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폐손상(HDLI)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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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폐손상(HDLI)만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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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임종한ㅣ인하대 의과대학 학장·전 환경독성보건학회장

한겨레, 2021년5월20일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지 10년이 흘렀다.

올해 1월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3부는 에스케이(SK)케미칼과 애경 담당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동물실험을 진행한 결과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과 폐손상 및 천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 1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환경부의 입장이 대폭 반영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5월4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환경부는 더 이상의 조사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10년이 지난 지금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제대로 규명되었고, 피해자는 제대로 보상을 받았는가? 문재인 정부는 환경정의 관점에서 이를 냉철히 보아야 한다. 환경산업기술원이 운영하는 피해구제 포털에 따르면, 4월30일 기준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신청자는 7441명이고 이 중 1656명이 사망했다. 정부의 지원 대상자는 4170명인데, 피해의 인정도 일부에 한정되고 있고 그조차 받지 못한 이들도 상당히 존재한다.

가습기살균제 폐손상(HDLI)은 가습기살균제 사건 초기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정의할 때 주로 사용된 개념이다. 사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 여부를 판단할 때 이 병변이 동물실험을 통해 재현되는지를 중시한다. 그러면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근거로 HDLI는 얼마나 과학적인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는 특이적인 흡입독성을 보인다. HDLI는 폐 중심소엽에 특징적인 염증과 섬유화를 보인다는 이론인데, 가습기살균제 피해 관련 독성, 역학 자료가 전무한 상태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규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나타나는 더 정밀한 추가 연구를 하지 않은 채 ‘가습기살균제 피해=HDLI’라고만 규명짓고, 이런 양상 외 다른 폐섬유화 소견은 폐손상 3, 4단계로 판단해 ‘피해자 아님’으로 판정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피해자들을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 악명 높은 폐손상 4단계 판정기준이 만들어진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는 단지 폐 중심소엽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가습기살균제가 도달하는 어느 신체부위에서도 세포 손상과 염증을 가져오고, 특별히 면역세포인 T세포, 탐식세포(macrophage) 등의 손상으로 여러 병변이 생긴다. 천식, 간질성 폐렴, 폐렴 등이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인정되기까지도 무려 10년이 걸렸다. 하지만 독성 간염, 암, 자가면역질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운동장애, 만성피로증후군, 우울증과 자살 등 너무 많은 피해자들이 아직도 인정받지 못한 채 이제까지 방치되어왔다. 피해자들에겐 피눈물 나는 일이다.

CMIT·MIT, 다른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도 동물실험에서 HDLI를 야기하는지 못 하는지 단순히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이 성분들이 동물실험에서 보이는 세포손상 병리소견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도 역시 관찰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동물실험에서 PHMG, CMIT·MIT가 사람에게서 나타난 것과 같은 세포 손상과 염증, 단백질 발현을 역시 보인다. 이러한 접근은 종간의 차이로 섬유화를 보이는 소견이 다른데, 동물실험 결과를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나타나는 오류를 벗어날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10년, 우리 사회는 세계 최대의 화학제품 사고에 대해 제대로 사건의 본질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보상이 되었는지 되물어야 할 때이다.

너무너무 길을 돌아왔다. 이제 논란의 중심에 선 가습기살균제 폐손상의 강을 건너야 한다. 과학적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이제까지 축적된 연구 성과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해결 방안을 새롭게 내어놓아야 할 때이다. 이달 18일,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 형사재판 항소심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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