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李 대통령 "가습기살균제는 '사회적 참사'"…국가가 손해배상
李 대통령 "가습기살균제는 '사회적 참사'"…국가가 손해배상
중앙일보 2025.12.24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이 지난해 8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국가범죄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을 위한 형사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참사’로 공식 규정하고, 기존의 피해구제체계를 국가 책임에 따른 배상체계로 전환하기로 했다. 치료비·위자료 등 배상액을 산정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사회적 참사로 명확히 하고, 피해를 온전히 배상하겠다”며 “많이 늦었다. 모든 피해자와 유가족들께 머리 숙여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정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제8회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을 확정했다. 김 총리는 “정부가 참사의 공동 책임자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이행하고자 한다”며 “오랜 세월 고통과 불안을 견뎌 내야 했던 약 6000명에 이르는 피해자와 가족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1994년부터 판매된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폐 손상 등을 일으킨 사건이다.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가 최초로 확인됐다. 지난해 6월에는 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국가 책임을 공식 인정했다.
손해배상 국가·기업 공동 부담…대통령 “피해 온전히 배상”

이번 대책의 핵심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개정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참사’로 명확히 규정하고, 국가 주도의 추모사업을 추진한다. 추후 피해자들과 협의를 통해 추모일을 지정하고, 공식 추모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아울러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인한 손해배상의 책임을 기업 단독에서 기업과 국가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그간 정부는 기업 책임 아래 신속한 피해자 구제에 집중해 왔으나 피해자·유가족분들의 눈높이에서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는 기업과 공동으로 피해자분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치료비와 일실이익(피해를 보지 않았을 경우 벌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돈), 위자료 등 배상액을 산정해 지급한다. 피해자는 ▶일시금 수령 방식 또는 ▶일부 금액을 먼저 수령한 후 치료비는 계속 수령하는 방식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을 기준으로 피해를 신청한 8035명 중 5942명이 피해를 인정 받았다.
정부는 배상체계 전환을 위해 기후부 소속 피해구제위원회를 국무총리 소속 배상심의위원회로 개편하기로 했다. 또한, 2021년 이후 중단됐던 정부 출연을 내년 100억 원을 시작으로 재개한다. 내후년 이후 출연금 규모는 피해자별 배상금 총액을 추계한 후에 결정할 계획이다. 이 밖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강화하기 위해 피해 발생 이후 30년인 ‘장기 소멸시효’도 폐지하기로 했다.
김 차장은 “배상체계로 전환을 위해서는 안정적 재원 확보가 필수적”이라며 “기업 분담금과 정부 출연금을 통해 재원을 조성하고 정부 책임 비중, 사업자 간 합리적 분담 방안 등을 고려해 분담 비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핵심은 국가의 배상 수준인데 내년 출연금 100억 원은 너무 작다”며 “2022년 무산된 피해 구제 조정위원회 1차 조정안의 총액이 9000억 원 이상인데, 국가 부담이 30%는 돼야 실질적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서울 종로구 SK 서린빌딩 앞에서 피해자 구제 및 배보상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뉴스1>
정부는 이밖에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교육권과 치료 여건을 보장하는 등 생애 전주기 지원 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학령기인 피해 청소년은 중·고등학교 진학 시 기존 추첨 방식 대신 주거지 인접학교를 희망할 경우 우선 배정할 수 있도록 하고, 대학교 등록금을 일부 지원한다.
입대 대상인 피해 청년은 건강특성을 충실히 고려한 판정체계를 마련하기로 했다. 사회복무요원의 경우 호흡기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근무지는 제외하고, 현역으로 입대할 경우 소총·박격포 등 신체활동이 많이 필요한 주특기는 제외한다.
아울러 성장과정 중 건강 상태를 분석해서 이상소견이 발견되는 경우 조기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건강 피해 인과관계 연구를 호흡기계 중심에서 만성 및 전신질환과 그 후유증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