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피해자에 대한 연구통한 환경정의, 생태정의 연구필요"
2013. 2. 14. 시민환경학술대회 기조강연
구조변화 시대 환경연구운동의 방향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
1. 리만 브라더스와 후쿠시마, 녹조라테와 가짜부품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리만 브라더스 사태로 이어진 2008년의 미국발 경제위기와 쓰나미에서 방사능 누출사태로 이어진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얼핏 보면 전혀 다른 두 사건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크게 보면 이 두 사건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개의 가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금융자본주의와 원자력발전은 과학기술의 무한한 발전과 자본의 무한한 확장이 축복일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시스템이다. 거대기술, 거대시장, 거대국가가 성장의 사회적 한계(계급갈등과 사회적 불평등)와 자연적 한계(자원고갈과 환경오염)를 넘어설 수 있다는 신념은 합리적이라기보다는 맹목적인 믿음이다. 이러한 맹목적 믿음 위에 서 있는 체제가 현대의 산업 패러다임이다. 리만 브라더스와 후쿠시마는 이 패러다임이 위험하다는 사이렌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공업생산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를 줄기차게 발전시켜왔다. 인류 혹은 자본가들은 더 빨리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해서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일에 집중해 왔다. 그런데 공업생산에만 집중해서는 이러한 체제를 확대하고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본은 사람들이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도록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을 담보로 또 돈을 빌려주는 금융 자본주의 시대를 열었다. 다른 한편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원과 시장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특히 미국은 핵전쟁을 통해 패권국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핵폭탄은 원전이라는 새 옷을 입게 되었다. 원전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이름 아래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위한 ‘값싼 에너지’라는 가면을 쓰고 인류와 자연을 볼모로 잡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지구 금융자본주의의 구조 속에 몸을 맡겨야 하고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한푼 두푼 용돈을 아끼는 동안 우리의 투표권이 미치지 않는 워싱턴, 브뤼셀, 서울에서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정책들이 결정되고 있다. ‘소비하라, 소비하라, 소비하라!’는 국가와 시장의 ‘호명’에 따라 전기를 쓰고 있을 뿐인데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전기를 쓸려면 원전에 반대하지 말라’는 우격다짐 앞에 기가 죽기도 한다. 왜 그럴까? ‘지구의 자원은 무한하고 환경은 언제나 회복가능하며 과학기술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산업-자본-과학에 대한 무한한 낙관론이 현대를 지배하고 우리의 사고와 삶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자본은 한편으로는 ‘경쟁에서 지면 죽는다’고 위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성장은 계속된다’고 달래며 공업과 시장과 국가를 찬미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경제성장과 부분적 민주화를 통해 지금까지 어느 정도 지탱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 경제위기와 2011년 후쿠시마 재난 그리고 2012년의 유럽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과연 과학기술 낙관론에 바탕을 둔 산업-자본-국가 체제가 지탱가능한가, 언제까지 지탱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리만 브라더스와 후쿠시마는 공업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체제 즉 산업 패러다임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다.
신자유주의와 과학기술낙관론이 상처를 받았지만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2012년 지금, 한반도 남쪽에서는 ‘녹조라테’가 한강과 낙동강을 덥치고, 금강에서는 물고기들이 배를 드러내고 물위로 떠오르고 있다. 생태계의 약한 고리에서부터 죽음의 신호가 세차게 울리고 있다. 후쿠시마 재난 이후 주춤했던 원전추진세력들은 다시 힘을 모아 삼척과 영덕을 신규원전부지로 지정고시했다. 그러나 경보음은 이곳저곳에서 심하게 울리고 있다. 원전 직원들이 마약을 복용하고, 비상발전기 고장을 은폐하고, 심지어 200여개 품목에 7000여개의 가짜부품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금강의 물고기와 원전의 가짜부품은 개발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산업발전 모델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경보음이다. 말 못하는 생명이 죽음의 언어로 살려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리만 브라더스와 후쿠시마, 그리고 녹조라테와 가짜부품의 책임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개인적 실수와 부패 혹은 자연재해(지진 혹은 기후변화)로 돌리고 더 많은 달러, 더 많은 물공급, 임시방편의 대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기존 시스템의 복잡한 틀에 더 복잡한 요소를 투입하여 시스템의 유지를 기획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자본-기술-국가 시스템이 미래에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금강의 물고기와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2. 복합위기에 대한 사회적 대응: 세 가지 길
현대의 위기는 경제위기와 생태위기가 우연적인 계기에 사건이나 재난의 형태로 나타나고 이런 국면적 상황 속에서 사회적 위기, 즉 삶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힘든 위기상황으로 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하면 경제, 생태, 사회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지구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며 지구 전체의 시스템과 삶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 위기의 모습을 띤다. 석유가격 상승으로 인해 대량의 옥수수를 에탄올 생산에 사용하고 이 때문에 오른 식량가격이 사회위기를 불러 일으키고 다시 이것이 제3세계 국가들의 지배체제를 위협하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산업-자본-국가의 동맹을 강화해서 기존의 경제성장 전략으로 계급갈등을 완화하고 사후처리적 환경정책과 자본축적에 유리한 환경친화적 기술과 산업투자를 통해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이를 보수적 개발국가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다. 둘째는 산업-노동/시민-국가 동맹을 구축하여 민주주의 발전을 통해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를 확장하여 계급타협을 이루면서 산업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국민국가의 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이는 민주적 개발국가 모델이라 부를 수 있다.
