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디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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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디젤은 없다

최예용 0 4890

세계일보 2015 10 9

 

독일 폴크스바겐 자동차 회사의 디젤게이트 사건이 터졌다. 배출가스 검사를 받는 동안에만 질소산화물이 기준 내로 나오도록 조작한 소프트웨어를 숨겨 놓았다가 들통난 것이다. 디젤게이트는 교통 문제를 연구하는 미국의 한 비정부기구(NGO)가 독일 디젤 엔진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을 하다 우연히 발각됐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에 비해 힘이 좋고 연비가 높으며, 내구성이 우수하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도 덜 배출한다. 에너지 절약과 지구온난화 측면에서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보다 친환경적이다. 하지만 건강 관점에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디젤 엔진의 아킬레스건은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의 대량 배출이다.

 

미세먼지는 양도 중요하지만 크기가 더 중요하다. 디젤 엔진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는 가솔린 엔진에 비해 배출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입자의 크기도 훨씬 작다. 인체에 해로운 직경 10 μm 이하보다 훨씬 작은 1 μm 이하의 초미세먼지의 비율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크기가 작을수록 폐 깊은 곳까지 침투할 수 있고, 초미세먼지가 혈관을 뚫고 들어가 몸 전체로 퍼질 수도 있다. 설상가상 초미세먼지는 인간에게 암을 일으키는 수많은 화학물질을 인체의 곳곳으로 운반하는 배달부 역할까지 한다.

질소산화물 배출은 디젤 엔진의 고유 특성과 맞물려 있어서 근본적 해결이 힘들다. 디젤 엔진은 연료(경유)의 연소 온도가 높을수록 연비는 높아지지만 동시에 질소산화물도 많이 배출한다. 즉 연비를 포기하느냐 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이느냐의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질소산화물은 광화학 스모그 ‘오존’의 전구물질로 오존 농도를 높이는 산파 역할을 한다. 오존농도가 높아지면 천식을 비롯한 각종 호흡기 질환자가 증가하고, 노약자와 어린이는 야외활동에 제한을 받는다. 건강한 사람도 오존 농도가 높은 날에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에 세계보건기구는 디젤 엔진의 매연을 담배, 석면, 플루토늄 등과 같은 ‘1등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1등급은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는 의미이다. 디젤 매연은 폐암과 방광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솔린 엔진의 매연은 ‘인간에게 암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의미의 ‘2B등급’으로 매겨져 있다. 채소를 식초와 소금물에 절인 피클도 2B 등급이다. 1등급과 2B 등급 발암물질의 발암성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클린디젤’이라는 말도 유감이다. 눈에 안 보이는 미세먼지나 질소산화물은 여전히 많이 나오는데도 눈에 보이는 시커먼 매연이 나오지 않는 착시현상을 파고든 마케팅 용어이다. ‘고카페인 음료’를 ‘에너지 음료’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동안 환경보건학자들은 우리나라에서 디젤 승용차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고 ‘이래도 되나’ 하는 걱정을 해 왔다. 디젤 엔진은 트럭이나 버스 등 큰 힘을 필요로 하는 차에 국한해서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다. 적어도 건강 측면에선 절대불변의 원칙이다. 디젤 택시 도입은 크게 잘못된 발상이다. 디젤 엔진을 승용차에 쓰는 것은 공업용수를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다.

전상일 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둘다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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