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내 몸이 증거'라는 피해자들, 이들 인생이 지옥이면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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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내 몸이 증거'라는 피해자들, 이들 인생이 지옥이면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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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증거'라는 피해자들, 이들 인생이 지옥이면 되겠나"


프레시안 2023.1.2 


[인터뷰] 가습기 살균제 다큐멘터리 영화 만드는 류이 감독


가습기살균제는 1994년 유공이 출시한 '가습기메이트'가 시초였다. 가습기 내부 세균을 없애고 세균번식을 억제해 물때를 방지하는 제품이었다. 인체에 무해한 것은 물론이었다.


출시 첫해 10만개가 팔리면서 다른 회사들도 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후 1996년부터는 옥시, 애경, LG생활건강 등이 잇달아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문제는 2011년에 발생했다.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폐렴 증상을 보이는 산모들이 줄지어 입원했다. 환자에게는 폐가 딱딱해지는 섬유화 현상과 폐가 터지는 증상 등이 나타났다.

바이러스를 의심한 의료진은 여러 검사를 진행했으나 아무런 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후 질병관리본부가 나섰다. 역학조사, 세포독성시험, 동물 독성 실험 등 여러 조사를 7개월 동안 진행했다. 

그러한 실험 과정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흡입한 쥐에서 피해자와 비슷한 폐손상이 발견됐다. 정부는 곧바로 가습기 살균제 사용 중단을 권고했다. 그리고 피해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1년 11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접수가 시작된 이래 현재(23년 12월)까지 총 7890명이 피해를 호소했고 이중 5667명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됐다. 

반면 가해자, 즉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판매한 기업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면죄부를 부여받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 대표, 애경산업 대표 등 기업인 13명도 마찬가지다. 오는 1월 11일 2심 선고가 나온다. 3년 전 1심에서 이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가습기 살균제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러한 재판 결과는 환경부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피해를 인정한 것과도 상반된다.

지난 12월 28일 <프레시안>과 인터뷰를 진행한 류이 예술감독은 이번 2심 재판부가 4가지를 유념해줄 것을 당부했다.

2021년부터 전국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전문가 등 100여 명을 만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는 류 감독은 2023년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환경시민상을 받았다. 지난 2년 가까이 진행된 2심 재판을 모두 참관하기도 했다.

아래 그와의 인터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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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 예술감독. ⓒ프레시안

"1심 재판, 형사법 원칙을 들이밀어서 과학적 논리를 배격" 

프레시안 : 지난 21일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경제정의실천시연합 등 전국의 71개 환경단체가 주는 환경시민상을 받았다. 이 상을 받은 배경이 궁금하다. 

류이 : 2021년 가습기 살균제 재판에서 무죄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우 놀랐다. 당시 뭐라도 해야 되겠다 싶어서 피해자들이 진행하는 시위를 찾아갔다. 거기서 피해자 김태종 씨를 만났다. 그때 들은 말이 '나는 아내를 죽인 살인자입니다'였다. 충격을 받았다. 가해자인 기업들이나 정부가 자기들 책임은 없다고 다 오리발을 내미니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식이었다. 아내에게 살균제를 사다 준 사람이 자신이었다. 자기는 살고 아내는 죽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그때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3년째 50가족(100여명)을 인터뷰하고 있다.

프레시안 : 상을 받은 배경이 그런 활동을 해서인가. 

류이 : 뭐든 기록이 중요한데,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제대로 기록하는 분이 없었다. 그리고 관련해서 두 편의 단편영화가 나왔고 상영회도 진행했다. 그것을 보고 상을 주신 듯하다. 장편영화도 준비 중에 있다. 

프레시안 : 3년 동안 유가족을 만나왔기에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는 11일 인체에 유해한 물질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된 SK케미칼의 홍지호 전 대표, 애경산업의 안용찬 전 대표 등에 대한 2심 선고가 나온다. 2021년 1월 12일 무죄 판결을 받은 지 3년 만이다. 1심에서는 모두 무죄 판정을 받았다. 질환과 살균제 간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류이 : 1심 재판부는 쥐 실험 결과를 근거로 살균제가 폐에 도달했다는 증거가 없고, 도달해서도 염증을 일으켰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것은 과학자들의 증언과 배치된 판결이었다. 역학조사에서도 연관이 있다고 했는데, 형사법 원칙을 들이밀어서 과학적 논리를 배격했다. 

