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사냥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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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4 14:11
내일신문 2012년7월13일자에 실린 안종주의 정기칼럼입니다.
40여년 전 어릴 적 이야기다. 집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래 고기 사이소. 맛좋은 고래 고기가 왔심니더." 사람들은 너도 나도 대문 밖을 나가 손수레에 실고 팔러온 고래 고기 장수 곁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고래 고기를 사는 동네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단지 고래 고기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리 맛좋은 고래 고기라도 당시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 이를 살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향이 남해 바닷가여서 생선회는 즐겨 먹는 편이었지만 고래 고기는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었을 것이다.
6~7년 전 정부산하기관에 있을 때였다. 전국적 조직을 거느린 곳이어서 1년에 몇 차례씩 수백 명이 모이는 지사장 회의를 했다. 어쩌다 한번씩 지역본부별로 회식 때 쓰기 위해 지역특산품을 가지고 왔다. 전복과 회를 가져오는 곳도 있었고 머루주를 가져오는 곳도 있었다. 가장 특이한 특산품은 부산지역본부가 가져온 고래 고기였다. 쟁반 위에 부위별로 차려 놓았다. 인기가 아주 많지는 않았다. 본부장의 계속된 권유로 부위별로 한두 점씩 젓가락질을 해보았다. 맛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아 몇 점 먹는 시늉만 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래 고기의 특이한 맛에 그리 입맛이 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 뒤 고래 고기에 대한 추억은 나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고래를 만나거나 동해안에서 어망에 걸린 고래가 수천만원에 팔렸다는 뉴스를 통해 만났다. 지난 4일 다시 고래를 만났다. 정부가 고래사냥을 국제사회에 요청하려 한다는 놀라운 메가톤급 보도를 통해서다.
한국 '과학포경' 주장에 전세계 경악
"고래가 자꾸 그물에 걸리고 늘어나는 고래가 사람이 먹어야 할 수산자원을 다량으로 먹어치우는 바람에 어민들은 제한적인 포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어민의 요구를 충족하고 관측 조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이 협약 8조에 따른 과학적 연구를 위한 포경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IWC)에 참석한 우리나라 강준석 수석대표의 이 발언이 국제 사회와 전 세계 언론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것이다. 과학연구를 위한 목적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그것은 본격 사냥을 위한 전초일 수도 있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본보기가 이미 있다. 일본이다.
일본은 '과학 포경'을 빌미로 대형 포경선을 이용해 연간 500~1000마리 가량의 고래를 잡아 연구용으로 쓴 뒤 고래 고기를 시장에 유통시킨다. 한두 마리나 몇십 마리도 아닌 이 정도이면 사실상 상업포경인 셈이다.
농림수산부는 주로 남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의 '과학 포경'이 국제 사회의 눈총을 받고 있는 점을 의식해 한국은 이미 8000~9000년 전의 반구대 암각화에 포경 장면이 묘사돼 있는 점을 언급하면서 한국 해안에서 '과학 포경'과 함께 이누이트처럼 '토착 포경'을 하겠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섰다.
고래잡이가 전통문화이고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금지협약이 예외 조항을 둔 것을 이용해보자는 속셈이다. 사실 고래 사냥이 전통문화라고 여기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고래 사냥 추진 선언이 국제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환경단체를 비롯해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우리는 몰랐다"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논란 때처럼 정부 부처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청와대가 정말 몰랐다면 외교통일부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간부들의 목을 모조리 날리면 진정성을 그런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터인데 이런 일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마뱀 꼬리 자르기로 보는 이들이 많다.
국격 높였다더니 또 한번 나라망신
이번 일로 틈만 나면 국격을 높이겠다고 떠들고, 국격을 높였다고 자랑하던 이명박정부는 또 한 번 나라 망신을 전 세계인에게 시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품격도 계속 떨어뜨리고 있다. 이제 임기가 반년 남짓 남았다. "국격 타령 마이 했다 아이가. 이제 고마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므로 보호 정책을 환경부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고래보호 운동에 열성을 다하고 있는 한 후배의 모습이 떠오른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그의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일 것이다. 고래사냥은 그저 노래 제목으로, 노랫말로, 영화로 족하다.
