁명은 자본가들에게는 지상천국의 도래였지만 수많은 노동자들에게는 지옥을 뜻했다. 당시 적지 않은 사회운동가들이 그 처참한 실태를 조사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1848년 공중보건법” 제정에 기여했던 법률가 채드윅의 <대영제국 근로자들의 위생 상태에 관한 보고서>(1842)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리버풀과 맨체스터와 같은 산업도시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평균수명은 무려(!) 15~17세였다. 보수주의자 채드윅의 눈에 비친 지옥은 그를 노동조건과 위생환경 개선에 앞장서도록 했다. 채드윅의 공만은 아니지만 8시간 노동은 노동자들과 사회개혁가들의 모토이자 현실적 목표가 되었다.

이글은 다산포럼 663호에 실렸습니다.  

글쓴이 / 황상익

· 한국근현대의학사(전공)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국제고려학회 부회장 겸 서울지회 회장

· 저서 및 번역서
 
《근대의료의 풍경》 푸른역사, 2013
 
《황우석 사태와 한국사회》(공저) 나남출판사, 2006
 
헨리 지거리스트 저,《문병과 질병》한길사, 2008
 
이언 도슨 저,《처음 읽는 이야기 의학사》아이세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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