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힘들지만 가볼 만한 길
녹색당과 녹색정치
구도완 외 지음/ 아르케·2만9000원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재앙은 유럽 녹색당에 햇살과 같았다. 그해 9월 독일 녹색당은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 17.6%를 득표해 사민당 28.5%, 기민당 23.4%에 이어 제3의 정당이 됐다.
프랑스 녹색당(유럽생태주의녹색당)도 2012년 5월과 6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와 하원의원 선거에서 창당 이래 가장 큰 성공을 거둬 17명의 하원의원과 12명의 상원의원을 원내에 진출시켰고 사회당과의 연립정권에 참여해 국토주택평등부 장관과 개발당당 장관 등 2명의 각료를 배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후쿠시마 사고는 녹색당 창당의 새로운 동력이 됐다. 이렇게 2012년 3월 창당된 녹색당은 '탈핵'을 선거 이슈로 만들고 녹색당의 가치와 정책을 제기하기 위해 4·11 총선에 참여한다. 핵발전소 지역과 피해 예상지역인 경북과 부산에서 각 1명씩의 지역구 후보를 냈고 당원의 직접투표로 뽑은 3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냈다.
» 총선에서 득표율이 2%에 미달하면 정당등록을 취소하고 4년 동안 그 정당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정당법 조항이 위헌이라며 녹색당은 행정소송과 헌법소송을 제기했다. 녹색당원이 헌재의 빠른 판결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강재훈 기자
하지만 총선결과는 비참했다. 지역구 후보 2명은 낙선했고, 정당비례대표 투표에서 득표율은 정당등록 취소 한계인 2%에 크게 못 미치는 0.48%에 지나지 않았다. 비례대표 투표에서 얻은 10만여표는, 선거 직전 새누리당이 내놓은 ‘한나라당’으로 재빨리 당명을 바꾼 영남신당의 18만여 표보다 작은 것이었다.
세계에서 핵발전소 밀집도와 토건사업 의존도가 가장 높고, 청소년의 행복도는 가장 낮고 자살률은 높은 나라, 식량자급률이 22.6%이고 농업을 사실상 포기한 나라에서 왜 녹색당과 녹색정치는 이토록 외면받는 걸까. 이 책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라도 생각할 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유럽 각 국과 우리나라 녹색당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리고 녹색의 대안엔 무엇이 있고 그 체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관한 이론적, 실천적 고민을 담았다.
예를 들어, 지은이의 하나인 송태수 인권위원회 전문위원은 독일 독색당이 성공한 배경에 1980년대 이후 지속적 경제성장이 낳은 탈물질주의 가치지향의 확산,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1990년대 이후 녹색당 내 현실주의자가 주류가 됐지만 풀뿌리민주의의 원칙과 당내 민주주의, 68세대의 사회문화적 전통을 잃지 않음, 대중의 일상적 삶의 현장에서 괴리되지 않은 문화운동적 성격 등이 있다고 분석했다.
» 독일 녹색당이 성공한 이유의 하나는 튼튼한 뿔뿌리 정치의 토대이다. 사진은 녹색당의 풀뿌리정치 워크숍 모습. 사진=최우리 기자
녹색정치의 대안에 대해서는 진보정치와의 접합 또는 협력적 거버넌스, 현대인의 필요와 욕망을 넘어서는 '대안적 쾌락주의', '생태적 재지역화'를 통한 지역과 분권, 자치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다.
집필자 중 한 명인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 소장은 “매일같이 자본을 위해 일하고 자본이 만드는 가공식품을 먹으며 국가에 세금을 내고 국가가 주는 작은 복지에 감사하며 '국방 체제'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매일 투표 하듯이" 자본과 국가를 넘어서는 행동을 조직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이에 대해 “멀고 힘든 길이지만 가야 할, 가볼 만한 길”이라는 게 그의 답이다. "양극화와 기후변화와 같은 생태사회위기를 몸으로 절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불의와 불공정에 대한 직접적 불만을 새로운 녹색정치로 접합하는 일은 절실할 뿐만 아니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한겨레신문 웹진 물바람숲 2013년 7월22일자 기사인용 http://ecotopia.hani.co.kr/170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