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화학물질 중독을 모니터링하는 국가 시스템 만들자
[기고]화학물질 중독을 모니터링하는 국가 시스템 만들자
박동욱 방송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6년 9월8일자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람은 8월26일 기준 4482명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들은 회복하기 힘든 중증 폐 손상을 포함한 다양한 질환들을 호소하고 있고, 피해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는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일어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화학물질 중독 피해규모다. 국가는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가 참사가 될 때까지 왜 사전에 알지 못했는가?
폐가 굳어서 정상적인 호흡이 어려운 폐 손상자가 2000년부터 매년 서너 명씩 발생하다 2006년에 20여명으로 증가했지만, 화학물질 중독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폐 손상자가 2009년 25명, 2010년 38명, 2011년에는 92명으로 급격하게 늘어났을 때도 국가에서는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무려 17년 동안 같은 원인으로 수천명이 폐 손상 등의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데도 국가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 화학물질 중독을 감시하는 시스템이 없었던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생활 및 소비용품 사용으로 생긴 사고, 질병, 중독 사례를 모으고 관리하는 국가 감시망이 없다. 우리나라는 전염병과 감염병 사례만을 감시하는 전근대적인 질병관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가정은 물론 사업장에서 일어난 화학물질 중독 사례를 국가가 찾아내지 못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화학물질에 의한 중독과 같은 피해는 피해자가 신고하거나 언론 혹은 전문가가 의문을 제기해 드러난 경우만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고 있지만 아직 화학물질 중독을 예방하고 감시하기 위한 방안이나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안전하지 못한 생활용품을 쓰다가 화학물질 중독이 일어나더라도 여전히 개인적인 불행이나 사고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화학물질 중독은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예방하지 못해서 발생한 피해를 모니터링하고 확산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시스템도 꼭 필요하다.
2014년 미국 56개 중독관리센터에 보고된 중독사례는 총 218만8013명으로 인구 1000명당 약 6.7명이다. 우리나라 인구에 대입하면 화학물질 중독 등 사고를 입은 사람은 약 34만명이 된다. 이러한 화학물질 중독 등의 사고는 화장품, 세정용품, 진통제 등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미국은 중독센터 운영을 통해 중독사고 입원환자 수를 12.0%, 치료비 24.0%로 줄이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고했다.
우리나라는 화학물질 중독에 대한 통계가 없기 때문에 화학물질 제품을 만드는 기업뿐만 아니라 이를 관리하는 정부조차도 사고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 또한 화학물질이 들어간 생활용품의 위험성을 실감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생활화학용품들이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고 생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소비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믐 국민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기업은 대부분 국가의 규제가 없으면 스스로 안전한 제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모든 기업은 국가의 법적 시스템에 맞춰 기업 활동을 하게 마련이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국가가 정한 유해성 검사 등 최소의 허가 조건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 제품을 만들어 판다. OIT 필터도 우리나라에서만 팔았다고 하지 않는가? 국가는 기업이 안전한 제품을 만들고 관리하도록 각종 제도와 시스템을 정비하는 한편 각종 사고, 물질 중독 통계를 통해 생활용품의 위험을 경고·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