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억울한 환경성 석면질환 피해자 당신일 수도 있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홈 > 정보마당 >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환경보건시민센터 활동 언론보도

[한겨레] “억울한 환경성 석면질환 피해자 당신일 수도 있습니다”

최예용 0 4961
“억울한 환경성 석면질환 피해자 당신일 수도 있습니다”
한겨레신문 2015 8 26
18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상 앞에서 열린 전국석면피해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석면 피해자들의 고통을 표현하는 ‘퍼포먼스’(행위극)를 펼치고 있다. 퍼포먼스를 펼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 악성중피종·석면암·석면폐증 등 불치의 석면병 진단을 받은 석면 피해자들이다.
18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상 앞에서 열린 전국석면피해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석면 피해자들의 고통을 표현하는 ‘퍼포먼스’(행위극)를 펼치고 있다. 퍼포먼스를 펼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 악성중피종·석면암·석면폐증 등 불치의 석면병 진단을 받은 석면 피해자들이다.
 
거리에 나선 석면 피해자들
18일 정오께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상 앞.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 점점 달아오르는 광장에 사람들이 하나둘 널브러졌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와 전국석면피해자와가족협회가 함께 연 ‘전국석면피해자대회’ 참가자들이 석면 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려고 펼친 ‘퍼포먼스’(행위극)다.
 
환경 관련 집회에서 퍼포먼스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1급 발암물질인 석면 먼지가 쌓여 굳어버린 폐 그림이 그려진 조끼를 걸친 이들 상당수는 실제 석면 노출에 따른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이다. 이들의 퍼포먼스를 그저 퍼포먼스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주 한명꼴 사망에 질환·고통 같지만
직업성·환경성 지원금 격차 너무 커
 
석면폐증 2·3급도 완치는 불가인데
쥐꼬리 지원금마저 2년 준 뒤 중단
 
“등급별 차별 해소” 등 개선 목소리에
정부 “차등 지원이 되레 형평” 난색

 

“지난해에 폐암 선고를 받았는데, 검사를 하니 석면에서 온 폐암이라고 하더라고요.” 충남 홍성군 구항면 지정리에서 온 장래홍(58)씨가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농사를 짓는 장씨는 몇 년 전부터 가끔 왼쪽 가슴이 뜨끔거리는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렸을 적 어머니와 할머니가 집에서 물레를 돌려 실을 뽑았는데, 그것이 근처 석면 광산에서 캐낸 석면을 2차 가공하는 일이었어요.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거지요. 좀더 일찍 검사했으면 이렇게까지 안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대규모 석면 가공공장이 있던 부산시 연제구, 석면 광산이 있던 충남 홍성·청양·보령 등지에서 올라온 석면 피해자와 가족은 이날 한목소리로 석면 피해에 대한 관심과 지원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현행 석면 피해 구제는 직업성 노출이 원인으로 인정되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환경성 노출이 원인이 된 경우는 석면피해구제법에 따른 석면피해구제제도로 구제된다. 직업적으로 석면을 다룬 데 따른 발병이 환경 중 노출에 의한 발병보다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실은 반대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파악한 바로는 환경성 석면 질환자가 직업성 석면 질환자보다 8배가량 많다. 석면 질환에 대한 산재 인정이 너무 까다로워 직업성 석면 피해자까지도 환경성 피해자 지원을 위한 석면피해구제제도로 몰리기 때문이다.
 
환경성 석면 피해는 직업성 석면 피해보다 쉽게 인정된다. 하지만 지원 규모가 직업성 석면 피해의 10~30%에 불과하다. 보건환경단체들이 “산업계와 정부가 노동자들의 석면 피해를 정당하게 산재로 처리하지 않고 값싼 환경성 피해구제제도로 처리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유다.

석면피해자대회에 참석한 피해자들과 환경단체들은 현행 석면 피해 대응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로 직업성 산재와 환경성 구제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점을 꼽았다. 악성중피종이나 폐암은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되면 치료비 지원 외에 연간 1130여만원의 요양생활수당을 받는다. 반면 산재로 인정되면 1억4740여만원의 일시금과 해마다 3290만여원의 연금(하루 평균임금 10만원 기준)이 장해급여로 지원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산재와 구제의 급여 수준이 거꾸로 된 상태”라며 “아무 이해관계도 없이, 석면 함유 슬레이트와 같이 정부가 쓰라고 한 물건을 쓰다가 석면 질환에 걸린 피해자에 대한 급여 수준이 직업적으로 돈을 받고 일을 하다 석면 질환에 걸린 피해자에 대한 급여 수준보다 낮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석면피해자대회에 참석한 석면 피해자들은 정부가 질환의 정도에 따라 1~3등급으로 구분하는 석면폐증 환자 가운데 1등급 환자만 5년 단위로 재검사를 해 요양생활수당을 계속 지급하고, 2·3등급 환자한테는 2년간만 지급한 뒤 중단하는 것에 무엇보다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석면 먼지가 폐포에 쌓여 생기는 석면폐증은 환경성 석면피해구제제도가 시행된 2011년 이후 지난달까지 인정된 환경성 석면 질환 가운데 가장 많은 46%를 차지한다
 
홍성군 구항면 지정리 주민 김득호(58)씨는 2012년 9월 석면폐증 3급 진단을 받아 정부로부터 다달이 30만원가량의 요양생활수당을 지급받아 왔다. 많지는 않지만 조금만 일하면 숨이 차 농사일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김씨한테는 큰 보탬이 됐다. 이 돈은 이제 이번달을 끝으로 받을 수 없게 된다. 김씨는 “주변에서 석면폐증 2·3등급을 받은 분들이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돌아가시는 것도 많이 봤다. 석면 질환은 완치가 불가능해 2년 지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요양생활수당을 2년만 주고 끊어버리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반문했다.
 
요양생활수당을 줄 돈이 부족하지는 않다. 정부가 석면 피해 구제에 사용하는 재원은 석면을 제조·사용해온 산업계에서 내는 분담금과 정부 전입금 등으로 구성되는 석면피해구제기금이다. 이 기금은 피해자들한테 지급되는 지출액이 애초 예상보다 적어 현재 340억원가량 쌓여 있다.
 
돈이 있는데도 지급 규모를 확대하는 데 환경부는 부정적이다. 배철호 환경부 환경보건관리과장은 “기금에 여유가 있지만 여유가 있다고 막 쓸 수는 없다. 보험 형태인 산재와 피해 구제제도를 합치기는 어렵고, 석면폐증 1급과 2~3급을 같게 취급하면 오히려 형평성에 맞지 않는 문제가 있다. 우리의 환경성 석면 피해에 대한 구제 수준이 외국에 비해 후하다는 전문가들도 있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석면 피해자들은 계속 숨져가고 있다. 지난달까지 환경성 석면 피해자로 인정된 1149명 가운데 253명이 이미 숨졌다는 게 석면추방네트워크의 설명이다. 매주 1명꼴로 숨진 셈이다.
 
2012년 부친을 중피종으로 떠나보낸 뒤 중피종 환자와 가족들로 구성된 중피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해온 황동욱(44)씨는 “누구나 교통사고나 재해 등에 의해 후천적 장애인이 될 위험이 있는 것처럼, 곳곳에서 석면에 노출될 위험이 많은 현실을 고려하면 누구나 잠재적인 석면 환자일 수 있다”며 “국가가 국민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석면 환자 발생을 줄이고 환자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이미지 8.jpg

0 Comments
시민환경보건센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