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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최예용 0 3991

 

[기고]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내일신문 2017-05-18 

'국가는 없었다' 세월호에서 304명이 죽어가고, 가습기 살균제로 1186명(대책위원회에 신고된 숫자)이 죽어갈 때에도 국가는 없었다. 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에도, 6명의 20대 젊은 청년들이 실명했을 때에도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연간 2400명의 노동자가 죽어가는 산업재해 현장에도 관리, 감독해야 할 국가의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다. 지진과 원전 사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저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을 스텔라데이지호의 22명 실종자와 그 가족들에게 국가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국가, 국가의 일을 책임지는 정부, 국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할 책임이 있는 공무원들의 태도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의 사례에서 보듯 사고 이후에도 기업 편에 서서 사고의 원인을 감출 뿐만 아니라 사고를 일으킨 원인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구해도 기업의 영업비밀(국가기밀이 아니라!)이라며 알려주지 않고 있다. 

'안전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국민이 한명도 없게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13일 세월호광장에서 열린 '국민안전 약속식'에서 '안전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국민이 한명도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의 손을 잡고 삼성으로 하여금 피해자들과 직접 대화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취임 이후에는 세월호 참사의 재조사와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지시했다. 국가가 조금씩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월호의 비극과 염원이 촉발한 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새정부는 가장 어려울 때 가장 가까이 있는 정부,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가운영의 첫번째 원칙이 모든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호가 되어야 한다. 모든 법률과 제도와 정책을 안전과 생명보호의 관점에서 재점검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세월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게 준 핵심적인 교훈이다.

시민사회도 안전사회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노동현장 피해자뿐만 아니라 먹거리 안전을 위해 활동하는 소비자 협동조합, 환경 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 각 지역의 풀뿌리 단체들이 힘을 모아 '생명존중안전사회시민네트워크(안전넷)'라는 모임을 만들어 생명의 가치가 최우선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고 실천하고 있다. 

안전넷은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안전사회 실현을 위한 8가지 원칙과 10개의 정책 과제를 발표했다. △헌법에 생명 안전권을 명시, 국민안전기본법 제정 △생명 안전을 위한 국가 조직체계 개혁, 시민이 참여하는 생명안전협치체제 마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조속 제정 △중대재해 발생시 정부 기업 법인의 최고 책임자 처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안전규제 완화 중단, 위험을 조장하는 정경유착 적폐 청산 △생명안전 관리감독 강화, 기업과 안전 분야 종사자 확충 △위험의 외주화(하청) 금지, 원청 책임 대폭 강화 △지진 위험 지역에서 원전 가동 즉각 중지, 탈핵으로 전환 △철도와 지하철의 2인 승무 제도의 의무화 등 대중교통의 안전성 강화 △노동현장에서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알권리 보장, 유전자 변형식품(GMO) 완전표시제 시행 △피해자 집단소송제 도입 등 안전사고시 피해자의 구제 권리 강화 등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위험사회'다. 압축 성장을 해오는 동안 안전은 개발 논리에 밀렸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달려왔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운데 하늘 끝까지 돈을 쌓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명을 경시하는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대한민국이 지속가능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명이 존중되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송경용 성공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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