40여년 전 어릴 적 이야기다. 집 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래 고기 사이소. 맛좋은 고래 고기가 왔심니더." 사람들은 너도 나도 대문 밖을 나가 손수레에 실고 팔러온 고래 고기 장수 곁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고래 고기를 사는 동네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단지 고래 고기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리 맛좋은 고래 고기라도 당시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 이를 살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향이 남해 바닷가여서 생선회는 즐겨 먹는 편이었지만 고래 고기는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었을 것이다.
6~7년 전 정부산하기관에 있을 때였다. 전국적 조직을 거느린 곳이어서 1년에 몇 차례씩 수백 명이 모이는 지사장 회의를 했다. 어쩌다 한번씩 지역본부별로 회식 때 쓰기 위해 지역특산품을 가지고 왔다. 전복과 회를 가져오는 곳도 있었고 머루주를 가져오는 곳도 있었다. 가장 특이한 특산품은 부산지역본부가 가져온 고래 고기였다. 쟁반 위에 부위별로 차려 놓았다. 인기가 아주 많지는 않았다. 본부장의 계속된 권유로 부위별로 한두 점씩 젓가락질을 해보았다. 맛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아 몇 점 먹는 시늉만 하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래 고기의 특이한 맛에 그리 입맛이 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 뒤 고래 고기에 대한 추억은 나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고래를 만나거나 동해안에서 어망에 걸린 고래가 수천만원에 팔렸다는 뉴스를 통해 만났다. 지난 4일 다시 고래를 만났다. 정부가 고래사냥을 국제사회에 요청하려 한다는 놀라운 메가톤급 보도를 통해서다.
한국 '과학포경' 주장에 전세계 경악
"고래가 자꾸 그물에 걸리고 늘어나는 고래가 사람이 먹어야 할 수산자원을 다량으로 먹어치우는 바람에 어민들은 제한적인 포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어민의 요구를 충족하고 관측 조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이 협약 8조에 따른 과학적 연구를 위한 포경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IWC)에 참석한 우리나라 강준석 수석대표의 이 발언이 국제 사회와 전 세계 언론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것이다. 과학연구를 위한 목적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그것은 본격 사냥을 위한 전초일 수도 있다.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본보기가 이미 있다. 일본이다.
일본은 '과학 포경'을 빌미로 대형 포경선을 이용해 연간 500~1000마리 가량의 고래를 잡아 연구용으로 쓴 뒤 고래 고기를 시장에 유통시킨다. 한두 마리나 몇십 마리도 아닌 이 정도이면 사실상 상업포경인 셈이다.
농림수산부는 주로 남극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의 '과학 포경'이 국제 사회의 눈총을 받고 있는 점을 의식해 한국은 이미 8000~9000년 전의 반구대 암각화에 포경 장면이 묘사돼 있는 점을 언급하면서 한국 해안에서 '과학 포경'과 함께 이누이트처럼 '토착 포경'을 하겠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섰다.
고래잡이가 전통문화이고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금지협약이 예외 조항을 둔 것을 이용해보자는 속셈이다. 사실 고래 사냥이 전통문화라고 여기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고래 사냥 추진 선언이 국제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환경단체를 비롯해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우리는 몰랐다"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논란 때처럼 정부 부처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청와대가 정말 몰랐다면 외교통일부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간부들의 목을 모조리 날리면 진정성을 그런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 터인데 이런 일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마뱀 꼬리 자르기로 보는 이들이 많다.
국격 높였다더니 또 한번 나라망신
이번 일로 틈만 나면 국격을 높이겠다고 떠들고, 국격을 높였다고 자랑하던 이명박정부는 또 한 번 나라 망신을 전 세계인에게 시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품격도 계속 떨어뜨리고 있다. 이제 임기가 반년 남짓 남았다. "국격 타령 마이 했다 아이가. 이제 고마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므로 보호 정책을 환경부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고래보호 운동에 열성을 다하고 있는 한 후배의 모습이 떠오른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그의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일 것이다. 고래사냥은 그저 노래 제목으로, 노랫말로, 영화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