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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조회 수 :244 | 댓글 :0 | 19-03-25 09:47

유명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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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4 경향신문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정 심층조사를 종료했다. 그 끝은 기자간담회를 겸한 보고회였다. 발표 직후 관련 보도가 이어졌다. 대부분 피해자의 울분을 제목으로 달았다. 하지만 어떤 기사는 해석이 불분명했고 부등호가 반대로 나간 것도 있었다. 조사로 확인한 울분의 의미를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울분 조사는 피해 신청 4127가구 중 무작위로 추출한 100가구 129명의 성인 피해자를 대상으로 했다. 울분은 ‘외상후 울분장애’ 한국어판 도구로 측정했고 19개 문항 평균 기준 ‘이상 없음’ ‘지속되는 만성 울분’ ‘중증도 이상의 심각한 울분’으로 구분한다. ‘만성’과 ‘심각한’ 울분은 ‘임상적으로 유의한 울분’으로 보고된다. 분석 결과 피해자 열 명 중 일곱은 울분이 지속되는 상태, 그 절반은 장애를 일으킬 만큼 심각한 울분 상태에 속했다. 피해자 대다수가 어제오늘을 분노, 무력감, 자기비난이 혼합된 감정 속에 살았고 내일도 그토록 심각한 울분 속에 살아가리라는 의미다.

 

외상후 울분장애 질환명을 소개한 린든에 따르면 울분은 ‘정의에 어긋나고 부당한 부정적인 생애사건 경험에 대한 감정 반응’이다. 학자들은 울분 유발 사안이 현재의 역경에 직접 원인이 되고 ‘세상은 공정하다’ 같은 기본 신념을 무너뜨리면 울분이 ‘버닝’하여 자신과 사회를 향해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한다. 극도의 울분은 유발자를 겨냥해 ‘전쟁’을 벌이거나 고통에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울분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개방형 질문 답변에는 울분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감정이 강도 높게 드러난다. 사전에 일을 막지 못한 자책감이 기업과 국가를 향한 분노와 결합하고, 속수무책이란 무력감과 미래 비관이 더해졌다. 다른 울분 사례와 달리 분노를 압도하는 ‘자기비난’이 있었고 이는 스스로 피해자면서 동시에 피해자 어머니, 아내인 여성에게 뚜렷했다. 침습적 사고, 배신 트라우마, 우울, 스트레스 동반 신체증상 등 외상후 울분장애에 수반하는 증상 다수도 감지됐다. 린든 교수는 ‘(그것들이) 바로 울분이 예고하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무엇이 이들의 울분을 유발하는가를 가까이 봄으로써 찾아볼 수 있다. “피해자한테 자꾸 증명하라고 하면 저는 가습기를 다시 흡입할 수밖에 없어요. 다시 흡입해서 다시 임신해 아픈 애를 낳고 부검할 수밖에 없어요. 도대체 저한테 뭘 어떤 식으로 증명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느 피해자의 말은 울분 유발자가 독성 물질 노출 그 자체가 아님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오히려 기업의 비윤리성과 국가의 위험사회 관리책임 소홀로 유발된 집단적 정신현상으로 볼 수 있다. 1990~2018년 국내 7개 일간지 중 ‘울분’을 제목으로 한 기사 내용 분석이 확인한 한국의 사회적 울분, 즉 “각종 안전사고·사건 피해자들의 삶의 기반 박탈·근본적 요구 묵살로 국가와 사회를 향해 느끼는 분노”에 부합한다.


보고회를 통해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기에 반복하기보다 울분에 초점을 둔 하나를 추가한다. 전문가들은 믿음이 낮은 외상후 울분장애 환자와의 수용과 공감의 ‘치료동맹’을 권고한다. 같은 맥락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적극 인정(認定)하고 피해자들과의 공감을 높이는 ‘사회적 연대’가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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