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공청회서 기업 입장차만 재확인…피해 구제 안갯속
‘가습기살균제’ 공청회서 기업 입장차만 재확인…피해 구제 안갯속
전날 국회서 피해구제 공청회 진행돼
옥시·애경 조정안 거부…SK는 수용 의사
피해자단체 “실망…정부, 적극 개입해야”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자 국회에서 공청회가 진행됐지만, 살균제 판매업체와 원료물질 사업자의 입장차만 재확인하는 자리로 마무리됐다.
이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 등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조정에 개입해 해당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7일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이하 환노위)가 전날 개최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 공청회’에는 가습기살균제 사건 가해기업 대표인 옥시레킷벤키저, 애경산업, SK케미칼 대표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번 공청회에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가 지난해 3윌 제시한 조정안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조정위는 9개의 가해기업이 피해자 7000여명에게 최대 9240억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 담긴 피해 보상안을 최종적으로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피해보상금의 60%가량을 부담해야 하는 옥시와 애경이 조정안 수용을 거부하면서 논의가 무산됐고, 보상금 지급마저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이날 공청회에서도 가해기업 간 입장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은 원료물질 제조업체인 SK케미칼이 분담률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SK케미칼은 조정안을 수용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옥시레킷벤키저 박동석 대표이사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다수의 당사자와 다양한 원인이 결합되어 발생한 전례가 없는 참사”라며 “이에 따라 문제의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해 관계부처와 원료물질 사업자 및 가습기살균제 사업자를 포함한 관련 회사, 그리고 피해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적 해결책 모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구제 기업 간 분담금 비율은 피해구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온 저희 회사를 오히려 차별했다”며 “가습기살균제의 근원적인 책임이 있는 원료물질 사업자(SK케미칼)에게는 총액의 20%만큼의 분담금만 부과했다”고 지적했다.
옥시레킷벤키저 측은 원료물질 사업자가 지난 1994년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개발하면서 안전성을 확인하지 않고 판매를 강행한 것을 근거로 기업 간 공정한 분담률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경산업 채동석 대표도 조정안에 대해서 적정성과 기업 간 배분의 합리성에 대해 검증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SK케미칼 김철 대표는 “저희 SK케미칼은 신속한 피해회복과 지원을 위해 조정 절차에 성실히 참여했으며, 모든 이해 당사자가 만족하기는 어렵지만 조정위원회에서 마련한 조정안 및 권고안에 대해서 수용의 의사를 이미 밝힌 바 있다”며 “그러나 어렵게 마련된 조정안이 실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통받은 피해자분들의 아픔을 보상하고 사회적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저희 의지를 밝히며, 다른 기업들의 동참을 간곡히 권유하는 바”라며 재차 조정안에 찬성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피해구제가 아닌 보상금의 ‘분담률’만을 놓고 공방을 펼친 이번 공청회에 대해 피해자들은 거세게 비판했다.
오랜 시간 동안 피해자들의 입장을 대변해 온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본보와의 통화를 통해 “전날 진행된 공청회에서는 어렵게 마련된 자리임에도 불구 피해자들의 피해구제를 위한 건설적인 결과가 아닌 각 기업의 입장만 이야기하는 시간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들은 가해기업이 아닌 마치 구경꾼, 제3자 같았다”며 “옥시레킷벤키저 등이 기업의 책임과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객관적인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은 정말 실망스러웠다”고 꼬집었다.
최 소장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현재 정부는 이 조정안에 대해 ‘사적조정위원회’라고 하면서 마치 할 일이 아닌 것처럼 선을 긋는다”며 “전 정부 당시 여당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조정위원장도 추천해서 만들어진 위원회인데, 이 같은 발언을 정부에서 한다는 것이 황당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