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가습기 살균제’ 애경·SK 유죄 파기…“그많은 사람은 어떻게 죽었나”
‘가습기 살균제’ 애경·SK 유죄 파기…“그많은 사람은 어떻게 죽었나”
울분 터뜨리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유족
“대법원 판결을 내린 판사님에게 나는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도 6개월만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을 사용해보라고. 그러고 나서 죽나 안 죽나 한 번 보라고.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나도 생각하지만 참으로 억울하고 답답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4년 전 아내를 떠나보낸 김태종씨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고 말을 이어갔다. 26일 대법원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판매한 에스케이(SK)케미칼, 애경 등 기업의 전직 대표에게 금고형을 선고했던 2심 판결을 뒤집자 피해자, 유족, 환경단체가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대법원이 이들에게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며 “그러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죽인 죗값은 누가 받아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김씨는 이번 판결에 대해 “참으로 가슴 아프고 속이 아프고 울분이 차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옥시 다음으로 제일 큰 피해를 낸 게 애경산업이고 에스케이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고 광고했다는 점에서 원죄를 지닌 기업”이라며 “그런 사람들이 무죄란다. 그럼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죽은 건가. 자연사한 건가. 우리는 (제품을) 돈 주고 사서 쓴 죄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두 자녀를 포함해 4명의 가족 모두 중증 천식으로 고통받고 있는 김선미씨는 이번 판결로 “아이들한테 사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 것 같다”며 흐느끼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은 엄마를 잘못 만나 평생 아플 아이들”이라며 “대법이 무죄라 하였으니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는 누구한테 가서 아이들의 아픔을 보상받아야 하고 누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고 했다.
앞서 대법원은 이날 각 회사에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 등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해 98명에게 폐 질환·천식을 앓게 하고 이 가운데 12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에스케이케미칼 대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심이 근거로 들고 있는 사정만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의 취지를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의 대리를 맡은 최새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변호사는 “가습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족의 피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그만큼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이라며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로 인하여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