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2세로 세계 톱클래스 수준이다. 여성은 84.5세로 세계 6위, 남성은 77.8세로 세계 20위이다. 평균수명, 영아사망률, 비례사망지수와 같은 보건지표는 의료수준 및 배분 정도뿐만 아니라 산업화 정도, 생활수준, 교육수준 등을 잘 반영하는 한 국가의 종합성적표이다. 보건지표를 보면 국가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보건지표는 당연히 1인당 국민소득과도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쿠바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다. 쿠바는 소득은 중하위권이지만 보건지표는 상위권이다. 비교적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국민들에게 골고루 베풀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소득, 의료수준에서 세계 최상위권인데도 보건지표는 OECD 국가 중에서 바닥이다. 이것은 소득 격차가 크고, 의료서비스의 배분도 매우 불균등한 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몇 살이나 되었을까? 아쉽게도 그것에 대해 알려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관련 자료가 많이 발굴되었고 연구도 충실히 되어 있는 서유럽 나라들을 보면 산업화가 막 시작되던 1,800년 무렵의 평균수명은 35세 안팎이다.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은 대략 46~7세 정도
조선시대 수명과 관련해서 우리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국왕 27명의 사망 연령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가장 장수한 조선시대 왕은 만 81세 5개월에 세상을 떠난 영조이다. 두번째는 72세까지 산 태조 이성계이다. 70살(고희)을 넘긴 임금은 27명 중 불과 2명. "인생 70 고래희"라는 옛말이 들어맞는다. 그 다음으로 고종(66세), 광해(66세), 정종(62세)이 뒤를 잇는다. 별 통계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갑 잔치를 치른 왕은 20퍼센트도 안 된다. 사망 연령을 평균내보면 46.1세이다. 왕위에서 쫓겨난 뒤 16세에 살해당해 천명을 누리지 못한 단종을 제외하면 47.3세이다. 오늘날의 한국남성 평균수명과 도저히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국왕들이 일반 백성들보다는 오래 살았던 것도 사실이다. 유럽의 자료들로 유추해 보건대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35세 내외, 혹은 그 이하였을 것이다. 의식주 생활에 궁핍함이 전혀 없고 의료 혜택도 가장 많이 받았을 국왕들이 백성들보다 오래 산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가장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사람은 헌종(7세)이다. 그리고 순조(10세), 단종, 명종, 고종(이상 11세)이 그 뒤를 잇는다. 다시 말해 모든 왕이 영유아기(0세~4세 미만)를 지나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근대화/산업화 이전 영유아사망률은 엄청나게 높았다.
여러 나라의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대체로 출생아 셋 가운데 하나는 네 살까지도 살지 못했고, 넷 중 하나는 첫돌조차 맞이하지 못했다. 왕가도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예컨대 최장수 임금 영조의 자녀 14명 중 다섯이 네 살을 넘기지 못했다. (2011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첫돌까지 살지 못하는 아기는 3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영유아기를 살아 넘긴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10살가량 늘어날 것으로 계산된다. 이렇게 보면 국왕과 백성의 수명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영유아사망률을 감안하면 조선시대 국왕이나 백성이나 지금에 비해 수명이 40년, 혹은 그 이상 짧았다. 영유아사망률은 말할 것 없고 모든 연령대의 사망률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오래 된 옛날도 아니지만 요즈음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다. 아니, 지금이 수백만년 인류역사에서 처음 경험하는 신시대, 신세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글은 다산포럼 2013년 5월21일자에 실렸습니다.
글쓴이 / 황상익 |
· 한국근현대의학사(전공)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국제고려학회 부회장 겸 서울지회 회장
· 저서 및 번역서 《근대의료의 풍경》 푸른역사, 2013 《황우석 사태와 한국사회》(공저) 나남출판사, 2006 헨리 지거리스트 저,《문병과 질병》한길사, 2008 이언 도슨 저,《처음 읽는 이야기 의학사》아이세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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