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와 관련된 책임과 배상을 원청기업과 국가기관에도 물을 수 있는 제도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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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사고와 관련된 책임과 배상을 원청기업과 국가기관에도 물을 수 있는 제도 도입해야

최예용 0 4443

한국일보 2016년9월20일자 

 

경주 지진으로 국민 불안 증폭돼

 

사회적 실패 원인 철저히 가려야

 

기득권층 은밀한 저항이 걸림돌

12일의 지진에 이어 19일 밤의 강력한 여진으로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과연 원자력발전소나 건축물이 내진설계 규정대로 지어졌을까 하는 불안과 정부의 위기 대처능력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많은 국민의 가슴에 아직도 응어리져 있는 세월호 참사나 비정규직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구의역 안전사고 이후에도 국민안전 관련 사고가 잇따르는 현실을 반영한 불신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은 사건,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법조 비리와 기업인 비리, 그리고 조선 및 해운산업구조조정이라는 미명 하에 이뤄진 관치금융과 이를 통한 혈세 낭비 등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우리 사회에 성한 구석이 있기는 한가라는 자괴감을 들게 하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사건들은 법·제도·정책이라는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사회적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른 국민적 상실감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실패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교훈을 얻고 시스템 오류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처방과 땜질 식 대처에만 급급한 현실이다. 나아가 국민의 관심을 부차적인 문제로 돌리고 실효성 없는 처벌로 국민 울분을 달래려고만 한다.

수십조 원의 국민 세금의 낭비와 대량실업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은 조선·해양산업의 구조조정 문제를 다룬 국회 청문회는 문제의 본질 회피에만 급급한 정부와 여당 그리고 무기력한 야당의 모습만 보여 주었다. 나아가 정책실패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보다는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 전직 간부들의 개인적 비리 문제로 국민의 주목을 돌리기에 급급하다. 관치금융을 통한 재벌·정치인·관료들의 지대추구와 이에 따른 피해는 국민들이 다 뒤집어쓰는 구조적 부조리는 덮고 가려는 꼼수만 난무하다. 이대로 가면 제2, 제3의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이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부도덕성만 성토하는 것으로는 역부족이다. 진정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바꿀 용의를 국회와 정부가 가지고 있다면, 유해물질 영향 기업의 실사의무를 강제하라는 유엔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입법화해야 한다. 나아가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가해기업에 대해 징벌적 배상과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런 근본적 처방이 기업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기업들의 로비로 끝내 입법화되지 못한다면, 국민을 위한 국회인지 기득권자들의 대리인으로서 정부와 국회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정부와 정치인이라면, 위험의 외주화와 하청을 통한 책임회피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기업의 추가 부담이 우려된다는 개도기적 변명도 접고, 안전사고와 관련된 책임과 배상을 원청기업과 국가기관에도 물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나아가 법조비리와 재벌비리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리 법조인과 재벌총수일가에 대한 형량을 대폭 높이는 가중처벌과 변호사 자격의 영구 박탈 및 기업 경영에서 영원히 퇴출시키는 조치를 도입해, 일벌백계를 보여야 한다. 

발명왕 에디슨이 약 2천 번의 실패를 거처 드디어 전구 발명에 성공했을 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면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는 대신에 실패의 책임을 은닉하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 실패는 실패일 뿐이고 더 큰 실패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사회적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되기 어려운 것은, 이런 실패의 반복을 방지하는 시스템 개선으로 인해 기득권을 잃게 될 기득권자들의 은밀하고 치밀한 저항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인이 누구 편에 서는지 국민들이 모를 거라고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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