이 두 전략은 산업 발전에 바탕을 두고 자본주의적 교환체계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 두 모델이 구조변화의 시대에 사람들의 삶을 평화롭고 편안하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두 모델은 한편으로는 지탱하기 어렵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 정당성이 부족하다. 우선 앞에서 보았듯이 이 두 모델을 지탱하는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이 경제 체계(과잉생산과 자원고갈), 사회체계(사회적 갈등과 양극화), 생태체계(기후변화 등 수용력 한계)의 재생산 위기 때문에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석유고갈과 기후변화는 난민의 증가, 실패국가의 확산, 지구경제 시스템의 위기와 같은 구조적인 위기로 전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구 전체의 생태적, 사회적 한계 즉 산업문명 체제의 위기가 구조화되어 있는데 개별국가가 옛 패러다임에 바탕을 둔 국가/발전 모델로 그 위기를 헤쳐 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둘째로 두 모델은 강한 인류중심주의 인식론에 바탕을 두고 자연을 이용과 착취의 대상으로만 파악할 뿐만 아니라 자국 이외의 국가를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면서 군사력(폭력)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정당성이 부족하다.
성장의 사회적, 자연적, 경제적 한계로 인해 지구 전체의 성장 엔진이 식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나 복지국가의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이것은 지탱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생태사회위기에 대한 세 번째 길은 생태-시민-자치의 모델이다. 이는 생태적 시민성을 가진 시민이 중심이 되어 산업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자치의 연합 혹은 연방을 만들어가는 전략이다. 이것은 생태민주적 자치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앞의 두 전략이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다른 국가를 잠재적 적으로 상정하고 폭력을 독점하며 자연을 이용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생태민주적 자치 모델은 코스모폴리탄 생태 민주주의 방향으로 국가를 전환시키고 영구적 지구평화체제를 만들어나간다. 이 전략은 한편으로 개발국가, 전쟁국가, 토건국가를 생태평화국가로 전환하면서 동시에 생태적 대안운동을 통해 생태적 공동체, 협동의 공동체, 생태민주적 어소시에션을 발전시켜 생태민주적 자치의 공동체/어소시에이션을 확장시킨다. 이 모델의 주체는 생태 시티즌십 즉 시민적 권리와 생태계에 대한 책임을 함께 인식하고 실천하는 시민이다. 이 시민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국가의 정책을 전환하기 위해 국회, 언론, 거리에서 싸우고 설득하고 또 어떤 이들은 도시와 농어촌에서 생명과 협동의 대안 경제와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위로부터의 억압적 국가기구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풀뿌리들이 공동체와 어소시에이션을 만들고 이들의 연합을 일상적으로 확산시켜 나간다.
여기에서 경제체제는 화폐교환경제-공동체호혜경제-재분배경제가 균형을 이루며 함께 발전한다. 시장(market)은 있지만 자본축적을 목표로 하는 화폐교환 경제가 중심에 있는 것은 아니다. 1인1표의 민주적 거버넌스가 지배하고, 생명의 경제가 숨쉬는 협동경제, 혹은 호혜경제가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국가 복지, 즉 재분배 경제는 공동체 복지의 안전판 역할을 하며 공동체 호혜경제를 북돋아주며 화폐경제의 활력을 지원한다. 화폐교환-공동체교환-재분배 경제의 복합 경제에서 시장-공동체-국가는 서로를 지원하며 생태계에 바탕을 둔 경제와 사회를 발전시킨다. 여기에서 국가는 생태민주적 어소시에이션들의 자치를 조정, 지원, 관리하는 공동위원회가 된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정치체제와 문화는 생태민주주의다. 생태민주주의는 현세대 인류만을 위한 다수결 정치가 아니라 미래세대와 인간 이외의 생명과 자연이 지구의 주인으로 초대되고 이들의 대리인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다. 이러한 세상은 좁은 인류중심의 이성을 넘어 생태적 감수성과 합리성, 그리고 우주적인 영성을 키우는 사람들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될 것이다. 복합위기와 전쟁의 위험이 커지더라도 이런 생명과 협동의 공동체 연합이 있으면 함께 어려움을 헤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3. 생태, 민주, 자치를 위한 환경연구운동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가치와 운동방법을 발전시키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산업-자본-국가 시스템이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동안 환경, 생명운동가들은 적은 돈과 사람으로 힘겹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자본의 신자유주의화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이 운동들이 체계의 변화와 균열을 일으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발전을 위한 연구운동은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공해문제연구소는 연구소의 이름으로 반공해운동을 주도했고, 시민환경연구소는 시민이 중심이 되어 전문적인 환경연구역량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환경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이후 모심과살림연구소, 생태지평연구소,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에너지기후연구소, 시민환경보건센터 등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연구를 해왔다. 학계에서도 환경사회학회, 대한하천학회, 새만금생명학회 등이 만들어져서 환경과 생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연구를 발전시켜왔다.
<span lang="EN-US" 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