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환경의학자'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독성에 오염된 시대, 해독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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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환경의학자'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독성에 오염된 시대, 해독제는 무엇인가

최예용 0 1956

환경보건시민센터 창립멤버로서 현재까지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임종한 교수 관련 인터뷰 기사입니다. 

 

한겨레신문 2016년 11월5일자 

 

독성에 오염된 시대, 해독제는 무엇인가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환경의학자’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

“독성기전을 밝혀냈어요. 지금껏 피해보상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도 피해자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내 대표적 환경의학자인 임종한 인하대 교수에겐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이면서도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을 구제할 방법이 생겼다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인 듯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독성기전을 밝혀냈어요. 지금껏 피해보상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도 피해자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내 대표적 환경의학자인 임종한 인하대 교수에겐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이면서도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을 구제할 방법이 생겼다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인 듯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인터뷰 시간까지 20분이 남았다. 그를 만나기 전, 간단히 요기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불 켜진 중국집이 눈에 띄었다. 점심도 김밥으로 급히 때운 터라, 짜장면이나 먹고 들어갈까 싶어 급히 걸음을 옮기다가 간밤에 읽은 책이 생각나 멈칫했다. 

 

그의 책 <아이 몸에 독이 쌓이고 있다> 중에서 “짜장면을 먹으면 캐러멜색소와 화학조미료 때문에 갈증, 두통, 메스꺼움이 유발될 수 있다”고 한 대목이 떠올라 왠지 찜찜했다. 어쩔까? 이리저리 둘러보고 망설이는 사이 2~3분이 지나갔다. 이제 먹을 수 있는 건 편의점 컵라면이나 마요네즈 버무린 샌드위치 정도. 아스팔트 위에서 전투처럼 끼니를 때우는 도시 사람들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중국집에 허겁지겁 들어서며 급하게 짜장면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데, 앞 테이블에서 혼자 볶음밥을 주문하는 중년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내가 쭈뼛쭈뼛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혹시… 임 교수님 아니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가 껄껄 웃으며 앞자리를 권했다. 그도 저녁식사를 못 하고 왔다고 했다. 임종한(55) 교수는 인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로 환경독성보건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환경오염과 화학물질로 인한 질환을 연구하고 대안적인 공공보건정책을 제안하는 국내 대표적인 환경의학자다. 

 

“요즘 가습기 살균제 문제는 어떻게?”

 

짜장면을 먹으며 건네기엔 적절한 얘깃거리는 아니지 않나 싶어 말끝을 뭉개는데, 그가 고개를 번쩍 들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몸통을 찾았어요!”

 

“네?” 

 

“독성기전을 밝혀냈어요. 지금껏 피해보상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도 피해자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의학적 발견에 고무된 연구자의 표정은 아니었다.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이면서도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을 구제할 방법이 생겼다는 게 그에겐 훨씬 더 중요한 일인 듯했다. 캐러멜과 화학조미료 생각도 잠시 잊은 채 짜장면을 흡입하듯 먹어치우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와 나란히 한겨레신문사의 작은 회의실로 들어섰다. 

 

 

4억3천톤의 화학물질을 먹고 쓰고 바른다

 

-몸통을 찾았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물질이 우리 체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의학적으로 규명한 거죠. 지금까지는 중증 폐손상, 폐섬유화가 일어난 경우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라고 인정되었단 말입니다. 전체 피해신고자의 70%는 직접적 관련성이 불확실하다고 피해보상에서 배제되었어요.”

 

-폐섬유화 외에 어떤 피해들이 있는데요?

 

“산모가 사산이나 조산을 한 경우, 폐렴이 된 경우, 비염이나 천식으로 나타나는 경우, 간이나 신장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관절이나 피부질환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그렇게 광범하게 영향을 미친다고요?

 

“이게 살균제이기 때문에 흡입을 하면 세균만 죽이는 게 아니라 폐 안에 있는 세포들을 손상시키는데, 특히 면역세포, 탐식세포가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던 거예요. 공격을 받으면 이런 세포들은 ‘사이토카인'(cytokine)이란 염증 매개 물질을 뿜어낸다는 게 핵심이죠. 이게 폐로 가면 폐섬유화가 되고, 기관지로 가면 천식이 됩니다. 면역세포가 감소하면서 감염에 취약해지니까 폐렴도 생기고, 류머티즘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도 생기고, 염증이 간에 오면 간 손상, 신장에 오면 신장 손상이 일어나죠. 그러니까 큰 나무로 치면 줄기가 있고 잔가지들이 있는데, 사이토카인이 분비된다는 게 나무의 몸통에 해당하는 거예요. 그게 어느 줄기로 가느냐에 따라 다양한 질환이 나타나는 거죠.”

