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아시아에서의 석면추방과 한국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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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13:47
석면추방운동은 환경 문제다
[함께 사는 길] 아시아에서의 석면 추방과 한국의 역할
최예용 환경보건학 박사
2020년 1월 16일자 프레시안
요즘 세계 언론과 시민사회가 근심하며 주목하는 곳이 홍콩이다. 중국의 산업화와 세계화는 이미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며 어깨를 겨루는 수준이 되었고, 중국의 민주화는 작금 벌어지는 홍콩의 사태가 하나의 척도처럼 여겨진다. 이 글을 쓰는 오늘 2019년 11월 19일 자 한국의 조간신문 1면에 실린 사진은 뿌연 최루탄 속에서 홍콩 경찰이 곤봉을 휘두르고 있고 젊은 시위대 한 명이 저항하지 않으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다.
이 사진을 본 많은 한국 사람들은 1980년 광주의 그때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홍콩 젊은이들의 안위와 그들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와같이 홍콩에도 민주화가 오길 바라는 마음과 더불어 중국이라는 짙은 그림자 때문에 한국에서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마음이 교차된다.
아시아 석면 추방 운동의 시작
이 글을 시작하면서 홍콩사태를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09년 4월 어느 날 홍콩에서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Asia Ban Asbestos Network)가 출범했다. 홍콩은 지리적으로도 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하지만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홍콩에서 활동하는 아시아모니터링센터(AMRC)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산업보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 피해자 및 전문가들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훈련과 네트워킹을 주관해오고 있다.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태국, 방글라데시, 중국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공단화재 사건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빈발하자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ANROEV, 이하 안로에브)를 만들어 아시아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대처하는 활동을 전개해 올해 20년째가 되었다. 석면 문제는 안로에브의 활동이 성과를 낸 대표적인 분야다. 석면 문제는 아시아 산업보건의 문제 중에서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이슈로 매해 안로에브의 단골 주제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에서 석면 문제가 주요 사회 의제화되면서 한국과 일본 간의 시민사회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과 한국의 주도로 석면 문제만을 다루는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ABAN)가 2009년 홍콩에서 발족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의 석면 추방과 한국의 역할에 대한 몇 가지 특징과 평가를 짚어보고자 한다. 무릇 평가란 제3자에 의해 객관적으로 진행되어야 제대로 된 것일 터이지만, 그렇지 못해 다음 내용들은 매우 주관적(?)이란 점을 밝힌다.
첫째, 2005~2010년에 한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석면추방운동이 아시아지역에서의 석면추방운동 조직화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다.
10년 전인 2009년 당시 전 세계 석면 원료 생산량과 소비량은 연간 200만 톤에 달했다. 1975년을 전후해 약 480만 톤으로 세계 석면 소비량이 최고치를 기록한 후, 1995년경까지 20여 년에 걸쳐 서유럽을 필두로 석면 사용금지 국가들이 줄을 이으면서 세계 석면 사용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1995년 이후 10년 넘도록 석면 사용량이 줄지 않고 200만 톤 수준을 유지했다. 석면 사용 금지 국가들이 하나 둘 늘어났지만 아시아 나라들의 석면 사용량이 전 세계의 70퍼센트에 달하며 증가한 탓이었다. 국제 석면추방운동가들에게 큰 위기의식이 일었다. 아시아가 문제다! 이러한 때 한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석면추방운동과 사회 의제화는 아시아에서의 석면 사용 증가라는 위기에 대응하는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라는 조직화로 나타났다. 이후 10년이 지난 2018년 전 세계 석면 소비량은 120만 톤으로 10여 년 전에 비해 거의 반타작으로 줄어들었다. 이는 아시아에서 증가 추세에 있던 석면 소비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석면 추방을 위한 아시아 연대
그러면 여기서 아시아 각 국가별로 석면 사용금지 정책의 도입현황을 살펴보자. 일본이 가장 먼저인 2006년에 사용을 금지했고, 이어 한국이 두 번째로 2009년부터 금지했다. 인도네시아 북쪽의 브르나이라는 작은 왕국도 진즉에 석면 사용을 금지했다고 한다. 이어 홍콩과 네팔 그리고 대만이 석면 사용을 금지했다(하지만 네팔과 대만의 경우 실제 석면이 완전히 사용금지된 것인지 부분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앞으로 언제까지 석면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계획을 발표한 나라들이 몇 있는데, 태평양 몇 섬나라들이 2017년까지, 라오스가 2020년까지 그리고 베트남이 2023년까지다. 태국이 2012년에 스리랑카가 2016년에 석면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했지만 곧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아시아의 석면 사용대국인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은 여전히 석면 사용량이 매우 많다.
