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두 ‘말’과 원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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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두 ‘말’과 원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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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5년 1월20일 정기칼럼

 

지난주 <한겨레> 토요판 특집은 정윤회씨 딸의 ‘승마’ 이야기였다.

 

그 기사를 읽고 나니, 오늘날 이 나라 국민의 처지가 저 ‘말’보다 못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윤회씨의 딸이 승마대회에서 우승을 놓치자 곧장 경찰이 달려들어 해당 심판들을 조사했고, 대통령은 장관을 불러놓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는 두 명의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을 직접 거명하여 끝내 경질되게 만들었다는 만기친람의 이야기. 삼성, 한화, 재벌가의 후계자들이 두루 말을 타고, 승마협회에 총수의 사법처리 문제가 걸린 재벌들이 줄을 대려고 한다는 이야기까지, 로열패밀리들의 말(馬) 이야기였다.

 

 

그 왕가의 환관을 자처하는, 이른바 ‘십상시’의 한 명이라는 청와대 행정관이 술에 취해 여당 대표와 중진 국회의원을 문건 유출 사태의 배후로 지목하고, 그걸 ‘내가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했단다. 그 말(言)을 들은 정치지망생은 잽싸게 여당 대표에게 이르고, 대표는 ‘청와대 조무래기들’이라고 불같이 화를 내지만 별 조치가 없었는데, 사진기자들의 망원렌즈가 찰칵찰칵 돌아가는 바로 아래 자리에서 메모가 적힌 수첩을 펼쳐 보이고 나서부터 억울함을 조금 풀 수 있었다.

 

이건 그 왕가 내부에서 환관과 대신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말(言)의 이야기다.

 

대통령을 ‘언니’로 부른다는 여인의 딸이 몇억짜리 말(馬)을 타든 나는 관심도 없다. 술자리에서 환관이 대신을 까고 품평을 하든, 그 말(言)을 누가 잽싸게 옮기고 치고받고 싸우든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나라가 봉건제 왕가와 다름없고, 우리가 국민이 아니라 신민에 불과하다면,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쥐락펴락하는 그들 몇사람은 자신들이 수많은 이들의 실제 목숨을 다루고 있다는 실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 중차대한 공적 현안들을 모두 꿰뚫고 있어야 하며, 모든 사안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철인’(哲人)이 될 의무가 있다. 오직 그 사실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이를테면 나는 지금 30년간 가동 끝에 다시 10년을 연장가동하겠다고 심사를 받고 있는 월성원전 1호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월성 1호기는 한수원이 연장가동을 전제로 미리 5600억원의 돈을 들여 수리해 놓고는, ‘이걸 허공에 날릴 셈이냐’고 치사한 협박을 하고 있지만, 가동하면 할수록 손해가 난다는 사실도 이미 밝혀졌다.

 

그런 경제성 논리는 차치하고라도 이 원전에서는 이미 엄청난 사고가 났다.

 

2009년 3월 월성 1호기 폐연료봉 교체 과정에서 다발 이음매가 파손되어 2개는 물로 빠지고, 하나는 콘크리트 바닥에 추락하는 사고가 났다. 이 연료봉에서는 계측한도를 넘는 1만m㏜(밀리시버트) 이상의 방사능이 누출되었고, 10시간42분간 고방사선 경보가 지속되었는데도 주재관은 이를 몰랐다. 어떻게 수습을 할 수가 없으니 작업원 1명을 직접 방출실로 들여보내 치사량의 방사선을 내뿜는 폐연료봉을 집게로 직접 처리하게 했다. 한수원은 이 사고를 은폐했지만, 4년 뒤 원전 비리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그 작업원이 ‘실은 내가 이런 일을 했고, 몸이 아프다’고 진술하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월성 1호기 가동 연장 건은 아마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에서 표결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이 나라에서 이 결정을 뒤집을 힘을 가진 유일한 세력인 ‘문고리와 십상시’들은 월성 1호기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을까. 30년간 가동되었고, 이미 수없이 크고 작은 사고를 낸 원전을 10년간 연장가동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말놀음’에 빠져 있는 그들은 알고 있을까. 지금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렇게 욕될 수가 있을까.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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