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신문] 국경을 넘어선 공해수출, 책임은 누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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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선 공해수출, 사회적 책임은 누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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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수출 과정에서 개발도상국의 환경보건 문제 도외시돼

적극적인 피해자 모니터링과 시민 사회의 움직임 중요해

곤히 잠든 새벽, 갑자기 유독 가스가 들어차 숨쉬기 어려워진다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이 일은 2020년 5월 인도 비샤카파트남의 한 공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국내 화학물질 제조기업 LG화학 인도 지사 공장의 안전관리 미흡으로 독성물질인 스티렌이 대량 누출돼 600명에 달하는 인도 국민이 사상 피해를 입었다.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공해수출은 무엇이며, 그 심각성은 어떠한지 알아보자.

공해수출, 국가마다 규제가 다르다?


공해수출은 공해를 심하게 일으키는 공장을 해외에 건설해 그 나라에서 공해를 발생시키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제조업, 화학업 등의 공장에서는 대개 △대기오염 △방사능오염 △수질오염 등의 공해가 발생하는데, 이 중 사람과 생물의 생명을 위협하는 유독한 화학물질이 포함된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된다.

이에 자국의 공해 규제가 엄격해져 공장 운영이 어려운 경우 비교적 규제가 약한 해외에 공장을 유치하게 된다. 이는 공해를 발생시키는 공장의 수출이 각 수입국이 제정한 법을 따르기에 가능하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서 △사용 △수입 △제조 △판매되는 화학물질의 경우 화학물질관리법을 준수하게 해 국민 건강 및 환경상의 위해를 예방하고 있다. 이처럼 각 국가의 법에 따라 공해를 배출하는 공장의 수출입 가능 여부가 결정되는데 이를 이중기준 현상이라 일컫는다.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박석순 명예교수는 “공해의 심각성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없다”며 “따라서 공해수출로 인한 사회·환경적 피해가 각 국가의 관리 및 규제 능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 협력의 탈을 쓴 공해수출


이중기준 현상은 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관계에서 조명된다. 공해수출은 표면적으로 두 국가 모두에게 긍정적인 경제적 효과를 준다. 환경과 자국민 보호를 위해 높은 화학물질 규제 기준을 가진 선진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규제 기준이 낮고 노동력이 값싼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유치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경제 발전이 시급한 개발도상국은 산업화를 우선시해 선진국 기업의 공장 유치를 투자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경제 협력이라는 미명 아래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명예교수는 “일부 선진국 기업들은 이중기준을 이용해 공해 문제를 빈곤한 나라에 전가하는 행태를 양산했다”며 “규제를 피해 값싸게 돈을 벌고자 했던 선진국 기업들로 인해 개발도상국의 노동자 및 주민들이 심각한 건강 문제와 환경 오염 등의 피해를 겪는다”고 전했다.

공해수출의 가장 큰 문제는 공해 설비 이전과 함께 갖춰져야 할 개발도상국의 공해 규제 및 건강 보호 기술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대표적인 공해수출 피해 사고로 꼽히는 보팔참사 역시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을 위한 운영 기준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다. 보팔참사는 1984년 12월 인도 마디아프라데시주에 건설된 미국 화학기업 유니온카바이드 공장에서 아이소사이안화메틸 가스가 대량 누출돼 발생했다. 인도의 느슨한 규제에 따라 공장 가동에 필수적인 설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채 방치된 것과 충분한 기술적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인력이 없었던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보팔참사로 당시에만 3,700여 명이 사망했고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는 최소 55만 8,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여전히 보팔의 공장 인근에서는 장애아들이 태어나고 있지만 2001년 유니온카바이드가 타 기업에 인수합병되면서 책임 소재는 불투명해졌고, 참사의 후유증은 오롯이 보팔 주민들이 져야 하는 짐이 됐다. 이에 백 교수는 “개발도상국은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적용하는 기반이나 경험이 부족해 미국의 공해 규제만 강화됐다”며 “이는 공해수출로 발생한 처리비용을 떠맡기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보팔참사 희생자들. ⓒ중앙일보 캡처
보팔참사 희생자들. ⓒ중앙일보 캡처
보팔참사와 LG화학 가스누출 사고 위치. ⓒ함께사는길 캡처
보팔참사와 LG화학 가스누출 사고 위치. ⓒ함께사는길 캡처

