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석면폭탄, 재건축 재개발 현장]
도심의 석면폭탄 재건축,재개발현장
지난 8월말,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에서 내려 관악산 연주암쪽으로 향한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 폭염이 지나간 하늘은 눈부시게 맑고 파랬다.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이는 관악산을 배경으로 서너개의 학교가 위치해 있다. 과천여고, 과천외고, 과천중학교다. 왼쪽으로는 과천시청이 있고 그 옆으로는 한때 수십개의 중앙부처들이 입주해 대한민국의 행정심장부였던 정부과천종합청사가 있다. 학교쪽으로 나 있는 길이 평소에도 조용한 곳이지만 토요일이라 그런지 더욱 한가하다. 헌데 가만히 보니 아파트입구와 연립주택 입구에 모두 차단줄이 처져있다. 안내문은 이 일대가 곧 모두 철거되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재건축 지역임을 알리고 있다. 시공사인 포스코가 내건 입간판이었다.
“이 길 좌우로 곧 대대적인 석면철거공사가 시작된다는데 아이들 수천명이 이 길로 통학을 하는데 괜찮을지 걱정이 큽니다” 과천지역의 대학생들로 구성된 환경동아리모임인 ‘어벤저스’가 주최한 석면강연회에 참석했던 학부모들과 학교주변의 재건축 예정현장을 둘러봤다. 오래전에 지어지긴 했지만 모두 멀쩡한 집들이다. 단독주택 단지도 있고 3층짜리 연립주택단지, 5층짜리 낮은 층수의 주공아파트 1단지가 재건축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과천은 한때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혔었는데 와 보니 그 이유를 알것 같다. 자연환경과 교통환경 그리고 다양한 주택환경을 갖춘 곳이다.
그런데 과천 전역이 석면폭탄 먼지폭탄이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환경오염 전장터가 되고 있다. 대규모 재건축 사업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78년 정부의 신도시 건설계획에 따라 정부과천청사와 더불어 조성된 과천의 아파트는 12개 단지 13,522세대인데 이들 거의 모두가 재건축의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 초 1월에 이미 건물철거가 진행된 과천 주공7단지에서의 일이다. 11개동의 아파트 건물을 철거하는 바로 인근에 청계초등학교가 있어 학부모들이 석면비산과 먼지비산을 크게 우려하며 현장조사를 요청해왔다. 재건축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이 내 놓은 철거대상 석면건축자재량은 모두 20톤 가량으로 엄청난 양이었다. 학부모와 주민들을 초청한 공개설명회 자리에서 삼성물산은 여러 건축관련 전문용어를 사용해가며 석면철거를 문제없이 하겠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현장조사결과 두가지 심각한 문제가 지적되었다. (보고서 클릭)
<사진, 과천 주공7단지 재건축현장의 석면철거대상인 베렌다의 창틀 밤라이트 석면.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외부공사라는 이유로 아무런 비산방지조치 없이 공사를 강행하려 했다>
첫째 문제는 베렌다 창문아래 쪽에 유리대신 끼워진 밤라이트라고 불리는 석면칸막이재를 외부공사라는 이유로 아무런 석면비산방지조치 없이 철거한다는 점이다. 화장실 천장재 밤라이트의 경우 비산을 막기 위해 두꺼운 비닐을 이중으로 사방에 깔고 헤파필터로 공기를 걸러내는 음압기로 안쪽 공기를 빼내서 혹시 발생할지모르는 석면먼지의 외부 누출을 막게 되어 있다. 그런데 베란다 창문의 밤라이트는 아무런 안전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사장 바로 옆에 초등학교와 주택단지가 인접해 있는데도 말이다.
둘째 문제는 코킹재라는 이름의 창문을 고정시키는 창틀고정재에 고농도의 석면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석면비산이 우려되었다. 석면코킹재는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은 석면자재인데 유독 과천의 주공아파트에서 다량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과천 7단지의 경우 석면코킹재가 무려 13키로미터나 조사되었다. 코킹재는 시멘트와 단단히 결합되어 있어 별도로 잘 떼어지지 않아 시멘트와 함께 철거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석면먼지가 다량 비산될 우려가 컸다. 또 시멘트에 섞인 석면폐기물이 제대로 수거되지 않으면 일반 건축폐기물에 석면폐기물이 섞여나가 제2의 석면공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었다. 통상 시멘트나 벽돌 등의 건축폐기물은 파쇄되어 순환골재라는 이름으로 도로기충재나 주자창 바닥등의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음압기의 필터교환주기 기록지가 없고, 작업자의 출입과정에서 석면오염을 막기위한 위생시설의 문제점이 추가로 지적했다. 삼성물산은 산업안전관리법상에 베렌다 창문의 석면철거는 석면슬레이트 지붕과 같이 외부공사에 해당해 별도의 석면비산방지조치가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학부모와 주민들은 철거과정에서 석면먼지가 주변오염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대책을 요구했고 과천초등학교와 시의원들은 삼성측에 공문을 보내 안전조치를 요구했다.
