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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용 | 조회 수 :35 | 댓글 :0 | 17-05-16 19:09

[이덕환의 과학세상] 산학협력과 이해상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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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산학협력과 이해상충

가습기 살균제 보고서 항소심 무죄
재정적 이해상충 위험 간과한 판결 

 

디지털타임즈 2017 5 17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용역 보고서를 기업에게 유리하도록 조작했다던 독성학자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사회 정의를 기대했던 피해자들에게는 몹시 실망스러운 판결이었다. 더욱이 과학적으로 어설픈 보고서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보기도 어렵고, 연구의 진실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기업의 비윤리적 요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나 성찰도 찾아볼 수 없는 판결이었다. 


그렇다고 전혀 의미 없는 판결은 아니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용역의 형식으로 연구비를 제공해준 기업이나 정부의 요구를 수용해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부당한' 요구에 함부로 끌려 다니다가는 연구자의 직무를 위배한 부정행위로 사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돈의 유혹에 넘어가 연구의 진실성을 포기하는 것이 실정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연구자가 확인했던 태자의 사망 사실을 최종 보고서에서 누락시킨 것을 연구자의 부정행위로 보지 않았다. 태자의 사망은 기업이 용역을 의뢰한 '흡입독성'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태자 사망 사실을 보고서에서 빼달라는 기업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었고, 용역을 의뢰한 기업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준 연구자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용역 연구에서 관찰된 태자의 사망은 단순히 생식기관 안에서 나타난 병변이 아니었다. 사망한 태자의 수가 흡입한 가습기 살균제의 농도에 의존해서 늘어났다는 중간보고서의 관찰이 명백한 증거다. 호흡기를 통해 흡입한 가습기 살균제가 자궁에 있던 태자를 사망에 이르도록 만들었다면 그런 병변은 생식독성이 아니라 흡입독성에 의한 것으로 봐야만 한다. 결국 태자의 사망은 당연히 기업의 용역 범위에 포함되는 것이고, 그런 사실을 누락시킨 것은 흡입독성을 감추려는 부정한 의도 때문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기업은 돈의 힘을 이용해서 연구자에게 부당한 요구를 했고, 연구자는 재정적 이익을 얻기 위해 연구 진실성을 포기해버렸던 것이다.  

'차별적 병변이 없었다'는 보고서의 결론을 뒤집을만한 근거를 관찰하지 못했다는 재판부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연구자 스스로 체중 감소와 혈액 및 혈액생화학적 변화를 관찰했고, 간질성 폐렴 증상도 확인했으며, 그런 관찰로부터 '전신독성 유발 가능성'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결국 재판부가 인용한 보고서의 결론은 용역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가 직접 관찰한 독성학적 변화나 소견과 모순되는 것이었다. 재판부가 흡입독성의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해서 해석하고, 연구자가 스스로 밝힌 독성에 대한 관찰과 소견을 애써 외면해버린 이유는 쉽게 납득할 수 없다.

문제의 용역은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을 확인하여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던 시기에 수행된 것이었다. 특히 당시에 알려진 피해자의 대부분의 임산부였다.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에 의해 생식기관에 나타나는 흡입독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유사 제품의 흡입으로 분명하게 나타난 여러 가지 심각한 병변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축소한 보고서를 제출한 것은 연구자의 재량을 넘어선 심각한 부정행위였음이 분명하다. 

거액의 용역 과제를 수행한 연구자가 계약에도 없는 별도의 자문비를 개인적으로 받아 챙긴 것도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득세를 납부한 것이 비정상적 거래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재판부의 판결은 용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정적 이해상충의 위험을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었다. 기업이나 정부가 불순한 의도로 의뢰하는 용역이나 정책과제가 적지 않고,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재정적 이해상충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재정적 이해상충이 과학기술 분야에만 한정된 문제도 아니다. 사회·경제를 비롯한 광범위한 분야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제는 기업이나 정부의 용역 과제에서 재정적 이해상충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학문을 돈으로 살 수는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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