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이든, 친노든, 누구라도 환경피해보상법 제정하라
[기고]환경피해보상법이 필요하다
1986년 탄광 근처에도 안 가본 서울시민 박길래씨가 광부병인 진폐증 진단을 받았다. 3년 뒤 법원은 연탄공장의 분진으로 인해 진폐증에 걸렸다는 판결을 내렸다. 박길래씨는 한국에서 법원이 인정한 최초의 공해병 피해자이다. 그 후 2010년 강원 영월에서, 2011년 충북 제천과 단양에서 그리고 2012년 강원 삼척에서 주민 789명이 진폐증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폐암에 걸린 사실이 환경부 조사결과 밝혀졌다. 전남 장성에서는 주민 2명이 규폐증, 8명이 COPD로 밝혀졌다. 대구의 경우 주민 36명이 폐질환으로 의심되어 정밀조사가 추진 중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진폐증 환자는 88명(이 중 순수환경성 30명), 폐암 5명, COPD 707명이다. 영향권 주민 모두를 조사하면 피해는 훨씬 늘어 날 것이다.
이들 주민이 사는 곳에는 대규모 시멘트공장과 광산이 존재하며, 환경부 보고서는 이들 시설물이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오염원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조사보고서는 또 시멘트공장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의 유해 중금속 노출이 심각하다고 우려한다. 1980년대 박길래씨 사건 이후 우리는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지만 지금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집단적 환경진폐증 문제를 겪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문제 역시 세계적인 환경사건이다. 살균제를 가습기 물통에 넣어 분무하는 용도로 사용한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알려지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모두 물통을 청소하는 세정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난 6월11일 한국환경보건학회는 시민단체에 접수된 174건의 피해사례 중 95건을 가가호호 방문해 정밀조사한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이 중 33%인 31명이 사망했는데 대부분 3세 이하의 영유아이거나 임산부 등 생물학적 약자였다. 피해증상 발생부터 사망까지 걸린 시간이 7개월 이하였고, 이 중 81%는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가습기 살균제 상품들이 애경과 옥시 등 큰 회사 제품들이거나 롯데마트, 이마트, GS마트 등 대형마트 자체 상품들이고 하나같이 ‘친환경’임을 내세워 안전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공해공장과 생활용품의 유해화학물질에 의해 대규모 피해가 밝혀지고 있지만 책임 규명과 피해대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멘트공장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와 판매사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정부도 뒷짐을 지고 모른 체한다. 시멘트공장 피해주민들이 환경부에 중앙환경분쟁조정신청을 해서 피해배상 결정이 내려졌지만 시멘트공장 측은 자기네 책임이 아니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가습기 살균제가 피해의 원인이라고 밝힌 보건복지부는 피해자들에게 억울하면 소송하라고 한다. 그 사이 시멘트공장 피해주민들과 폐이식 수술을 받았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합병증으로 하나 둘 죽고 있다.
20~30대 신세대 가정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살인도구에 파탄나 있고, 60~70대의 시멘트공장 인근 주민들은 시커멓게 폐가 굳어가는 진폐증과 폐암으로 거친 숨을 몰아쉰다. 발암물질인 석면의 경우 사용을 금지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법이 만들어졌지만, 야구장과 학교 운동장에 깔린 흙에서 석면이 검출되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변의 자전거길은 석면이 드러난 조경석으로 덮여 있다. 40대 한창 나이에 석면암에 걸린 피해자가 받는 구제금은 고작 3000만원에 불과하다.
환경오염에 의한 피해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피해자에게 먼저 보상하고 원인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는 ‘환경피해보상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환경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피해 발생 시 독자적이고 전문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화학물질안전청’도 필요하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친노든 비노든’ ‘진보든 보수든’ 누구라도 연말 대선과정에서 이러한 법률과 기구 신설을 민생공약으로 삼고 차기 정부에서 우선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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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 이 글은 2012년 6월23일자 경향신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