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권력에 바라는 세가지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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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5 11:16
[데스크 칼럼] 새 권력에 바라는 세가지
조선일보 2017 5 5
김기성 산업부장
미국 와튼스쿨 최연소 종신교수인 애덤 그랜트(Adam G. Grant)의 저서 ‘GIVE and Take’(주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반가운 책이다.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타인을 위해 베풀고, 양보하고, 헌신하는 이른바 ‘기버(Giver)’가 결국 성공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성공한 기버는 주변 사람까지 성공으로 이끄는 행복 바이러스의 전파자이고, 조직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소통의 능력자라는 공통점도 지닌다.
기버는 자신이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으려고 하는 ‘테이커(taker)’나 받는 만큼만 주는 ‘매처(matcher)’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기버들의 성공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권모술수와 뻔뻔함을 정당화하는 마키아벨리즘이나 후흑학은 결코 성공 철학이 될 수 없다는 점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닷새 뒤면 우리는 새 권력을 맞는다. 이 시점에 출간된 지 4년이 지난 이 책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새 정부의 성공 여부도 이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과거 대통령의 실패 사례에서 입증됐듯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며 오만한 정부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최순실 게이트와 대통령 탄핵 사태로 국론이 분열되고, 북핵 위기를 둘러싼 한반도는 그야말로 시계제로인 엄혹한 상황이다. 우리끼리 뭉치지 못하고 또다시 반목하면 앞으로 5년은 혼란과 갈등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유력 대선 후보마다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쾌도난마식 해결책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협치 없이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지율 40%대 대통령의 한계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경제를 중심으로 세가지를 새 정부에 요구하고 싶다.
이 책에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의 사례가 나온다. 1869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는 경쟁자였던 세 사람을 각각 국무장관, 재무장관,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만약 링컨이 테이커였다면 내각을 예스맨으로 구성해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지키려 했을 것이고, 매처였다면 자신을 지지해준 동지들에게 한 자리씩 내주었을 것이지만 그는 매서운 경쟁자들을 선택했다. 링컨은 이런 협치를 통해 노예해방이라는 거대한 업적을 남긴다. 닷새 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경쟁자를 끌어안는 신선하고 진정성 있는 포용력을 내각 구성에서부터 보여줬으면 한다.
구조적으로 테이커를 양산하는 기득권 장벽을 걷어내는 것 또한 시급한 과제다. 이는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수십만개의 공공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 세금을 이용한 일자리 대책은 일자리 해결의 본질이 될 수 없다.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원이 부족할 때마다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는 민간의 몫이다. 그 지름길은 파격적인 규제 완화밖에 없다. 신산업, 신직업 창출을 가로막는 법과 제도를 바꿔 기업가정신이 되살아나게 해야 한다. 파괴적 혁신이 이뤄지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선 더욱 절실한 과제다. 창업이 활성화되고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리도록 새로운 산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동시에 패자부활전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안전망 확충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번번이 국회에서 발이 묶인 서비스발전기본법을 빠른 시일내 사회적 합의를 위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를 희망한다. 의료 관광 교육 등 고용유발계수가 제조업의 두 배인 서비스산업의 기득권 장벽을 그대로 놔둔 채 일자리 문제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득권 장벽을 걷어내지 못하면 개혁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새로운 유망 선수들이 마음껏 뛰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는 공정한 운동장을 계속 만들어 나가면 일자리 문제는 풀리게 돼 있다.
이러한 공정한 운동장이 유지되려면 두 축이 필요하다. 한 축은 유능한 플레이어를 끌어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보상·유인 체계(incentive)이고, 또다른 한 축은 반칙하는 플레이어를 엄하게 심판하는 공정한 제재·징벌 체계(penalty)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두 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보상·유인 체계는 허술하고, 제재·징벌 체계도 미약하다.
지금 국회에 발의된 대다수 경제 관련 법안은 경쟁 촉진이 아닌 경쟁 회피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약자보호, 상생도 중요하지만 경쟁이라는 시장원리를 무시해서는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없다. 특히 일탈 행위를 한 일부 대주주 때문에 형성된 반기업정서를 확대 재생산하고 기업을 적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년 일자리를 얘기하면서 대기업의 정규직 노조 개혁에 입을 닫아서도 안된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 투자해 새로 만들어낸 일자리가 109만개라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집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저임금 등으로 비용을 낮추고 거대시장과 가까운 곳에서 생산하는 게 유리한 측면도 있겠으나 복잡한 규제와 노동시장 경직성 등 기업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환경도 주된 원인이다.
또한 협력업체 기술 탈취, 담합, 소비자 기만, 일감몰아주기(통행세) 등 우리가 선택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도전에 대해서는 일벌백계해야 한다. 사회에 끼친 유무형 손해보다 훨씬 많은 징벌적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세월호 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뼈아픈 교훈을 망각해선 안된다.
새 권력이 경제의 역동성과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유능한 정부이길 바란다. 적어도 낡은 틀에 갇히지 않도록 눈과 귀를 활짝 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