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추방운동 앞장선 정현식 선생 영전에
[가신이의 발자취] 석면추방운동 앞장선 정현식 선생 영전에
2013년 중피종 환자들의 모임을 통해 정현식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때 참 조용하신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벌써 몇 번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은 선생님께서는 모임의 직책을 맡아 주십사는 요청에 사양을 하시면서도 할 일은 하겠다고 말씀하셨지요. 병을 안고 살아가는 분으로서, 생의 남은 시간을 지키지 못할 약속으로 채우기보다는 지금 허용된 시간에라도 제대로 된 일을 하며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심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현식 선생은 24살 때인 1978년부터 7년간 석면공장에서 일한 탓에 22년이 지난 2006년 석면암인 악성중피종을 앓게 되었습니다. 직업병이었지만 회사가 이미 폐업해 산업재해 신청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생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자신처럼 억울한 석면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석면추방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2012년 환경성 석면피해 구제를 받고,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의 도움으로 폐업한 회사의 기록과 경력을 찾아내어 2014년 10월 산재 신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대 일했던 공장에서 석유곤로의 심지를 만들었는데 그 심지의 재료가 석면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덕분에 그나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기다리던 중 선생은 지난 12일 끝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입원 침상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먹지고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정신만은 또렷하셨습니다. 빨리 좋아지시길 바란다는 인사에, 이렇게 고통을 받으면서 살기보다는 빨리 죽는 길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석면으로 고통받는 또 앞으로 고통을 겪게될 분들을 위해 조금 더 일찍 문제를 나누고 해결하는 노력을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바람과 아쉬움을 잊지 않으셨지요. 여전히 환경성 석면피해구제 수준은 산재보험의 10~30%에 불과하고 석면공장 퇴직 노동자들 대부분은 산재 신청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가족들과 헤어져 여수에서 지내야 하는 사연을 들었을 때, 질병이 단지 사람의 건강을 망가뜨리는 것만이 아니라, 삶의 기반까지 해체시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을 때 우리 전통 피리를 만드는 일도 하셨다지요. 그처럼 뜻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은 한이 없는데, 병마가 새삼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피해를 볼 수는 있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만이 피해자로서도 당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마지막까지 당당했던 삶의 의미, 남은 이들과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