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환경행정'
살충제 위험 제기로 현대 환경운동 촉발…레이철 카슨은 2년 뒤 유방암 사망
우리나라 4대강 공사, 시멘트공장·가습기소독제 건강피해에도 환경당국은 `침묵'
지금부터 50년 전인 1962년 9월27일 미국에서 책이 한권 출판됩니다. 제목은 '침묵의 봄'입니다. 디디티로 대표되는 살충제 농약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대중적으로 알린 책입니다. 미국 생태계의 상징이라는 흰머리수리의 알 껍질이 농약으로 얇아져 부화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이 책과 관련하여 유명합니다.
저자는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1907-1964)입니다. 후에 이 책의 저자는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에 꼽혔습니다. 이 책은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낀친 책', '환경학 교과서', '이 책이 출간된 날이 바로 현대 환경운동이 시작된 날'(엘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습니다.
김대중 정부시절 가장 오랫 동안 환경부 장관을 지낸 김명자씨는 "서구 환경의 역사에서 이 책의 출간은 환경을 이슈로 전폭적인 사회운동을 촉발시킨 결정타로 평가된다"라고 했습니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데 대해 디디티 같은 농약을 만들어 팔던 화학회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몬샌토, 어메리칸 시아나미드와 같은 대기업이 포함된 산업계는 농림부와 언론계를 등에 업고 이 책에 대해 엄청난 비난과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자격도 없는 히스테리에 가득한 여자가 법과 질서를 어지럽혔다’거나 ‘카슨의 말을 따르려면 우리는 청동기시대 이전의 암흑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곤충과 질병, 해충들이 지구를 덮어버릴 것이다’라는 비난이었습니다. 박사 학위도 없는 한 무명의 여성 작가가 감내해야 했던 말들이었지요.
그 중에서 특히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카슨의 잘못된 언동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 말라리아로 수백만 생명을 살릴 수 없게 됐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침묵의 봄>의 메시지는 디디티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이런 농약의 위험성을 널리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농약의 내성이 점점 강해져서 새로운 농약이 나와도 7년에서 10년이 지나면 내성 때문에 효과가 떨어져 더 강한 제품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침묵의 봄>의 메시지가 국제환경협약으로 가시화된 것이 북극곰에게서 피시비(PCB)가 검출된다는 이야기로 대표되는 잔류성유기화합물(POPs)의 국제적 통제를 위해 2001년 만들어진 스톡홀롬협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협약에서도 디디티는 말라리아 억제를 위해 적절한 대체물질이 나올 때까지 금지를 유보한다고 했습니다.
이 책은 미국 사회에 환경문제라는 화두를 던지고 환경오염을 관리하는 행정체계를 갖추도록 합니다. 1963년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환경문제를 다룰 자문위원회 구성하고, 1969년 미국 의회는 국가환경정책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암연구소는 디디티의 암유발 증거를 제시합니다.
1970년 마침내 환경보호청(EPA)이 세워지고, 살충제 단속과 음식 안전성 조사 업무가 기존 농무부에서 이 기관으로 이관됩니다. 1973년에는 멸종위기종보호법이 만들어지죠.
'핵 반대’, ‘고래를 보호하자’로 상징되는 1970~1980년대 서구 환경운동이 1962년 발간된 <침묵의 봄>에서 시작되었다고 평가하는 건,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과장된 아야기가 아닙니다. 환경운동을 상징하는 그린피스도 1970년에 활동을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북미 대륙과 유럽의 분위기는 지역마다 조금 달랐나 봅니다. 1970년대 미국 시민사회가 <침묵의 봄> 영향으로 농약문제, 석면문제 등을 중요시할 때 유럽 사회는 반핵운동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미국에서 중요하게 치는 '지구의 날'(4월22일) 행사를 유럽에서는 거의 기념하지 않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어떤 측면에서 녹색당으로 대표되는 환경정치가 활발한 유럽사회가 레이철 카슨의 메시지를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거라고 보여집니다.
우리나라는 1960~1970년대 동안 환경과 정치의 측면에서 중세시기나 마찬가지였죠. 박정희의 군화발 아래 공해라는 말도 못 꺼내고 민주주의는 억압당했으니까요.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고 싶다’는 말은 박정희 경제정책의 상징지역인 울산의 공업탑에 새겨져 있는 문장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온산병문제가 터지면서 한국 시민사회에 환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980년대 중·후반 당시 "새들이 울지 않던 그날, 봄은 침묵했고~"라고 시작하는 노래를 '환경의 날'과 같은 환경 행사장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불렀습니다.
그 노래의 제목이 ‘침묵의 봄’입니다. 안혜경이란 가수가 노래말을 쓰고 노래를 지어 직접 불렀습니다. ‘침묵의 봄’이 발간된 지 20년도 훨씬 넘는 1980년대 후반에야 한국 시민사회는 ‘침묵의 봄’식 사고와 행동을 하기 시작한 거죠.
