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과 직업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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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과 직업병

최예용 0 13860

내일신문 2012년 8월4일자에 실린 안종주(언론인)의 정기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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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불볕더위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살인 더위다. 뉴스도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것을 원한다. 우리를 가장 시원하게 해주는 소식은 나라 안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런던올림픽에서 부상을 딛고, 오심의 악몽을 견뎌내고 값진 승리를 일궈내 메달을 따낸 대한민국 태극전사들의 소식에 열광한다. 물론 시원한 소식만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펜싱과 유도 등에서 이해할 수 없는 오심으로 정말 우리들을 열 받게 하는 뉴스도 있다. 정말 열통 터진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열통을 내야 할 일들은 런던이 아닌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울이 35도를 오르내리고 40도까지 치솟은 곳까지 있다는 이런 기록적인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눈에 띄는 시위는 시민단체인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삼성 규탄 1인 시위다.

 

환경활동가들이 체감온도 40도를 오르내리는 광화문 한복판 아스팔트 위에서 지난 1일 낮 12시부터 1시간씩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시위는 올림픽 폐막일인 13일까지 계속된다. 이들이 살인더위와 싸우며 시위를 하는 까닭은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건의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휴가철이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적고 언론의 관심도 온통 올림픽에 쏠려 있는데 왜 하필이면 이 때 시위를 하는 걸까? 삼성이 런던올림픽 공식후원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세계적인 기업 삼성에 대해 자랑스럽게만 여기지 말고 삼성이 숨기려 하는 그림자도 눈여겨 봐달라는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세계 유수 기업들이 직업병 감추기 내지는 꼬리 자르기 올림픽을 벌이게 된다면 단연 삼성이 금메달을 따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생각을 해본다.

 

삼성은 런던올림픽 공식 후원자

그동안 삼성의 최고책임자가 삼성전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백혈병 등 직업성 암 사건을 다루는 행태를 보면 동네 가내공장 주인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확인된 사망 노동자만 56명, 전체 피해자는 146명에 이른다. 반도체공장 등에서 일하다 직업 관련성으로 의심되는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과 같은 희귀암에 걸린 삼성노동자들이 직업병 인정도,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숨져간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사건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촉매제 구실을 했던 고 황유미씨 가족을 포함한 여러 직업병 피해자들의 한 맺힌 사연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란 책에 잘 녹아 있다. 눈물과 분노 없이는 결코 이 책을 읽을 수 없다. 삼성전자에서 청춘을 바쳤지만 결국은 직업성 암에 걸리고 버림받은, '무늬만 삼성인'인 11명 노동자의 고통스런 삶을 기록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들의 고통스런 삶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실제 일어난 일의 전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책이나 영화나 다큐멘터리나 시사프로그램이 아니다. 국민의 관심과 행동만이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볼 수 있다. 지난 여름 삼성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는 국민이 많아질수록 삼성전자 직업병 사건은 꼬인 매듭이 풀릴 수 있다. 이미 많은 정치인들이 삼성에 포위됐다는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새로 구성된 19대 국회 정기국회가 살인더위 속 광화문 시위에 대한 해답을 내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사건 해결 촉구 1인 시위자의 곁에는 지난 5월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 대책'을 촉구하는 릴레이 일인시위자가 형제처럼 나란히 자리를 하고 있다. 요 근래 직업병 사건하면 사람들은 삼성반도체 사건을 떠올리고 환경병(공해병)하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떠올린다. 직업병과 환경병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노동자가 위험하면 시민도 위험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가 52명, 피해자는 모두 174명이라고 하니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 피해 규모와 공교롭게도 서로 엇비슷하다.

 

직업병 인정 못받고 숨진 노동자 많아

폭염이 2주 이상 계속되는 때 직업병이나 환경병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염치가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산과 바다로, 돈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여름휴가를 떠나가 있을 동안 억울한 희생을 당해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삼성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대책을 세워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값진, 우리 사회의 깨어 있는 이들이 일으키는 청량 한 바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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