옥시싹싹의 경우,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 폐손상에 대한 가습기 살균제의 교차비가 47.3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면 그러지 않은 경우보다 폐손상 발생 위험이 47.3배 높다는 의미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병에 걸린 이들은 거의 100%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의미다. 

SK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도 전 국민 의료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에서 천식 발생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명났다. 중증도(3)를 기준으로 볼 때, 가습기 살균제 노출자는 비노출자에 비해 어린이에서 최고 30배, 성인여성에서 최고 15배로 위험도가 높게 나왔다. 살균제가 어떻게 폐에 도달했는지 어떤 기전으로 작용하는지 등은 밝혀야 하지만, 이는 그 다음 문제다. 역학조사로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이를 부정한 것이다. 

프레시안 : 2심 재판은 어떻게 진행됐나. 

류이 : 2심에서도 기업 측 변호사들은 피해자들의 폐질환을 '특이성' 질환의 일환으로 삼아 논박했다. 물론 재판에 출석한 전문가는 특이성 질환은 근거가 없다고 했지만 변호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렇게 논쟁되는 것을 두고 보는 식이었다. 

"불특정 다수가 건드리는 피해자의 죄책감" 

프레시안 : 2심 판결이 1월 11일에 나온다. 결과가 어떻게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류이 : 2심 재판부가 도중에 바뀌었는데, 이전 재판부와는 다르게 서승렬 재판부는 공정하게 진행하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항소심이지만 빠짐없이 기록을 다 보려 했다. 새로 나온 증거나 빅데이터 연구결과, 추가 채택 증인 등을 최대한 많이 검토하고 살펴봤다. 결과는 모르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항소심을 다 지켜봤다고 들었다. 항소심에 피해자 당사자나 가족들은 참관을 했는가.

류이 : 초반에는 잠깐씩 본 분들이 계시지만, 피해자분들이 거의 참여를 못 했다. 물론, 탄원서를 넣은 분들은 여럿 있다.

프레시안 : 궁금했을 듯한데, 왜 참여를 하지 않았는가.

류이 : 다들 환자 분들이라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변호사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근본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습기 참사 피해자들이 다른 참사 피해자와 유독 다른 성향을 보이는 게 첫째로 스스로가 환자이다 보니 몸이 아파서 어디 참여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렵다.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피해자 김선미 씨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두 번이나 구토 증상을 겪었다. 천식 환자여서 숨을 못 쉬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살균제를 스스로 사다 쓰지 않았나. 이것을 가지고 2차 가해가 심각하다. '니가 사다 써놓고서 왜 기업을 욕하느냐'는 선 넘은 비난이 상당하다. 이것을 겪어본 피해자들은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상당수가 자괴감에 빠져 있거나 심각한 우울증 증상을 겪고 있다. 다들 자폐 증상이 있어서 집밖을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생각해봐라. 자기가 산 살균제로 아이가 서서히 죽었다는 죄책감을 어떻게 씻어낼 수 있겠나. 게다가 불특정 다수가 그러한 죄책감을 자꾸 건드린다.

마지막으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처럼 한날한시에 참사를 당한 게 아니다.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병원이나 군대 등에서 조용히 당했다. 한날한시도 아닌 장시간에 걸쳐서 말이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은 파편화돼 있고 고립돼 있다. 그래서 피해자들 중에는 '인생은 지옥이다' 이렇게 말하는 분이 많다. 

프레시안 : 그런 피해자들의 상황을 변화하기 위해서라도 항소심 결과가 매우 중요한 듯하다.

류이 : 유죄가 나오면, 희망이 생긴다. 그것을 시작으로 피해자와 유가족이 서로 만날 수 있고, 이를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분들이 세상에 나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다. 가해자는 따로 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이번 항소심 결과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하지만 항소심이 뒤집힌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류이 : 내가 지난 2년 가까이 진행된 항소심을 모두 지켜보지 않았나. 재판부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판단을 했음 한다.