 

예과 2학년 다니던 평범한 대학생
‘닭장차’ 끌려가는 친구 구하다 잡혀가
3일 뒤 철원 전방부대에 강제징집
“한국 사회 어떤지 톡톡히 체험했다”
‘의사 역할을 잊지 않겠다’ 다짐

 

동료와 인천에 비영리 지역의원 설립
병원조차 들어가지 않는 동네에서
가난한 주민 보며 여러 질환에 눈떠
환경의학 전문의로 변신하게 돼
국내 최초 고엽제 피해자 진단도

 

-이런 사실이 이번에 처음 밝혀진 건가요? 해외에서도 보고된 적이 없어요?

 

“그렇죠. 이렇게 고농도로 살균제 독성물질을 흡입한 경우가 우리 말곤 없잖아요. 다른 나라는 이런 식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쓴 적이 없으니까.” 

 

-지금까지 신고된 피해자만 해도 5천명이 넘는데, 그럼 아직 집계되지 못한 피해자들이 상당할 거란 얘기네요. 

 

“지난 몇 달간 환경독성보건학회랑 환경보건학회 전문가들이 건강보험공단의 의료기록을 가지고 가습기 살균제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는 연구를 했어요. 가습기 살균제로 이런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걸 임상적으로도 확인했고요. 2000년부터 2014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폐렴 사망률이 모두 감소했어요. 근데 우리나라만 유독 상향 곡선을 그린단 말입니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집중되었던 2010년, 2011년에는 영아 사망률이 불쑥 높아졌다 내려옵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되는 대목이네요.

 

“그 기간 동안 폐렴 사망자가 7만명인데 그 가운데 2만명은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이라고 추정됩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렴 사망자만 2만명이라면, 한 차례 폐렴을 앓았던 사람이나 천식, 관절염, 피부질환, 간이나 신장 이상 등으로 독성물질의 피해를 입은 사람까지 다 합치면 대체 얼마나 될까? 알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얼마나 치명적인 독극물을 접촉하며 살고 있을까? 

 

“한번 몸속에 들어온 독성물질은 뇌와 간, 뼈와 근육, 정액과 모유에까지 쌓여 신체를 오염시킨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10만여종에 이르고 한국에서 현재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4만7천여종, 4억3250톤에 이른다.”(<아이 몸에 독이 쌓이고 있다> 11~12쪽) 

 

“국가에 맡겨놓는 것만으론 부족해요. 의료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해요.” 임종한 교수는 지역 주민들이 전문가와 대등하게 대화하고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구현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의료협동조합운동의 의미를 강조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국가에 맡겨놓는 것만으론 부족해요. 의료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해요.” 임종한 교수는 지역 주민들이 전문가와 대등하게 대화하고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구현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의료협동조합운동의 의미를 강조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대한민국이 아프다

 

-해마다 400여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쏟아져 나온다는데 이걸 일일이 규제·관리할 방법이 있나요?

 

“유럽은 모든 화학물질을 등록하고 유해성을 평가하도록 하는 리치(REACH)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요. 이른바 ‘노 데이터(data), 노 마켓(market)’ 원칙인데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기업에서 독성을 평가하고 그 ‘정보’를 등록해야만, ‘시장’에서 팔 수 있단 겁니다.”

 

-아, 그러니까 ‘그 물질에 독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기업이 책임지고 증명해라. 그러지 않으면 상품화하지 못한다’는 얘긴가요?

 

“그렇죠. 기업책임주의이고, 정부는 기업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하는 역할을 하죠.”

 

-그럼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왜 못하죠?

 

“우리나라 관리정책에는 사각지대가 너무 많아요. 화학물질의 용도가 달라지면 그에 맞게 독성검사를 따로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터진 거예요. 가습기 세척제를 가습기 살균제로 바꿨으면 용도가 달라진 거니까 흡입독성 실험을 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안 한 거죠. 유통량이 1톤 미만인 경우는 양이 적다고 면제가 되기도 하고요. 유독물질로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영업기밀이라고 성분을 다 공개하지 않아도 돼요.”

 

한국에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 등록도 부실하고 기업은 여전히 ‘규제 반대’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미세먼지를 흡입하고 오염된 상수원의 물을 마시며 인스턴트 음식으로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고 사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값싼 효율을 위해서, 내 생명의 안전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걸. 살아남기 위해서 우린 끊임없이 나와 남의 생명을 저당 잡혀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결핵 발생률 1위, 대장암 발병률 1위, 간암 사망률 1위, 거기에 산재 사망률 1위, 자살률 1위까지, 대한민국은 몸도 마음도 아픈 나라다. 