 

규제를 피해 외주화되는 공해수출


공해수출의 위험이 규제가 낮은 곳을 향해 계속해서 외주화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위험의 외주화는 공해를 일으키던 원청업체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하청업체에 그 업무를 떠넘기는 것을 말한다. 이때 하청업체는 원청업체의 지휘·감독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며,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의 책임은 하청업체의 몫이 된다. 기업 평가 역시 내부 평가에 의존해 공정 내부 문제를 외부로 알리기 어려워지므로 2차 공해수출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박 교수는 “새로운 산업들이 개발되면서 유해화학물질의 종류가 더욱 다양화되고 있으며 사람들이 입는 피해의 범위도 커지고 있다”며 “기업들은 규제가 낮은 곳에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지난 5월, 인권 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국제오염물질추방네트워크 및 젠더가족환경개발연구센터와 함께 ‘삼성 내부 자료로 확인된 베트남 공장의 화학물질 부실 관리와 환경오염 실태’ 보고서를 펴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08년 베트남 박닌시에서 휴대전화 조립 공정을 가동하기 시작했는데, 2010년~2013년까지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공장 폐수를 처리 설비 없이 무단으로 배출하며 수질오염을 비롯해 심각한 대기오염을 발생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해당 공정은 2017년 삼성의 하청업체로 외주화되며 이후 공장 운영에 일부 미흡한 점이 드러났음에도 베트남 법 규정에 위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장 운영에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있다.

공해수출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공해수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엔은 1998년 다자 조약인 ‘로테르담 협약’을 채택한 바 있다. 이는 유해 물질 산업 수출 시 유엔에 사전 통보한 뒤 수입국에 화학물질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한국을 포함한 60개국이 비준해 2004년부터 정식 발효 중이다. 그러나 백 교수는 “로테르담 협약에서 처음 지정한 화학물질의 범위가 시간이 흐르면서 확대될 필요가 있었지만, 새로운 물질을 협약에 적용하게 되면 자본 수출에 제약이 되므로 이를 반대한 러시아 등의 국가 세력이 존재했다”고 그 한계를 지적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자본뿐 아니라 환경 기술과 제도를 함께 수출하고 사후 관리를 지속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우리나라의 환경영향평가 모델을 보완한 정기적 사후 관리 제도가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환경영향평가는 특정 사업이 환경보건에 미칠 여러 부정적 영향을 예방하고자 정부 주도로 실시되는 비정기적 사후 관리 제도다. 박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만 적용되고 있는 환경영향평가를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때도 동일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환경영향평가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정기적 사후 관리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이에 박 교수는 “환경 오염 현황 및 관련 기술을 주기적으로 체크할 수 있어 환경보건에 관한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는 데 용이할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공해수출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기 위해 피해자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하는 국제기구 및 시민 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1987년 미국의 전자 회사인 Radio Corporation of America(이하 RCA)가 대만에 세운 화학공장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암에 걸린 사건에서 시민 사회의 긍정적 역할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정부에 환경 및 노동자 안전 규제 강화 요구 △RCA에 대한 철저한 조사 촉구 및 여론 형성 △RCA 노동자와 가족 등 피해자들을 조직화해 제도적 지원과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에 백 교수는 “공해병을 앓는 사람들의 자료가 점차 축적된 것과 함께 환경 운동 단체와 시민 사회의 주도로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WHO 아시아-태평양 환경보건센터가 공해수출과 관련한 정책 연구 및 환경 교육을 담당하는 국제기구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백 교수는 “현재 국제기구들은 공해수출에 있어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언제나 실제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한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부조리함을 알리는 첫 출발점”이라고 시민 사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LG화학 가스누출 사고 4주기 책임촉구 현장. ⓒMBC 뉴스 캡처
LG화학 가스누출 사고 4주기 책임촉구 현장. ⓒMBC 뉴스 캡처