프레시안 : 하나씩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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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를 받은 2021년 1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해당 선고 결과를 부정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달라" 

류이 : 첫 번째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어떻게 아픈지,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한다. 예컨대, 대표적인 피해자가 두 분이 있다. 이장수 씨 딸은 1995년에 가습기 살균제로 사망했다. 태어나서 50일 정도 밖에 살지 못했다. 최초의 영아 사망자였다. 그런 사실을 판사는 알아야 했다. 그분을 불러서 당시 상황을 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김태종 씨 부인 박영숙 씨의 경우 13년간 투병을 하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그 투병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병원에 23번 실려 가고, 그중 16번을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겠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야 확신이 생긴다. 재판부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으면 배척하는 것도 문제일 듯싶다. 

류이 : 항소심 초반에 증인으로 피해자 두 분이 나오셨다. 80에 가까운 노인 분이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 측 변호사가 살균제를 언제 어떻게 썼느냐며 집요하게 과거의 기억을 캐물었다. 그러니 이 노인분이 당황해서 연도를 헷갈려서 진술이 왔다갔다 했다. 변호사는 그것을 물고 늘어져서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공격했다. 32년 동안 진행되어 온 참사이기에 기억이 잘못될 수도 있다. 그런데 재판은 그것을 용인해주지 않는다. 

이 과정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지난 12년 동안 반복돼 왔다. 가해기업과 정부는 진짜 피해자, 가짜 피해자를 나눠서 '넌 피해자가 맞느냐'고 묻고, 피해자는 이에 증거를 수집해서 '나는 피해자가 맞다'고 답해야 하는 식이다. 증거가 헷갈리거나 불분명하면 '가짜 피해자'가 된다. 

프레시안 : 이것은 다른 참사에서도 늘 반복되는 문제인 듯하다. 

류이 : 두 번째는 재판부가 피해자들이 '내 몸이 증거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학적인 진술이라는 점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집단적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그것으로 피해자의 '내 몸이 증거다'라는 진술은 입증이 끝난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893만여 명이 노출 피해를 봤고, 95만여 명이 상해 피해를 봤다. 2만여 명이 죽었다. 이 2만여 명은 기업들이 죽인 셈이다. 집단살인 수준이다. 그런데 여기에 독성학이나 임상 사례 등을 헤집어서 논박을 진행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 재판이 그랬다. 가습기 살균제 관련해서 쥐로 실험해보니 이상이 없었다면서 인과관계가 없다고 기업 측 변호사들은 주장한다. 역학조사라는 게 과학임에도 왜 변호사나 판사는 자기가 잘 모르는 그런 과학 분야에서의 과학자 의견을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프레시안 : 과학적 입증이 된 사안을 다시 재판에서 논쟁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들에게 조그마한 빛 밝혀주는 판결되길" 

류이 : 세 번째로 가습기 살균제는 독가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살균제는 물 분자와 함께 나노 입자로 바뀌어 호흡기를 통해 폐로 들어간 뒤, 염증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피를 통해 여기저기로 들어가 전신질환을 일으킨다. 이런 과정은 이미 입증됐다. 그런데 쥐를 통해 독성 실험을 하니, 독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위해성이 없다고 기업들은 주장한다. 그렇게 겉으로는 위해성이 없어서 우리 제품으로는 환자가 생길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1심 재판 말미에 중증피해자 11명에게 보상을 했다. 

프레시안 : 왜 그런 것인가. 

류이 : 그분들이 재판에 계속 참관하면서 탄원서를 내고 추가 고소를 하니, 이렇게 가면 재판에 불리하겠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한 듯싶다. 그렇게 해서 이분들을 재판정에 못 나오게 했다. 재판부에서 이를 인지하고 철퇴를 내려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형량 문제다. 현재 진행되는 재판에는 98명의 피해자 이름이 올라가 있다. 그런데 검찰은 기업 대표들에게 5년을 구형했다. 현재 신청 피해자는 7883명으로 확인된다. 이중에서 환경기술원이 피해자로 인정한 사람이 5417명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단독으로 쓴 피해자는 308명이고, 다른 제품과 함께 쓴 복합사용 피해자는 2181명이다. 이 중에 98명분의 형량만이 재판에서 결정되는 셈이다. 나머지 피해자에 대한 죗값은 어디에서 받아야 하나. 

현 재판부는 이런 지점을 감안해서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조그마한 빛이라도 밝혀주는 판결을 해주길 바란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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