지금 한국에서 레이철 카슨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이 딱 한 곳 있는데, 서울 중구의 한 건물 강당 명칭이 '레이첼 카슨 홀'입니다. 환경재단이 시민사회에 개방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우연이겠지만 작년 말 사망한 석면 피해자 고 이정림 선생의 영어 이름이 레이첼이었네요. 그는 30대말 석면암인 중피종에 걸렸는데 석면문제에 눈을 뜨고 한국이 석면공장을 공해수출한 인도네시아에 석면추방단체를 설립토록 지원하고 추운 겨울날 캐나다에 쫓아가서 석면광산 재가동을 하지 않도록 호소하는 등 온몸으로 생을 불태운 환경운동가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환경행정도 이러한 변화와 같이 흘러왔다고 봅니다. 1967년 보건사회부에 공해계가 설치된 후, 1980년 환경청, 1990년 환경처 그리고 1994년에야 환경부가 됩니다. 하지만 인원과 예산 면에서 덩치를 키워 온 한국의 환경행정이 ‘침묵의 봄’이 주는 메시지를 올곧게 반영해 왔을까요?
페놀사태 등 1990년대 환경문제가 지속적으로 터져나오면서 환경 부총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면 부정적입니다. 경제와 개발부처를 견제하기는커녕 ‘녹색성장’을 내세워 국토를 처참하게 짓밟은 정권의 4대강사업 나팔수 노릇을 하며 국무회의 자리에서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작금의 환경부 모습 아닙니까.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는데도 자신의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않고, 전국 10여개 시멘트공장 주민 90여명이 진폐증에 걸리고 수백명에게 폐질환이 나타났지만 아무런 피해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시멘트 주민피해는 바로 환경부가 진행한 조사인데도 말입니다.
2012년에 발효된 ‘환경보건법’ 19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업활동 등에서 생긴 환경 유해 인자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환경성 질환을 발생하게 한 자는 그 피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환경성 질환에 대한 배상 책임’ 조항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피해와 시멘트공장 주민피해는 명백한 환경성 질환입니다. 법도 있습니다. 조항도 있습니다. 자기네가 조사도 했습니다. 하지만 환경부는 적용을 하지 않습니다. 나몰라라 합니다. 그러면서 맨날 힘이 없네, 예산이 없네, 인원이 부족하네 그럽니다. 한 마디로 ‘침묵의 봄’ 메시지를 환경부 사람들은 ‘환경보건문제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사고지점에서 60㎞ 이상 떨어진 후쿠시마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 외곽의 산 ‘하나미야마’에는 온통 봄꽃이 만발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낀 채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침묵의 봄>이 발간된 지 50년이 되는 2012년 대한민국은 4대강사업으로 대표되는 정부정책에 의해 강이 죽어가고 있고(아니 죽이고 있고), ‘친환경’, ‘안전’라는 이름이 붙은 가습기살균제로 대표되는 생활제품에 의해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확인된 숫자만 53명이 죽고 125명이 폐질환에 걸려 신음하고 있으며, 시멘트공장으로 대표되는 산업시설에 의해 88명이 진폐증, 십여명의 폐암, 수백명의 만성폐쇄성폐질환환자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 기업들도, 시멘트공장들도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잔인한 ‘침묵의 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침묵의 봄>이 나온 2년 뒤 지은이 레이철 카슨은 세상을 떠납니다. 56살, 자신의 작품이 어떤 새로운 역사를 열어젖혔는지 짐작도 못한 채였습니다. 이 책을을 한창 집필하고 관련 조사를 진행하던 1960년 그는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여성 과학자 샌드라 스타인그래버는 최근 우리 말로 번역돼 나온 <먹고 마시고 숨쉬는 것들의 반란>에 '환경과 암에 대한 한 과학자의 개인적 조사’라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이 책에서 카슨의 마지막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로 지칠대로 지치고 욕지기가 나는 와중에도 그녀는 집필을 계속했다. <침묵의 봄>을 끝낸 카슨은 18개월 동안 생존했다. 화학물질 제조업계가 쏟아내는 조소와 욕설로 큰 소동을 겪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예술, 문학, 과학계의 온갖 상을 모두 휩쓸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카슨은 살아있는 동안 <침묵의 봄>을 완성하게 되어 안도하고 만족한다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암이 환경오염과 관련된 것이라고 믿고 이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죠. 지금은 유방암이 환경성 암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책으로 온몸으로 환경오염을 경고하고 활동한 그의 삶이 오늘 환경운동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이정림씨와 같은 제2, 제3의 레이철이 계속 나올 수 있는 밑거름 말입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