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직면한 또다른 도전
최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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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6 15:41
출발하자마자 촛불시위에 시달렸던 이명박정부보다는 사정이 한결 나았다. 출범은 늦었지만 박근혜정부는 우파 정부의 시행착오를 미리 지켜볼 수 있었다는 이점을 누렸다. 아버지 후광을 배경으로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해 역대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정부를 이끌 수 있는 기반도 구축했다. 그런 이유에서 박근혜정부의 순항을 기대하거나 전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기대나 전망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불통 등의 비난을 받은 밀봉인사로 정부 출범이 늦어지는 바람에 정권 초 ‘밀월’의 이점도 살리지 못했다. 지지율마저 떨어졌다. 그나마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전쟁 협박에 비교적 침착하게 대처했고 또 미국 방문의 성과를 거둬 점수를 만회하나 했는데 유례가 없는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국민들을 ‘멘붕(멘털 붕괴)’에 빠뜨리고 말았다. 전격 경질된 장본인이 사실 관계가 다르다며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와 진실공방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예사롭지 않은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일 한·미 최고경영자 라운드테이블에서 댄 애커슨 GM 회장이 한국에 80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며 그 조건으로 통상임금 문제를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달라는 주문을 받고 박 대통령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고 한국 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꼭 풀어나가겠다”며 공감을 표명하자 노동계와 법조계 일각에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투자유치 과정에서 으레 있을 법한 ‘민원 토크콘서트’ 정도로 보아 넘길 수도 있었을 장면이 적지 않은 비판을 불러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대법원이 분기별로 지급되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통상임금에서 제외돼 받지 못했던 상여금 등의 반환을 요구하는 노조의 소송이 잇달았다. 한국GM 역시 1, 2심에서 패소해 수천억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할 위기에 처하자 ‘한국은 고비용 국가’라며 한국 시장 철수를 암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박 대통령 발언은 GM 투자의 무산을 우려하고 아울러 100건에 이르는 줄소송으로 한꺼번에 수십조원의 반환 비용을 부담하게 될 기업의 반발을 고려한 결과라고 좋게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행정부 수반이 사법부 판단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그 번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또는 그런 방향으로 입법조치를 추진하려는 것이 아닌지 비판이 이어진다. 박 대통령이 강조해왔던 법치주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헌법상 삼권분립에 반하는 부적절한 언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대법원 판결 취지를 따르자니 기업이 울고, 기업의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자니 노동계와 법조계가 반발한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통상임금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입법조치는 소급입법으로 위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지만, 사법부가 그 판결의 파급효과나 영향을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입법 차원의 해법을 배제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통상임금 문제는 근본적으로 시간외 초과근로 수당을 둘러싼 다툼이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을 엄수토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한 해법은 아니다. GM 등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대해 권력분립상 정부가 취할 조치에 한계가 있음을 납득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상임금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따라 박근혜정부가 많은 근로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위험을 인식하는 일이다.
현대국가, 특히 한국 정부가 직면하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온다. 그런 의문은 이를테면 가습기 살균제로 어린아이들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도 보상은커녕 정부 어느 부처도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미룰 때 생긴다.
유독물 사고로 사상자가 생겼을 때 기업 책임이라며 정부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설 때 그 의문은 ‘이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응답을 받는다. 윤창중 사건 못지않게 통상임금 딜레마도 박근혜정부에 던져진 또 다른 도전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나 전망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불통 등의 비난을 받은 밀봉인사로 정부 출범이 늦어지는 바람에 정권 초 ‘밀월’의 이점도 살리지 못했다. 지지율마저 떨어졌다. 그나마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전쟁 협박에 비교적 침착하게 대처했고 또 미국 방문의 성과를 거둬 점수를 만회하나 했는데 유례가 없는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국민들을 ‘멘붕(멘털 붕괴)’에 빠뜨리고 말았다. 전격 경질된 장본인이 사실 관계가 다르다며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와 진실공방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예사롭지 않은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일 한·미 최고경영자 라운드테이블에서 댄 애커슨 GM 회장이 한국에 80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며 그 조건으로 통상임금 문제를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달라는 주문을 받고 박 대통령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고 한국 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다. 꼭 풀어나가겠다”며 공감을 표명하자 노동계와 법조계 일각에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투자유치 과정에서 으레 있을 법한 ‘민원 토크콘서트’ 정도로 보아 넘길 수도 있었을 장면이 적지 않은 비판을 불러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대법원이 분기별로 지급되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통상임금에서 제외돼 받지 못했던 상여금 등의 반환을 요구하는 노조의 소송이 잇달았다. 한국GM 역시 1, 2심에서 패소해 수천억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할 위기에 처하자 ‘한국은 고비용 국가’라며 한국 시장 철수를 암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박 대통령 발언은 GM 투자의 무산을 우려하고 아울러 100건에 이르는 줄소송으로 한꺼번에 수십조원의 반환 비용을 부담하게 될 기업의 반발을 고려한 결과라고 좋게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행정부 수반이 사법부 판단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그 번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또는 그런 방향으로 입법조치를 추진하려는 것이 아닌지 비판이 이어진다. 박 대통령이 강조해왔던 법치주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헌법상 삼권분립에 반하는 부적절한 언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대법원 판결 취지를 따르자니 기업이 울고, 기업의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자니 노동계와 법조계가 반발한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통상임금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입법조치는 소급입법으로 위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지만, 사법부가 그 판결의 파급효과나 영향을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입법 차원의 해법을 배제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통상임금 문제는 근본적으로 시간외 초과근로 수당을 둘러싼 다툼이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을 엄수토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한 해법은 아니다. GM 등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대해 권력분립상 정부가 취할 조치에 한계가 있음을 납득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상임금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따라 박근혜정부가 많은 근로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위험을 인식하는 일이다.
현대국가, 특히 한국 정부가 직면하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온다. 그런 의문은 이를테면 가습기 살균제로 어린아이들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도 보상은커녕 정부 어느 부처도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미룰 때 생긴다.
유독물 사고로 사상자가 생겼을 때 기업 책임이라며 정부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설 때 그 의문은 ‘이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응답을 받는다. 윤창중 사건 못지않게 통상임금 딜레마도 박근혜정부에 던져진 또 다른 도전이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한국경제신문 2013년 5월12일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