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6780과 1550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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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6780과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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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6780과 1550

최예용 프란치스코(환경보건학자)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5월31일자 (1566호)


매주 월요일 아침, 출근길 전철 안에서 하는 일이 있다. 이전 금요일까지 정부에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 현황을 관계 정부기관 홈페이지에 들러 확인하는 일이다. 5월 22일까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살균제피해지원센터에 신고된 피해자는 모두 6780명이고 이중 사망자는 1550명이다. 사망자 비율이 23%나 된다. 

2016년 5~6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의제로 떠올라 모든 언론이 앞다투어 이 문제를 다루었던 두 달간 신고자가 2000명을 넘었었다. 이후로 크게 줄었지만 신고는 꾸준히 접수되는데 올해엔 한 달에 20~30명씩 늘어나는 추세다. 

신고할만한 사람은 거의 다했고 이제 조금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8년간 20여 종류 998만 개의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돼 500만 명이 넘는 소비자가 살균제에 노출됐다. 사용자의 10%가량인 50만 명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니까 신고된 숫자는 전체 피해의 1~2%에 불과한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처음 알려진 2011년 8월 31일 직후부터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피해 신청을 받았다. 3주간 영아 사망 5건, 영아 환자 1건, 산모 사망 1건 그리고 산모 환자 1건 등 모두 8건이 접수됐다. 이후 한 달 동안 50건이 접수됐고 그해 말까지 200여 건이 접수됐다. 그리고 8년이 지나 지금의 신고자 6780명과 사망자 1550명이 됐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단 하나의 희생자를 불쌍히 여기지만 희생자가 늘어날수록 무덤덤해진다”는 말도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지난 8년여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 나름 애쓰면서 피해자 신고 숫자를 자주 접해온 나에게 어느덧 이들 신고자와 사망자 숫자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다가오지 않고 단순한 통계 수치로만 여겨지는 건 아닌지 곰곰 생각하며 임시 일터인 서울 명동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로 향한다. 

한국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10명을 넘느냐 아니냐 하는 게 관심이다. 그런데 미국은 확진자가 하루에 1만 명이 넘고 사망자가 1000명이 넘는단다. 그 숫자들이 도무지 무얼 뜻하는지 알 길이 없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규모도 마찬가지의 무감각 마비 증상이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나 싶다. 

올해 우리 사회는 40년 전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72년 전 제주 4ㆍ3사건 같은 ‘역사적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를 찾아내는 일을 해왔다.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쓰라린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두 사건 모두 기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해 오열하는 유족을 안아주고 슬픔을 달래줬다.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사회적 참사’라고 부른다. 세월호 참사는 왜 배가 그토록 쉽게 침몰했고 왜 수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진상 규명 과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SK, 롯데, 삼성 그리고 영국의 레킷벤키저와 테스코, 독일의 헨켈 등 국내외 굴지의 회사들이 앞다투어 제품을 만들어 팔면서 왜 소비자 안전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는지, 제품이 판매된 18년간 정부는 도대체 무얼 했는지 두 가지가 진상 규명돼야 할 핵심내용이다. 

두 참사 모두 과거 정부의 대통령실이 연루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두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와 피해자 그리고 사망자가 모두 몇 명인지 누구인지 확인하고 찾아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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