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늑장수사 검찰 주범·대법원은 공동정범 대법, CMIT·MIT 성분 제품 만든 SK케미칼·애경 유죄 원심 파기… …
“애경산업과 에스케이(SK)케미칼이 무죄란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죽인 죗값은 누가 받아야 하는가.”
2024년 12월26일, 김태종(70)씨는 다시 한번 차가운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울분을 토했다. 김씨의 아내 고 박영숙씨는 2007년 10월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으로 만들어진 이마트 자체 브랜드(PB) 상품인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 2008년 3월 “숨 쉬기가 힘들다”고 호소하며 쓰러졌다. 이후 박씨는 12년 동안 투병 생활을 했고, 2020년 8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주심 서경환 대법관)은 박씨가 사용했던 가습기살균제와 ‘홈크리닉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유통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 등)로 SK케미칼 홍지호 전 대표와 한순종 전 상무,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지만 김씨는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또다시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대법원이 해당 사건을 파기환송한 핵심 이유는 2018년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를 선고받은 신현우(75)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와 홍 전 대표 등을 공동정범으로 묶을 수 없다는 것이다.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는 각 사에서 CMIT·MIT 등 독성 화학물질로 만든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해 98명에게 폐질환과 천식 등을 앓게 하고 그 가운데 12명을 죽게 한 혐의로 2019년 7월 기소됐다. 신 전 대표는 또 다른 독성 화학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을 넣어 만든 가습기살균제(옥시싹싹 가습기당번)를 제조·판매해 소비자들을 죽고 다치게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 등)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관련 사건 피고인(신 전 대표)이 제조·판매에 관여한 가습기살균제와 이 사건 가습기살균제는 용도나 용법이 동일할 뿐 주원료 등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르고, 어느 하나를 개량한 제품이라고 볼 수 없다”며 “가습기살균제에 결함이나 하자가 존재하는 사정이나 이것이 피해자들에게 사망 또는 상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없었고, 관련한 연락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SK케미칼·애경산업의 가습기살균제와 옥시의 가습기살균제는 서로 다른 제품이기 때문에 공범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늑장 수사를 하고, 다른 제품 제조·판매자들을 ‘공범’으로 묶어 재판에 넘긴 검찰에 원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1년 8월31일 한국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처음 공식 인정한 뒤에도 수사는 한참 동안 진행되지 않다가 2016년 1월에야 서울중앙지검에서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검찰은 2016년 수사에선 PHMG·PGH를 원료로 하는 옥시·롯데마트·홈플러스 제품 등에 대해서만 조사해 신 전 대표를 구속기소한 뒤 사건을 마무리해버렸다. 유공(현 SK케미칼)이 CMIT·MIT로 만든 가습기살균제는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자료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수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8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을 만나 처음으로 공식 사과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2018년엔 환경부가 ‘CMIT/MIT 독성 및 건강영향 종합보고서’를 펴내는 등 CMIT·MIT와 건강 문제 사이의 인과관계를 뒷받침하는 여러 연구자료가 나오자 검찰은 뒤늦게 재수사에 돌입했다.
재수사의 핵심 쟁점은 2016년 초동수사에서 제외된 CMIT·MIT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해당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하면서 제조업체 유공이 개발 단계에서부터 제대로 안전성 검증을 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때가 늦었다. 너무 오래전에 피해자들이 제품을 사용했고, 사망자 대부분은 2010~2011년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업무상과실치사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검찰이 조사한 대부분의 피해자를 낳은 범행의 공소시효가 도과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채택한 것이 ‘공동정범’ 논리였다. 공범이 재판에 넘겨지면 공소시효가 멈추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근거로 들어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2016년 첫 수사에서 CMIT·MIT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도 포함해서 수사했더라면 별개의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 처벌할 수 있었을 텐데 검찰의 늑장 수사가 결국 대법원에 파기환송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국가배상 사건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송기호 변호사는 “2016년 첫 수사 때 CMIT·MIT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검찰청을 방문하려 해도 검사들이 ‘방문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배척했는데 결국 SK케미칼과 애경을 봐주기 수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사건의 공소시효 때문에 사회적 참사의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담당 검사의 직무유기 징계까지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협소한 법리 판단에만 몰두한 대법원의 판결에도 비판이 제기된다.
대법원은 “그런 사정들(소비자들이 원료 차이를 인식하기 어려웠다는 점 등)만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한다면 인터넷망 등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상품의 구매·소비가 용이하게 이뤄지는 현대사회에서 상품 제조·판매자들 등에 대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 범위가 무한정 확장된다”고 판결했는데 시민사회 단체들은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참여연대 등은 성명을 내어 “대법원의 판단처럼 동일 원료로 생산된 개량형 제품에만 협소하게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겠다는 것은 화학제품의 장기적이고 누적적인 인체 피해에 대한 과학의 한계를 외면하고 기업의 면책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최재홍 변호사는 “특정 제조사가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를 시작하고 시장에서 관심이 높아지면 해당 제품의 원료물질은 영업 비밀로 보호받고, 경쟁사들은 동일한 용도의 카피 제품을 만들게 되는데 이 경우도 똑같이 시장에서 광고를 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함께 넓혀가는 측면을 고려하면 공동정범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라며 “가습기살균제라는 제품과 관련된 시장을 확대하는 데 공동으로 기여하면서 안전성 주의 의무를 기울이지 않은 기업들이 단지 같은 원료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공동정범으로 되지 않는지 항소심에서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12월26일 광화문광장에 선 또 다른 피해자 김선미(40)씨는 “아이들에게 사과할 방법이 사라졌다. 법원이 기업이 아닌 ‘엄마’를 가해자로 지목한 것 같다”며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2008년 애경산업의 ‘가습기 메이트’를 구입해 한 병을 사용한 뒤 두 아이와 본인까지 세 가족이 천식 진단을 받았다. 형사사법이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면 피해자는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를 만든 공동정범은 정부와 검찰, 법원 모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