 

‘너는 공장에 가라, 나는 병원을 열게’

 

임종한은 환경의학자다. 치료보다는 예방에, 영리보다는 공공보건에 역점을 둔다. 1961년 2대 독자로 대구에서 출생해서 서울에서 초중고를 다니고 1980년 연세대 의예과에 입학했다.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그냥 공부 잘하니까 의대 간 거예요?

 

“전 원래 물리학을 전공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다가 고3 때 엔리코 페르미(1901~1954)라는 핵물리학자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는데, 원자로 설계의 핵심기술을 가진 물리학자였죠. 이 사람이 2차 대전 때 핵폭탄 만드는 데 기여를 했는데 그것이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는 데 쓰이는 걸 목격하고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대요. 이후로 원자폭탄 반대운동도 했지만 말년까지 몹시 괴로워하다가 결국 사고사로 죽었죠. 과학을 단순히 지적인 관심으로 접근하면 어떤 비극을 불러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였어요. 과학을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의학으로 진로를 바꿨어요.”

 

-그런 순수한 열망을 갖고 시작하더라도 일단 의대 들어가고 나면 뭘 전공해야 고생 덜 하고 어디로 가야 돈 더 벌까에 골몰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환경의학에 뜻을 둔 건 무슨 이유죠?

 

“처음엔 환경의학이 아니라 가정의학과 출신이었어요. 지역사회에서 주민들 주치의 역할을 하고 싶었거든요.”

 

-의대 다닐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고요? 운동권이었나요?(웃음)

 

“그걸 얘기하자면 긴데… (잠시 망설이다가) 제가 예과 2학년 때 학내에서 큰 시위가 있었는데 전 뭐 운동권도 아니고 평범한 대학생이었어요. 근데 바로 제 코앞에서 과 친구가 시위를 하다가 닭장차(전경차)에 끌려가는 거예요. 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쫓아가서 그 친구를 구했죠. 근데 그 친구는 도망가고 덩치 큰 저는 잡힌 거예요.(웃음) 그래서 서대문서로 갔어요.”

 

-저런…. 

 

“저는 별달리 한 게 없기 때문에 며칠 있으면 금방 훈방될 줄 알았어요. 한 3일 지나고서 버스를 타라 하더라고요. 학교가 코앞인데 뭘 친절하게 버스까지 태워주나(웃음) 싶었는데 학교 앞을 지나쳐서 두 시간 반 정도 가더니 딱 세우는 거예요.”

 

-어디였어요?

 

“전방부대요. 철원.”

 

-아, 강제징집되셨군요.

 

“‘녹화사업’(전두환 정권이 강제징집된 대학생을 대상으로 벌인 사상교육) 대상자가 된 거죠. 전 2대 독자라서 동사무소 방위로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함부로 전방부대로 데려올 수 있냐고 하니까, 안기부(국가정보원의 전신) 사람도 난감해하더니, ‘그럼 둘 중 하나를 택해라’ 하더라고요.”

 

-둘 중 하나라뇨?

 

“감옥에 가든가 전방부대로 가든가.(웃음) 방법이 없었죠. 군대 생활 내내 억세게 맞았어요.”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갑자기 군대 끌려가서 부모님도 무척 놀라셨겠어요.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는데 저 때문에 불이익을 많이 당하셨죠. 승진도 막히고. 잡혀가는 과정에서 옷이 좀 찢어졌어요. 군대 들어가면서 그 찢어진 옷을 집으로 보냈는데 얼마나 상심이 크셨을지… 아무튼 그런 상황이 저한테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한국 사회가 어떻다는 것을 톡톡히 체험하고.”

 

-공부만 하던 얌전한 대학생을 안기부가 ‘의식화’시켰네요.(웃음) 

 

“복학하고 나선 운동권 친구들이랑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노동현장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의사라는 기득권 사회 속에 매몰되어서 생각이 바뀌는 선배들을 워낙 많이 봤으니까요. 그때 저는 명확히 금을 그었어요. ‘너는 노동현장에 가지만 나는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의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잊지 않겠다’고 그 친구한테 약속을 했어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그때 한 약속을 생각해요.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도 편한 길 선택하고 별반 다르지 않은 의사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조금 더 환자를 위한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성찰하는 기회를 준 것 같아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해요.”

