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가습기살균제 파기환송심, 무엇을 다시 물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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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가습기살균제 파기환송심, 무엇을 다시 물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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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파기환송심, 무엇을 다시 물어야 하는가

경향신문 2026.01.28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는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 관계자에 대한 형사사건의 파기환송심이 진행되고 있다. 2024년 12월 대법원은 2심에서 인정된 업무상 과실치사상 유죄 판단에 대한 재심리를 요구했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과 CMIT·MIT 가습기살균제 제조 기업 간 공동정범 성립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판결이 가습기살균제 제품 개발·판매·사용 과정과 이 과정에서 발생한 집단 건강 피해의 복잡성을 반영했는지 의문이다. 파기환송심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된 핵심 쟁점들이 충분히 심리되기를 바란다.

첫째, 공동정범의 적용 여부를 판단할 때 여러 기업이 경쟁적으로 개발·판매한 제품들이 초래한 건강 피해 참사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은 1994~2011년 동일 살균제 성분을 원료로 같은 기능의 여러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위험성 평가 없이 경쟁적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안전하다는 허위광고로 소비자 사용을 부추겼다. 그 결과 소비자가 제품의 위험을 알지 못한 채 제품을 믿고 사용하게 만든 공동의 기망 구조(광의의 공동정범 구조)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5942명의 건강 피해 참사를 초래했다. 제품 사용자에게 인체 손상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공동 인식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확인된 가습기살균제 제품은 총 44개다. 이 중 건강 피해자 수가 가장 많은 PHMG 제품은 9개, CMIT·MIT 제품은 14개이며, 제조 기업은 모두 다르다. 많은 피해자들이 제품 사용 시 성분과 농도 등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동일 기능의 제품을 번갈아 사용했다. 이런 특수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들이 사전 범죄를 모의하지 않았다는 일반 형사사건의 공동정범 개념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동일한 기능의 제품을 판매한 개별 기업의 과실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억지 작용이 없어진다.

둘째, 대법원이 공동정범을 인정할 경우, 화학제품 제조·판매자에 대한 과실범 공동정범의 적용 범위가 무한정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한 점은 정부의 예방 규제 거버넌스를 고려하지 못한 과도한 걱정이다. 참사 이후 우리나라의 화학물질 관리체계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정비되었다. 국가는 화학제품 사용 피해 사고에 대해 책임자가 무한정한 상황이라도 책임을 물어 위험 제품의 시장 확산을 막아야 한다. 단지 처벌 대상이 넓어질 수 있다는 우려만으로, 큰 건강 피해를 초래한 경우에까지 형사책임 가능성을 차단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CMIT·MIT 등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범죄행위 종료 시점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건강 피해를 확인한 시점(2014년 후)으로 적용해야 한다. 화학제품 판매 종료 시기를 공소시효 시작 시점으로 판단하면 건강 피해의 임상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형사사건에서 범죄행위로 인한 신체 손상 결과는 대부분 시간 경과 없이 바로 발생한다. 반면 화학제품 사용으로 발생하는 신체 손상은 일정 기간을 거친 후 급성·만성 질병의 형태로 나타난다. 판매가 종료된 제품을 소비자에게 모두 회수해 건강 위험 발생을 차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실제 CMIT·MIT 제품 판매 종료(2011년) 후에 이 제품을 사용한 6개월 쌍둥이가 모두 폐 손상을 입은 사례도 있다. 형사사건과 동일하게 범죄행위 종료 시점을 화학제품 판매 종료 시점으로 적용하면, 일정 기간 후에 개인 혹은 집단 건강 피해가 발생해도 공소시효 만료로 형사책임이 없어지는 불합리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형사법의 범죄 예방·억지 목적과도 배치된다.

파기환송심에선 화학제품 건강 피해 사건의 특성을 반영한 법리를 적용해 CMIT·MIT 제품이 초래한 건강 피해에 대한 합당한 과실 책임이 확인되기를 기대한다.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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