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문 정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해결 약속 끝까지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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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문 정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해결 약속 끝까지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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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문 정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해결 약속 끝까지 지켜야


10년 넘게 풀리지 않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중앙일보 2022.4.25 

‘완전한 해결’이 불가능함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생명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어떤 보상이 생명과 건강을 원상 복구하고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우리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를 이야기하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이 세상에서 잊히지 않기를, 피해자와 가족의 삶이 외롭게 소외되지 않고 가능한 한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업이 최대한의 책임을 지켜나가기를, 사회가 이 참사의 교훈을 또렷이 기억하기를, 민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 정부가 책임지는 사회안전망이 만들어지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 위험이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취임 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청와대에 초청
“억울한 눈물 없도록…” 약속했으나 아직 사태 해결 안 돼
강제력 없는 사적 조정기구 한계…차기 정부로 넘어갈 듯
정부가 조정 당사자로 참여해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해야

역대 정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책임

2017년 8월 청와대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피해자 임성준군에게 야구 선수 피규어를 선물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당시 사태 해결을 약속했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8월 청와대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간담회에서 피해자 임성준군에게 야구 선수 피규어를 선물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당시 사태 해결을 약속했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호흡을 통해 직접 들이키는 가습기 물에 화학물질을 넣는다는 황당한 일이 대한민국에서만 벌어졌기에 대한민국은 전 세계 유일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국이 되었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지원 종합 포털’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말까지 피해 규모는 사망 피해자 1751명, 생존 피해자 5934명이다. 단일 사건으로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피해를 낳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무거운 현황이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이 길고 긴 참사의 책임으로부터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정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안전에 대한 기준을 정립하지 못한 그 이전 정부의 책임도 막중하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알려지고 공론화가 된 시점이 2011년이었으니 그 이후로도 10년이 흘렀고 정치권 스스로가 정부의 책임이라 인정했었다.

2016년 국정조사에서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라고 말했고, 2017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피해자와 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하며 과거 정부가 피해를 예방하지 못했고 피해 후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우리 국민이 더는 안전 때문에 억울하게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던 대통령의 약속을 또렷이 기억한다. 불과 5년 전 일이다.

사회적으로 문제 해결할 필요

그러나 정부가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마무리되는 지금까지도 사태 해결은 여전히 미완인 채로 남아 있다. 간혹 “가습기 살균제라니 이미 오래전의 문제 아닌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나?”는 질문을 받곤 한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피해자의 고통이 지속할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우리가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것을 생각하면 미래형이기도 하다.

생명을 돌이킬 수 없기에 완전한 해결이 불가능하다 해서 해결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현실 가능한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 내야 한다. ‘사회적 해결’이라는 말이 ‘모든 개인 문제의 해결’과 같은 뜻이 될 수는 없다. 일종의 사각지대처럼, 사회적 해결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고통이 모두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최소한의 기본적인 안전망으로서 사회를 신뢰하고 살아갈 공동체의 규칙이 만들어져야 한다.

사회적 해결을 위해 그간 나름의 노력과 시도가 계속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2022년 4월 말까지를 기한으로 두고 활동 중인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가 대표적인 시도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단체들과 기업들이 모여 출범한 사적 협의기구인 조정위는 지난 11일 조정안을 발표했다. 피해 보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들이 합의하지 않아 결국 조정안 성립이 무산되었으나, 최초 공론화된 이후로 1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답보 상태에 머무르던 사태가 ‘사회적 해결’로 향하는 시도를 했다는 의미는 있다. 다양한 피해자 단체와 기업들이 처음으로 조정이라는 분쟁 해결 방식을 통해 접촉하고 대화하며 사회적으로 문제 해결의 모색을 시작한 점은 기억돼야 한다.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 얽혀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애경 본사 앞에서 애경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환경보건시민센터. [뉴시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애경 본사 앞에서 애경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환경보건시민센터. [뉴시스]

코로나 팬데믹의 혼란 속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된 조정위와 참여자들의 해결 의지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이번 짧은 활동만으로 이 뿌리 깊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는 수많은 이해 당사자가 있고, 피해 정도나 양상도 모두 다르고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정위 논의에만 9개의 원료 공급업체 및 제조업체들과 단순 노출 인정자 및 피해 등급 판정 대기자를 포함하여 7000여 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참여했기에, 이들 모두를 아우르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피해 구제안이 도출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조정안에 동의한 피해자 중에서도 조정안이 만족스럽기보다는 정부의 더딘 피해 판정과 구제를 기다리다 지쳐 빠른 조정 합의를 통해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며, 피해 보상으로 인한 예측 불가능성을 안고 가야 하는 기업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예상한다.

정부의 책임감 있는 참여 절실

최선의 조정은 당사자 간의 명확한 목표와 원칙을 먼저 정립하는 데서 시작한다. 합의된 원칙 아래에서 이견을 조율해 나가야 동의를 끌어낼 수 있다. 즉 조정이라는 방식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종국적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다면, 종국적 해결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양측의 구체적인 합의가 우선이다. 그러나 조정의 대상과 조정의 성립 같은 대전제, 공유하는 목표가 명확하고 정교하게 합의되지 않고 시작되었기에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조정의 주요 당사자로 직접 참여하지 않아 책임을 분담하는 데 부족했다는 점이다.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역시 정부의 책임을 지적하며 최근 정부 관계 부처의 안전 관리 부실이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초래했다고 결론 내리고, 사회적 고발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묻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활동을 마무리해 가는 조정위는 사회적·도의적 책임을 전제로 모인 기구인 만큼, 정부 역시 책임감 있게 참여해 필요한 법과 제도의 개정과 정비, 재정적 분담에 참여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정부는 법적인 강제성이나 집행력이 없는 사적 조정기구에 합의를 맡겨 두기보다는 더 적극적인 직접 당사자의 입장으로 참여했어야 했다.

안전에 대한 신뢰 없인 사회 지속 불가능

돌이킬 수 없는 피해자의 희생이 허무하게 잊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그런 재난의 순간에 동료 시민이 함께 연대하며 사회가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가 없다면 사회는 유지되기 어렵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피해받은 개인이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해결해 갈 것이라는 믿음, 국가 제도가 개개인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신뢰는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다. 당사자들 간의 직접 타협에만 맡긴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안전에 대한 탄탄한 신뢰 없이 어떤 사회가 지속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는 차기 정부에까지 가습기 살균제 문제 해결의 책임은 이어지리라 보인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는 정파를 넘어 앞으로의 모든 정부가 뜻을 같이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약속을 기억하기에 이번 정부가 남은 얼마 안 되는 시간이나마 마지막 순간까지 책임 있고 구체적이며 적극적인 노력으로 마무리하기를 바란다. 조정위의 합의가 무산된 지금 대통령이 남은 임기 내에 피해자들을 다시 만나 위로하고 담대한 결단을 내리기를 강력히 요청한다. 그리하여 안전에 대해서만큼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 정부로 기억에 남기를 바란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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