 

일본 의료협동조합 둘러본 뒤
주민 참여 이사회 꾸려 재발족
과잉진료 않고 항생제 남용 방지
“단지 비용 아닌 삶의 질 문제
공동체 결속이 질병 예방 버팀목”

 

“(가습기 사건) 몸통을 찾아냈어요”
가습제 살균제 독성물질이 
체내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혀
직접 관련성 없다며 배제된 사람들
“집계 안된 피해자 상당히 많을 것” 

 

지난달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임종한 교수가 이진순(오른쪽)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달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임종한 교수가 이진순(오른쪽)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의료협동조합에서 답을 찾다

 

임종한은 약속을 잊지 않았다. 1990년 3월 기독청년의료인회 동료들과 뜻을 모아 인천시 부개동에 ‘인천평화의원’을 개원했다. 의료의 공적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동료 40여명과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조성해서 물리치료사와 한의사까지 갖춘 비영리 지역의원을 설립한 것이다. 

 

-그게 부평공단 근처인가요?

 

“아뇨, 거기서도 좀 떨어져 있어요. 더 주변부 외곽이요. 공단 노동자들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이거나 노동능력을 상실한 사람들, 고령자, 남편한테 버림받은 여성들… 가난해서 병원조차 들어가지 않는 소외된 동네였죠.”

 

-그때는 환경의학 전문의도 아니실 때죠?

 

“그렇죠. 제가 환경의학에 대해 공부하겠다는 맘을 먹게 해준 것도 이 지역 주민들이에요. 새롭게 여러 가지 질환들을 알게 되었고 그런 피해를 막으려면 환경의학 전문의가 되어야겠구나 생각했죠.”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질환들이 있던가요?

 

“하루는, 어떤 남자분이 절 찾아오셨는데, 노동능력을 잃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불편한 분이었어요. ‘오래전부터 그러셨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젊어서는 힘도 좋고 일도 잘 했는데 월남전 다녀온 뒤부터 피부질환이 생기고 근력이 빠지고 각막도 둔해지고 힘이 없어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병이죠?

 

“내가 배운 교과서에도 없는 질환이었어요. 아, 이상하다 해서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알게 된 거죠. 그런 증상이 ‘고엽제 후유증’이란 걸.”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마구 살포한 고엽제의 독성물질로 인한 후유증. 국내 최초의 고엽제 진단이었다. 해외에서는 이미 역학조사가 다 끝나서 피해보상까지 이루어진 사항인데, 이런 정보를 당시 전두환, 노태우 정부가 꽉 틀어쥐고 차단하고 있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4만~5만명에 이르는 국내 고엽제 피해자는 큰 고통을 겪는데, 어떻게 단 한 번의 연구조사나 언론보도도 없었는지 개탄스러울 뿐이었다. 첫 고엽제 환자 발견을 계기로 이에 대한 여론이 확산되면서 고엽제 보상과 치료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의료 사각지대에 있던 달동네엔 환경 피해 사건이 유난히 많았다. 한 기업이 인천시 고잔동에 폐기물을 함부로 버리면서 피부질환과 종양으로 고생하는 주민들이 생겼는데 이것이 유리섬유 폐기물에 의한 환경질환이라고 밝혀낸 것도 임종한이었다. 그의 진단으로 ‘고잔동 유리섬유 사건’이 알려지며 무단 폐기물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인천평화의원은 ‘직업병상담소’를 꾸리고 직업병 예방교육과 상담에도 공을 들였다. 이런 활동들이 4~5년간 주민의 신뢰를 얻으면서 환자는 크게 늘어났지만, 그럴수록 병원은 점점 가난해졌다. 

 

-이때만 해도 의료보험 없는 사람들이 적잖았을 시기인데, 진료비는 어떻게 받으셨어요?

 

“못 받는 경우도 많았죠. 그랬으니까 병원이 유명해졌죠.(웃음)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평소 할머니가 수발을 드는 노부부가 있었어요. 할머니마저 앓아눕게 되니까 할아버지 건사도 못 하고 나란히 누워서 줄초상 나게 생긴 거예요. 방문진료 가서 보니 식사도 못 하고 청소도 못 하고 정말 상황이 말이 아니더라고요. 욕창 치료를 한다든가 약을 무료로 제공하는 건 저희가 할 테니 식사, 청소 이런 건 지역 주민들이 좀 나서달라고 했지요. 그 경험을 통해서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의료협동조합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죠.”