아시아 국가들에서의 석면추방운동 조직화 현황을 살펴보면, 일본(BANJAN)이 1987년에 가장 먼저 시작했고, 홍콩은 1995년에 그리고 한국(BANKO)은 2008년에 조직되었다. 2009년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 출범 이후 10여 개 나라들에서 국가 단위의 석면추방운동 네트워크가 조직되어 왔는데, 2010년에 인도, 2012년에 태국, 2013년에 방글라데시, 2014년에 베트남, 그리고 2017년에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그리고 인도의 두 번째 조직체가 만들어졌다. 대개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의 연례대회를 아시아 나라들에서 돌아가면서 개최하면서 그걸 계기로 해당 국가의 석면 추방 네트워크가 결성되었다. 최근에 호주의 노동조합들이 인도차이나반도상의 국가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3국과 인도네시아의 석면 문제 해결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 각 나라들의 석면 추방운동이 얼마나 활발한지를 살펴보는 잣대가 하나 있는데 바로 석면 피해자들의 조직체 존재 여부다. 석면 피해는 악성중피종암, 석면폐암, 석면폐 등이 대표적인 질환으로 이들 질환이 발병한 노동자나 일반 시민들을 찾아내 병원에서 진단받게 하고 산업재해나 환경피해자로 인정받게 해 금전적으로 제도적으로 도와주는 과정에서 석면 피해자단체가 조직된다. 현재 아시아에서는 일본, 한국,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석면 피해자그룹이 활동 중이다. 홍콩과 대만에서는 산재피해자단체가 일부 석면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지난 10년간 아시아지역에서의 석면추방운동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꽤 많은 재원이 필요했는데 여기에 일본 오사카 인근의 석면 피해 핫스팟인 구보타쇼크 사건의 피해자들이 낸 기부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더불어 일본 석면추방네트워크의 책임자이자 아시아네트워크의 코디네이터인 후루야 수기오 씨의 헌신도 중요하게 기억되어야 할 기여다. 이에 비하면 한국 반코의 기여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공장 밖으로 나온 석면 노출 문제 제기
둘째, 산업보건 문제에서 환경 문제로의 인식과 실천의 확산이 아시아 석면 문제 해결에 나름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2008년 7월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BANKO, 이하 반코)가 결성되었는데, 일본과 홍콩에 이은 두 번째 국가 단위의 석면추방운동 조직체였다. 반코의 특징은 이전까지 석면 문제가 일부 석면 원료를 다루는 공장이나 광산 노동자들의 산업보건 문제로 다뤄진 데 반해, 일반 시민들이 일상적 생활환경 속에서 석면에 노출되어 석면질환이 나타나는 환경 문제로서 석면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이다.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숫자가 있는데 1994년 한국에서 첫 석면 산재피해 인정자가 나타난 이후 최근까지 겨우 250여 명의 노동자들만이 석면으로 인한 산업재해 피해자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2011년 1월부터 시행된 환경성 석면 피해자를 위한 특별법인 석면 피해구제법에 의해 2019년 10월 말까지 인정된 사례는 모두 3961건이나 된다. 이중 20퍼센트인 808명은 피해신청 당시 이미 사망한 사례들이다. 석면질환은 예후가 매우 나빠 발병 후 일찍 사망하는데 구제인정 당시 생존한 환자였지만 지금까지 사망한 사례가 650명이나 되어 전체 사망자는 1458명로 환경성 석면피해구제대상 10명 중 4명꼴로 사망한 셈이다.
한국 반코가 활발하게 제기한 환경 문제로서의 석면추방운동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주었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우 여러 차례의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 환경 문제로서 석면 문제가 집중적으로 사회 의제화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초반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옮겨간 석면 방직공장의 문제를 반코가 여러 차례 현지 조사를 통해 환경오염 현황과 석면 피해자를 발굴해 제기하고 인도네시아 시민사회와 네트워킹한 결과다.
또 반코가 사실상 한국에서 석면 사용이 금지되기 시작한 2007~2009년부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대개의 석면사용국가들에서의 석면 추방운동은 신규 석면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석면 사용금지는 석면추방운동이 목표로 하는 석면 피해 근절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후의 과제는 기존에 사용한 석면 건축물을 얼마나 안전하고 빠르게 제거하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반코가 주도하는 한국에서의 학교 석면의 안전철거캠페인은 매우 상징적이다. 서유럽이나 일본 등 석면 사용을 한국보다 먼저 중단한 나라들에서도 이러한 캠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석면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
이렇게 아시아지역에서 석면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이 나름 크다고 평가되지만 부족한 점과 앞으로 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첫째, 현재 120만 톤이나 되는 지구촌 석면 소비량을 빠른 시일 내에 제로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사회의 네트워킹이 더 활발해져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국 정부나 자치단체 차원의 석면 사용금지를 서둘러 끌어내야 한다.
둘째, 유엔 차원의 환경협약에서 석면의 수출입을 규제하는 조치를 만들어 내 국제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국가 간의 위해 물질 수출입 과정에서 사전에 교역대상 물질의 위해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토록하는 로테르담협약에 석면을 포함토록 하는 일이 그것이다.
셋째, WHO, UNEP, 아시아태평양환경보건센터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석면 질환자를 진단하고 석면 오염 실태를 조사하는 실질적인 석면 문제 해결의 프로그램을 추진토록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은 해외원조기금인 ODA를 적극 활용하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2020년 5월에 한국에서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가 열리는데 ADB는 현재 아시아 나라들이 석면 자재를 사용하는 건설프로젝트도 지원하고 있어 이를 중단토록 하는 방안이 시민사회 차원에서 논의중이다. 석면이 1급 발암물질이어서 대부분 선진국들은 자기네 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면서 개발도상국가들의 건설개발에서는 석면을 사용하는 것을 방관하거나 심지어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고 소위 국제사회의 잘못된 이중기준에 해당하는 일이다.
넷째, 급증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안전 문제는 한국만이 아닌 대부분 아시아국가의 공통된 사회문제다. 특히 한국의 경우 학교 등지에서의 석면 철거 현장이 많은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않고 안전장구도 사용하지 않은 채 석면에 노출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시간이 흐른 후에 석면질환이 발병되는 문제가 심각하다. 긴 잠복기에 제대로 된 의학적 진단이 어려운 석면 문제의 특징이 외국인 노동자 안전 문제에서 주의 깊게 다뤄져야 한다.
언어도 천차만별이고, 문화도 음식도 다르다. 사회경제적인 격차는 더욱 크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다. 생명과 안전도 하나다. 아시아공동체는 하나 된 석면추방운동을 통해 조금씩 이루어져 간다. 아시아석면추방운동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