당초 공사계획을 한달가량 늦춘 삼성물산은 상가건물의 광고판을 설치할 때 사용하곤 하는 일명 스카이라고 부르는 사다리차의 일종인 장비를 이용해 석면먼지 비산방지 장치를 설치해 아파트의 베렌다 창문의 석면을 제거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석면코킹재의 경우는 추가적인 안전대책이 제시되지 않았다.
학부모들과 주민들은 석면철거 기간동안 자체적인 석면먼지 모니터링을 통해 오염을 감시하자는 의견을 나눴지만 실제로는 진행하지 않았다. 시공사 측에서 학교에 공기청정기 등의 시설을 제공하겠다고 하자 이를 수용하면서 감시활동을 접었다. 학부모들중 일부는 재건축 조합의 일원이었고, 인근 주민들도 조만간 자신들도 재건축을 할 계획이라 석면오염을 감시하는데 소극적 이었다.
삼성물산과 같은 대형 건설사가 설마 석면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2009년의 일이다. 삼성그룹은 서울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삼성본관을 리모델링했다. 삼성본관 건물의 철골에는 시멘트와 석면을 섞은 뿜칠석면이 붙어 있었다. 화재로부터 건물을 유지해주기 위한 공법이었지만 삼성은 리모델링과정에서 뿜칠석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건물내외부에 청석면가루가 흩날렸다. 조사해보니 반경 160미터 주변이 청석면과 백석면으로 오염되었다. 22개의 먼지와 토양시료 중에서 55%인 12개 시료에서 석면이 검출되었다. 한마디로 도심 한복판에서 석면폭탄이 터진 것이다.
특히 청석면은 백석면에 비해 독성이 강해 백석면이 2009년에 완전히 사용이 금지된 반면 청석면은 1998년에 6종의 석면종류중에서 가장 먼저 사용이 금지되었다.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터져나온 석면폭탄 즉 뿜칠석면의 철거는 2008년 11월에 시작되어 2009년 3월까지 계속 이어졌다. SBS와 한겨레 등의 언론이 주요 뉴스로 다뤘지만 삼성은 법의 헛점을 교묘히 빠져나갔다. 법적으로 석면오염은 대기중 모니터링으로만 제재를 가할 수 있는데 사방에서 바람이 부는 조건에서 대기모니터링으로는 석면오염을 잡아낼 수 없다. 대신 주변의 먼지와 토양을 조사하면 오염여부를 알 수 있는데 그런 방법은 법적인 항목이 아니다.
<그림, 2009년에 큰 사회문제화 된 서울 중구 삼성본관의 내외부 석면오염 실태지도, 당시 삼성은 본관건물 리모델링을 하면서 청석면 뿜칠재를 외부로 비산시켜 주면을 오염시켰다>
삼성본관의 석면폭탄이 터진 기간에 그 주변에서 근무했거나 자주 찾았던 사람들의 석면건강피해가 우려된다. 오염된 삼성본관의 건물내에서 근무했던 삼성카드 등의 직원들이 회사측에 항의했고 삼성은 강북삼성병원에서 석면건강검진을 실시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그러나 석면은 노출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고 석면에 의한 중피종암이나 폐암은 20년에서 40년의 긴 잠복기를 거쳐 발병된다. 삼성이 직원들에게 한 건강검진은 눈가리고 아웅이었던 것이다.
과천 주공1단지의 재건축을 담당하는 포스코는 석면문제를 잘 다뤄왔을까? 2015년 초 마포구의 재개발 현장에서 포스코는 석면철거를 엉망으로 해 수백개의 석면슬레이트 조각을 몇달간이나 방치하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적발되었고 노동부 서부지청에 고발된 바 있다. (보고서 클릭)
재건축이 야기하는 석면문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거지역이어서 여러 학교에 인접해 학생들과 주민들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둘째, 석면건축자재를 짧은 기간에 대규모로 철거하는 과정에서 석면오염을 심각하게 유발한다. 셋째,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의 감시감독이 매우 허술하다. 넷째, 지역사회와 환경단체의 감시가 필수적이지만 대부분 무관심하다.
2010년을 전후로 유행했던 뉴타운사업은 도심에서의 대규모 재건축 재개발사업으로 석면공해의 온상이었다. 한동안 잠잠했던 재건축사업이 곳곳에서 다시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석면안전에 대한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석면의 다른 이름은 ‘침묵의 살인자’다. 또 다른 이름은 ‘조용한 시한폭탄’이다. 재건축사업으로 여기저기에서 소리없이 석면폭탄이 터지고 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환경보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