 

늘어나는 환자로 병원 일은 몇 배 바빠지는데 예산은 정해져 있고 실무자들도 지쳐서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병원 문을 닫아야 하나 고심하던 차에 일본의 의료협동조합 모델은 큰 영감을 주었다. 일본의 의료협동조합을 둘러보고 와서 임종한은 주민이 참여하는 이사회를 꾸리고 1996년 인천평화의원을 의료협동조합으로 재발족했다. 출자액은 만원부터 소규모로 받았다. 얼마를 출자하든 동등하게 한 표씩 행사할 수 있게 하고 지역 주민들이 직접 병원 운영이나 서비스에 참여하게 만든, 국내 최초의 도시형 의료협동조합이다. 2008년엔 사회적기업으로 등록하고 2013년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천만 노인, 100만 치매의 시대

 

-의료협동조합의 좋은 점이 뭐죠? 주민참여형 협동조합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우선, 과잉진료 같은 걸 하지 말자고 항생제 남용을 줄이기로 해서 시행하고 있고요. 민간병원에선 돈 벌려고 보혈주사니 뭐니 온갖 검증 안 된 주사약들을 파는데, 우린 그런 거 안 하기로 했죠. 그리고 지역 장애인이나 노인 같은 취약계층에 대한 돌봄서비스를 강화하고요. 그 외에 환자를 직접 찾아가는 왕진, 방문간호를 정착시킨 점들을 들 수 있어요.” 

 

-왜 그런 일을 주민들이 돈 내서 하죠? 정부 돈으로 공공의료기관을 더 많이 지어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실제로 우리 공공의료 수준은 무척 취약합니다. 공공병상이 전체 병상의 10% 수준이에요. 민간의료기관은 과잉진료로 각종 검사나 약품 처방을 늘리는 것으로 수익을 높이고 있어요.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가 12년 동안 의료비 상승률이 부동의 1위예요.” 

 

-우리가 1위 하는 것 많네요.(웃음)

 

“그래서 만성질환 예방이나 고령자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필요한데, 경기가 침체되면서 유럽의 국가복지도 대폭 후퇴해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건강격차가 늘고 있거든요. 국가에 맡겨놓는 것만으론 부족해요. 의료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가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해요.”

 

-그러니까 비용 때문인가요? 국가의 복지예산이 부족하니까?

 

“단순히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에 관한 거예요. 2026년이면 우리나라 65살 이상 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됩니다. 이 중 10%는 치매 발병 위험이 높아요. 그럼 1천만명이 노인, 100만명이 치매란 얘깁니다. 치매 한 명당 치료비가 1천만~2천만원이니 20조원이 들죠. 지금 당뇨환자가 전체의 8%인데 그때 되면 10%가 넘어요. 이분들을 다 돈 들여서 수용소 보내는 걸로 해결할 건가요? 제대로 식생활 관리해주고 운동하게 하고 지역 주민 간의 협력적 관계, 서로 지지해주는 관계만 잘 만들더라도 이런 발병률을 60%까지 줄일 수 있어요. 공동체적인 결속이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서도 중요한 버팀목이 되는 거죠.”

 

-의료협동조합 운동이 단순히 의료비용 절감을 위한 것은 아니란 말씀이군요. 

 

“지역 주민들이 전문가와 대등하게 대화하고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거 자체가 민주주의 구현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봐요. 우리 사회는 대통령 선거를 해서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화는 이뤘는데, 그렇게 뽑았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보면 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대의민주주의에 국한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참여하고 협동해서 힘을 가질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 시장권력에 맞설 수 있는 건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것 말곤 방법이 없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다’란 말이 있는데(웃음) 너무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바로잡히지 않고 계속 누적되는 상황이다 보니, 이런 불의한 탐욕을 계속 봐야 하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그런 몸과 마음의 어떤 스트레스로 인한 독성, 이걸 교수님은 어떻게 푸십니까? 

 

“세상에 부조리는 많고 그걸 바로잡는 건 굉장히 힘든데 그 상황에 압도되거나 쉽게 지치지 않을 방법은 뭘까, 저도 늘 생각하죠. 저는 호흡을 조금 더 길게 가지려고 노력해요. 모든 혁명의 역사가 조급한 변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혁명의 색깔이 퇴색되고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내 당대에 모든 걸 하려는 조급함을 버리고 최소한 우리의 미래 세대, 우리 딸, 아들들이 조금 더 자기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바람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소망으로, 작은 디딤돌 하나를 놓겠다는 마음만으로도 굉장히 견고한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사람들 사이에 신뢰를 회복하고 사회의 건강성이나 가치를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것, 그게 한국 사회가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갖지 못했던 부분을 채워나가는 과정 아닐까요?”

 

가장 소박하나 가장 혁명적인, 가장 느긋하나 가장 근원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유장한 호흡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아야 할 때, 우리 안의 신뢰와 협력은 누적된 마음의 독을 푸는, 가장 따뜻하고 효과적인 해독제가 될 것이다. 

 

녹취 심지연

 

▶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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