공해수출, 환경보건의 시각으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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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

자본의 논리 아래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공해수출

국제기구가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시민 운동은 계속돼야


1970년~1980년대 우리나라 △마산수출자유지역 △온산공단 △울산공단 등의 지역에서 수많은 주민이 코뼈가 녹아내리는 질병을 앓고 중금속 중독 증세를 보이는 등 공해병으로 큰 시름을 앓았다. 일본의 선진국 기업들이 자국에서 운영이 어려웠던 산업 시설을 우리나라에 대규모로 수출해 심각한 공해오염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공해수출은 계속해서 미국·유럽에서 일본, 일본에서 한국, 한국에서 인도 등의 국가로 이전되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환경보건 문제를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에게 물었다. 

자기소개를 해달라.


환경보건 문제를 전면으로 내세워 시민 운동을 주도하는 기관인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소장을 맡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10년에 개소된 이래 석면 문제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 두 가지 활동에 집중해 왔다. 10년 넘게 해당 분야의 시민 운동을 지속해 오며 피해자들의 문제가 일정 수준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관련 법이 제정되는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현대 사회의 공해수출 문제는 무엇이 있는가.


현대에 들어서는 공해라는 개념이 도시에서의 대기오염 혹은 악취와 같은 일반적인 환경 문제로 크게 범주화된 것 같다. 그러나 특정 산업 공장 인근 주민들은 여전히 공해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도 일본이 일으킨 공해수출의 사례다.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석포제련소는 심각한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있는 것과 더불어 유독 가스로 인한 노동자들의 사상 사고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재 이를 두고 석포제련소를 완전히 폐쇄할 것인가, 혹은 국내의 다른 지역이나 해외로 옮길 것인가를 두고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직접 발굴해 낸 공해수출 사례가 있다면.


2009년 부산시에 있던 국내 석면 방직공장 설비 일부가 인도네시아로 이전됐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인도네시아 현지에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집들은 벽과 지붕 사이가 벽돌로 메워져 있어 공간이 밀폐돼 있지 않고 안과 밖의 공기가 항상 통한다. 따라서 석면 원료를 다루는 공장 역시 밀폐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석면 먼지가 인근 지역 사회로 날아가 공해 피해를 일으킬 여지가 다분했다. 공장이 우리나라에 있을 때보다 인도네시아로 갈 때 공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인도네시아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부산대 및 인도네시아 노동 단체와 함께 공장 내·외부 조사를 실시했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석면 피해가 추정되는 여성 장기 근로자들의 건강검진을 실시했는데, 실제로 석면 질환 중 하나인 석면폐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해당 노동자들은 2017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산업재해 인정자이자 석면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비록 책임에 대한 수습이 뒤늦게 이뤄지긴 했지만 단순 문제 제기를 넘어 실질적으로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한 데에 의미가 있었다.

반복되는 공해수출 속 환경보건 시민 운동의 역할은.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다. 인도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공해수출 사고인 보팔참사가 1984년에 발생해 올해 40주기를 맞지만,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이중기준 현상으로 인한 공해수출과 주민들의 공해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공해수출로 인한 피해가 생기면 해당 기업이 사회적 비난을 받고 그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 환경보건 시민 운동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또한 세계보건기구나 국제노동기구 등 공해수출과 관련된 핵심적인 국제기구들이 강력한 메시지를 주장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러한 국제기구들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압력을 넣는 것도 환경보건 시민 운동의 핵심이 될 것이다.

ⓒ경향신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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