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역학조사가 삼성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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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역학조사가 삼성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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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역학조사가 삼성을 쏘았다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가 산업재해로 인정받게 된 데에는 백도명 서울대 교수의 숨은 공이 있었다. 서울대 역학조사 책임자였던 백 교수는 삼성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원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고 황유미·이숙영 씨의 백혈병을 산재로 인정한 판결이 나오자 삼성은 즉각 ‘행정소송 참고자료’를 냈다. 삼성은 “이번 판결은 반도체 사업장의 근무 환경과 관련해 공인된 국가기관의 두 차례 역학조사 결과와 다른 내용이다.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하면 보조 참가인으로서 또다시 소명에 나서겠다”라고 밝혔다.

삼성이 언급한 국가기관의 조사는 2007년
근로복지공단이 의뢰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진행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역학조사와,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08년 국내 반도체 산업 종사자 20만명을 대상으로 림프조혈계 암 발병 위험에 대해 벌인 ‘건강실태 역학조사’를 말한다. 두 조사는 모두 백혈병과 작업 환경이 무관하다며 삼성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삼성이 언급하지 않은 역학조사가 또 하나 있다. 재판부가 산재 인정의 주요 근거로 삼은 2009년 서울대 역학조사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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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삼성전자·하이닉스·엠코코리아 반도체 3사는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반도체 사업장 위험성 평가 자문’(서울대 역학조사)을 의뢰했다. 서울대 팀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쓰는 감광제(PR) 벌크(액체용액) 40~50개 가운데 임의로 6개를 골라 성분을 분석했다. 그런데 샘플 6개 모두에서 발암물질인 벤젠(0.08~ 8.91ppm)이 나왔다. 발암물질을 쓴 적이 없다던 삼성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은 조사 결과였다. 게다가 각종 유기화합물질의 관리가 부실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삼성이 의뢰한 조사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 만큼, 이 보고서는 원고 쪽에 유리한 ‘증거’였다. 반면 조사를 의뢰한 삼성 처지에서는 공개되어서는 안 될 보고서였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
대학원장은 이 역학조사의 책임자였다. 원고 쪽 변호인단은 재판부를 통해 백 교수에게 보고서 전문 제출을 요청했다. 백 교수가 요청을 거부하면 그만이었다. 삼성은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보고서 제출을 반대했다. 원고와 피고 사이에 선 백 교수는, 보고서 전문을 재판부에 제출하는 쪽을 선택했다. 원고 쪽이 요청한 전문가 증인을 받아들여 법정 증언도 수락했다. 재판부가 증인 신청을 기각하면서 증언석에 앉지는 못했다.

삼성 백혈병 산재를 이끌어낸 숨은 주역인 백 교수를 판결 전날인 6월22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다음 날인 6월23일 산재 인정 판결을 들은 백 교수는 “산재 인정은 너무나 당연하다. 예방이나 관리 측면에서 산재 인정이 좀 더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법정에서 증인 채택이 기각되기는 했지만 법정 증언을 결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내가 주로 한 일 자체는 특별히 감출 일은 아니다. 감추기보다 오히려 논란이 되는 것들은 공개적으로 토론하든 점검을 하든 확인해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서 증인으로 나가려 했다. 증인으로 나가지 못한 대신 재판부에 의견서를 냈다.

의견서에는 어떤 내용을 담았나?

반도체 산업의 안전보건에 대한 문제 제기는 198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있었다. 각종 유기용제를 쓰는 1980년대식 제조 공정이 지금도 한국에서 유지되고 있다. 주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이뤄진 문제 제기와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국내외 역학조사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 특히 역학조사 용역을 회사가 발주했느냐, 독립적으로 진행한 조사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 부분을 지적했다.

2009년 역학조사 대상이 삼성전자·하이닉스·엠코코리아였는데 발암물질인 벤젠 검출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만 있었나?

삼성전자에서는 샘플로 뽑은 6개에서 모두 검출되었다. 하이닉스에서는 4개 샘플 가운데 1건에서 벤젠이 검출되었다. 엠코코리아는 제조 공정이 아닌 조립 공정이라서 벤젠 등이 검출되지 않았다.

삼성은 서울대 역학조사팀의 조사 결과를 부정하고 있다. 조사 방법에 오류가 있다며 여전히 벤젠을 쓰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삼성은 (벤젠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웃음). 반면 하이닉스는 나올 수도 있다는 반응이었다. 벤젠이 검출됐다는 의미는 관리의 문제에 해당한다. 사업주는 화학물질 또는 화학물질을 함유한 제제를 제조·수입·사용·운반·저장하고자 할 때에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Material Safety Data Sheet)를 작성해 근로자가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게시 또는 비치해야 한다. 벤젠이 검출됐다는 것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시행되는 이 MSDS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청업체 등이 제공한 MSDS도 무조건 믿을 게 아니라 의심하고 검증해봐야 한다는 취지에서 우리가 샘플 검사를 한 것이다. 반박을 하려면 삼성은 자체적으로 작성한 MSDS가 100% 신뢰가 가능하다는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감광제에서 MSDS에는 적시되지 않았던 에틸렌글리콜류 화합물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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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안희태
백도명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사회 인사 536명이 작년 12월 ‘삼성 백혈병’ 진상조사를 촉구했다.백도명 교수(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사회 인사 536명이 작년 12월 ‘삼성 백혈병’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안전보건 측면에서 본다면 재료가 뭔지 어떤 물질인지 파악해야 관리가 되는 것인데, 삼성은 그런 파악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삼성은 이 보고서 공개를 반대했다. 삼성이 보고서와 관련해 정보 삭제를 요청했다던데?

자문 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쓰는 개별 화학물질이 83종인데 작업 환경 측정이 이뤄지는 것은 24종뿐이고 10종은 기밀이라며 성분 조사도 안 됐다고 지적했다.

삼성과 계약을 맺을 때 기업 비밀에 대한 문구가 있었다. 이를 근거로 삼성이 기업 비밀을 준수해달라는 공문을 지난해 내게 두 번이나 보냈다.

삼성이 전자메일로 보냈나? 공문으로 보냈나?

문서로 받았다. 보고서를 공개한다거나 해서 (기업 비밀 보장 약정) 계약 사항을 위반하면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반도체 공정의 특성상 제조 노하우 등 영업 비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물질을 쓰고 어떻게 관리되는지 등 안전보건과 관련한 정보는 영업 비밀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산업보건 전문의로서 반도체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나?

일반적으로 안전보건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피해를 당해본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어떤 과정에서 어떤 문제를 겪었는지 직접 경험을 공적인 장에서 같이 검토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경험이 공유되어 검토되고 논의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삼성 백혈병과 관련해서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삼성 백혈병을 보더라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에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전체 반도체 공정의 역학조사에 포함된 사람은 1995년 재직자부터이다. 그 이전에 근무한 사람들은 모두 빠져 있다. 또 백혈병 종사자의 건강 상태 비교 대상을 일반 국민으로 삼아 백혈병 등 발생 비율이 낮다고 결론을 냈다. 기업은 건강한 근로자를 기본적으로 채용하기에 일반 국민보다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 이른바 ‘건강 노동자 효과’가 발생해 사망 위험도가 낮아지는 만큼 일반 국민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런 역학조사의 한계 등을 누군가는 다시 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취지에서 국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 인터뷰에 응한 백도명 교수는 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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